“잘 해결 됐으면 좋겠다.” 수년간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람이 MBC 파업 사태에 내놓은 답이 고작 이것이었다. 파업 명분을 임금이나 처우개선이 아닌 ‘공정방송’ ‘정권의 언론장악’ 등을 들고 노조 스스로 ‘정치파업’임을 밝힌 장기파업 사태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보여주길 바랐던 이들의 기운을 빼는 발언이었다. 또한 야권승리만 믿고 배짱 파업을 일으켰다가 외통수로 몰린 MBC노조의 기대에도 썩 미치지 못하는 발언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는 아마도 지금 상황이 가장 발언하기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한나라당 비주류 시절처럼 무조건 MB정권과 차별화 전략으로 친좌파 스탠스로 가면 반사이익을 얻던 때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삼 ‘집토끼’를 의식해 우파 노선을 간다고 해도 득표 전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말이 “파업이 너무 장기화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이다. MBC 파업사태에 정치권과 노조가 한마디씩 하라고 떠미니 좌우눈치를 보곤 적당히 ‘서로 잘 풀어라’라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게 된 것이다.
박근혜가 앞세우는 ‘민생’의 기본이 정치, MBC파업에 분명한 원칙 밝혔어야
지금까지 박 전 위원장이 무거운 입을 뗐을 때란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자신이 유리한 입장일 때뿐이다. 유일한 기준이 오직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른바 ‘표퓰리즘’의 원칙에 입각해 계산된 발언만을 해왔다. 국민이 들으면 좋아할 것 같은 ‘민생’이 그래서 박 전 위원장의 애용단어가 됐고,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게 됐다. 새누리당 경선룰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 해도 ‘민생’, 정치권이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홀로 ‘민생’이다. 마치 민생이 박 전 위원장의 ‘독점 브랜드’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민생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소린가?
엄밀히 말하면 박 전 위원장의 ‘정치보다 민생우선’ 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다. 정치의 목적 자체가 민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생을 위해 국가가 어떤 이념과 가치철학으로 무장해야 하며, 민생을 위해 어떤 정책들을 써야하며, 좁게는 민생을 위해 MBC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모든 정치사회적 사안에 있어 자신의 이념과 철학, 판단에 따라 분명한 생각을 밝히는 것은 민생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가 우선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현실적 고민을 고려하더라도 박 전 위원장만큼 철저하게 유불리에 따라 언행이 이루어지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심한 일이다.
MBC노사 대화와 타협하라는 박근혜, 그런 본인은 왜 새누리당 비박주자에게 못 보여주나
“결국 장기화되면 가장 불편해지고 손해보는 게 국민이 아니겠느냐”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노사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라면 적어도 이렇게 애매하게,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그쳐선 안 된다. MBC노조의 파업 사태를 구경만 할 게 아니라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가장 유력하다는 사람이 방송사를 장악해 공영방송을 무력화시키고, 국민의 시청권을 볼모로 장기 파행을 벌이며 벼랑끝 전술로 막가는 노조에 비판 한마디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MBC 파업사태에 대해선 박 전 위원장과 지지율이 비교도 안 되는 정몽준 전 대표가 오히려 가장 원칙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정 전 대표는 "노사자율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다만 특정 프로그램이 경영진의 자의적 판단이나 정치적 이유에 의해 중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특정후보의 캠프에 있던 분이 대선 승리 후 공영방송의 사장이 되는 구조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방송사 사장을 임명하는 현 제도의 문제를 짚으면서도 노사자율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위원장도 최소한 이정도 수준의 원칙은 밝혔어야 했다.
‘공영방송의 원칙’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MBC경영진에게 박 전 위원장이 노조와 서로 대화로 잘 풀라고 힘을 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치파업은 불법파업이라는 분명한 법의 원칙이 존재한다. ‘원칙’의 아이콘이라는 박 전 위원장이, 확실한 원칙의 잣대가 필요한 이런 사안에 서로 대화로 잘 풀라는 조언이야말로 원칙파괴일 뿐이다. 그렇게 대화와 타협을 중요시한다면, 그럼 박 전 위원장은 왜 새누리당 경선룰에 있어서 그토록 비타협적이고 불통의 모습만 고집하나? 같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에겐 왜 그런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나? MBC노사에 대화와 타협 운운하기 전 박 전 위원장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양다리’ 박근혜의 기회주의 언행엔 침묵하고 전원책, 양영태는 적으로 모는 보수우파
가장 한심한 것은 이렇듯 매사 자신에게 유리한 정국에서만, 유리한 발언만 하며 보수우파 정치의 못된 포퓰리즘만 보여주는 박 전 위원장에게 보수우파 논객이란 사람들이 단 한 마디의 비판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그토록 앞장서 MBC노조의 좌편향, MBC 프로그램의 선동성을 비판하던 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MBC파업 사태에 대해 노사간 대화와 타협으로 풀라고 발언은 비록 하나마나한 눈치보기용 발언에 불과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로 보건데 MBC 경영진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좌파정당들을 동원해 경영진에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노조가 박 전 위원장 발언을 계기로 더욱 파업의 기승을 부릴 수도, 고착화 될 수 있는 문제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수우파 논객들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고 그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때리기에만 눈이 팔려 있다. 민통당과 통진당의 문제점과, 위선, 그리고 종북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눈의 들보를 모른척 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유력한 대권후보임이 분명하지만, 그의 원칙에 대한 궤변과 기회주의, 포퓰리즘, 비민주적 태도는 보수우파 진영이 앞장서 지적해야 하는 일이다. 비판해야 할 때 비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눈치보기요, 권력에 대한 아부에 불과하다.
지금의 보수우파 진영의 분위기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마치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금기라도 된 마냥 모두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건 차기 보수우파 정권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도대체 그 많던 보수우파 논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좌파의 허구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내부의 한심한 ‘금기’와 ‘진영논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전원책 변호사나 양영태 박사와 같은 논객들이 단지 박 전 위원장에 비판적 지지를 보낸다고 해서 돌팔매를 던지고 적으로 간주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당연시되고, 묵인 되는 분위기로는 보수우파의 앞날이 어둡다. MBC노조의 파업사태를 보고도 원칙적 태도하나 보여주지 못하는 박 전 위원장과 그의 행태에 비판 한마디 못하는 보수우파로는 대한민국 앞날이 암울하다는 얘기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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