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박근혜가 던진 화두 ‘21세기론’

이재오가 말한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의 본질, 오히려 박근혜가 건드렸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또 하나의 히트작을 냈다. 이재오 의원이 “통일 후라면 몰라도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의 리더십은 시기가 이르다”고 하자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나요?”라고 응수하면서 정치권에 ‘21세기론’이 유행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고심한 발언인지 아니면 기자들 질문을 받고 즉흥적으로 나온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박 전 위원장의 이 발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위원장이 ‘국가관’ 발언 이후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이재오 의원에게 쏘아붙인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은, 성차별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발언이 21세기란 시대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21세기 시대정신과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과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가장 먼저 대선 후보 1위를 달리는 박 전 위원장 본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과연 박 전 위원장의 리더십은 21세기에 맞는가?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박근혜에 줄서는 정치인과 언론의 이재오 발언 비판은 ‘본질’ 비껴간 ‘오버’

그런 점에서 먼저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여성 대통령 불가’로 받아들인 새누리당 친박인사들과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같은 언론의 단세포적 반응 말이다.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장이란 한 여성도 그랬단다. "이 의원의 여성비하 발언은 구시대적이며 구태정치의 표본"이라고. 여성의원들도 비판했단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고, 백제는 여성을 건국의 어머니로 추앙한 바 있으며,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다”며 “현재에도 세계적인 여성 리더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이재오 의원의) 발언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동아일보는 사설로 이렇게 비판했다. “누가 봐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말로 이 의원의 자질과 의식 수준을 의심케 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분단국가의 대통령 자격 기준은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군 최고통수권자에게 적합한 안보관과 통찰력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을 가졌느냐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도 비슷하다. “그러나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이어서 이런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은 역사나 현실에 맞지 않다. 자칫 성차별을 부를 수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안보 능력’은 군복무 여부나 남녀 차이에 결정적으로 좌우되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의 친박 여성들이 입을 모아 이 의원을 비판한 건 이해가 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비하한 듯 들리는 이 의원의 발언 자체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물론, “21세기에도~”라고 했으니 21세기에 활약한, 혹은 활약 중인 뛰어난 여성들을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무슨 중세 봉건적 시대의 왕위를 이어받을 공주도 아닌데, 통일신라, 백제, 엘리자베스 여왕 운운하며 비유한 것은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이다. 만약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이 문재인 상임고문을 비판한 것을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문 고문을 편들어 사설로 손 고문이 잘못했다고 비판한다면 이걸 정상적인 언론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다른 대선주자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 민통당 내부에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을까? 특정 대선 주자 줄대기란 비판이 나오지 않았을까? 문제가 된 이 의원 발언이 지속적으로 나왔던 것도 아닌데도, 이 의원측과 박 전 위원장측끼리 서로 알아서 공방을 주고받을 문제에 왜 언론이 끼어들었는지는 동아와 중앙, 그리고 하나님만이 알 것이다.

적어도 경선에서 맞붙을 당 사자들의 경쟁이 한창인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점에서 선거개입 논란을 의식해서라도 함부로 사설을 동원해 비판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나의 판단이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속내야 어떻든 간에 동아와 중앙이 이재오 의원 발언을 사설까지 동원해가며 ‘오버’할 때 홀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엄밀히 말하면, 이 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지금 이 시점에서 우파 언론까지 나서 불필요하게 끼어들 정도까지의 사안은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인지한 것이다.

이재오의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에 동의하는 국민은 21세기 국민이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솔직하게 말해보자. 여론 조사 상 우리나라 국민들이 여성 대통령에 큰 거부감이 없는 건 사실이다. 2011년 3월 미래희망연대 정영희 의원이 여의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여성대통령을 선호한다는 의견이 36.9%,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36.9%, 시기상조라는 답변이 17.9%로 나타났다. 결국 74%정도가 성별은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친박당 미래희망연대가 주관한 조사결과라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국민이 대통령 성별 자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답변도 분명 20%가까이 된다는 점에서 이 의원의 생각이 일반 국민의 생각과 완전히 동떨어진 문제제기라고 보기도 어렵다.

대다수는 아니지만 분명 이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가진 국민이 있는데도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나요?”라고 쏘아붙인 건 분명 오만한 발언이었다. 박 전 위원장 생각대로라면 우리 국민 20%가까이는 시대착오적인 국민이 되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21세기 국민이 아니라는 말인가? 21세기 운운하는 발언으로 절대적 약자 후보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비웃고 핀잔을 줄 게 아니라, 자신의 21세기 여성관, 여성정치인관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이 일등주자다운 면모다. 그런 대범함과 포용심 없이 어떻게 무수한 갈등이 맞부딪히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가?

동아, 중앙이 이재오 비판 근거로 든 마거릿 대처는 박근혜 리더십과 정반대

21세기 여성 리더십 얘기가 나왔으니 더 직접적으로 말해보자. 동아와 중앙이 ‘여성 대통령 시기상조’ 발언이 틀렸다는 근거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거론한 것은 과연 합당한 비유였을까? 마거릿 대처야말로 박근혜 전 위원장의 리더십과는 정반대의 소유자다. 대처 전 총리는 동아와 중앙이 지적한대로 전투에 참가한 적도 없고, 국방장관을 해본적도 없지만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리더십으로 전쟁을 이끌었고 승리를 거두었다. 동아와 중앙이 찬양해 마지않는 확고한 안보관의 소유자였다.

대처 전 총리는 경제에 있어서도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뚫었던 인물이다. 영국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복지병’을 뜯어고치기 위해 만성적자에 시달렸던 국영기업을 민영화했고, 그 과정에서 강성노조와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국병을 고치려는 그의 개혁 작업에 비판여론이 들끓었고,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철의 여인’이란 별명은 그냥 붙여진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위원장의 안보관과 경제관은 어떤가? 박 전 위원장은 보수우파가 믿어 의심치 않는 확고한 안보관의 소유자인가? 누차 지적한대로 박 전 위원장은 6.15, 10.4선언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김정일 세습정권의 북한을 명백한 적대세력으로 규정한 이회창 전 총재의 대북관을 숨이 막힌다고 비난하고 탈당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허가로 사실상 특사가 돼 방북한 사람이다. 그때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서로 간 어떤 약속들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올해 2월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도 "(남북 간의)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및 10·4 선언을 꿰뚫는 기본 정신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까지 남·북한 간에, 그리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합의한 기존 약속들은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당시에도 우리의 젊은 장병들을 수몰시킨 북한을 비난하기보다 우리 정부를 향해 좌파세력과 마찬가지로 진상조사요구부터 했던 사람이다.

경제 분야는 또 어떤가? 경제 용어라기보다 지극히 정치적 단어인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재벌개혁, 복지 등 듣기 좋은 사탕발림식 포퓰리즘만 말하고 있다. 파탄 직전에 몰린 유럽의 경제위기를 보면서도, 재정이 바닥나 중단위기에 몰린 지자체 보육비 문제를 보고서도 여전히 복지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복지도 중요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복지의 양면성, 그리고 여전히 중요한 성장담론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있다. 이런 박 전 위원장을 보면서 대처와 같은 리더십을 과연 떠올리기나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처는 구멍가게집 딸로 태어나 위대한 국가지도자로 거듭났던 21세기형 리더십의 소유자이지만, 박 전 위원장은 19세기에나 어울릴법한 리더십의 소유자란 큰 차이가 있다.

‘제왕적 리더십’ 보이는 박근혜의 시대착오, 과연 21세기형 리더십인가

자신이 나서서 말해야 할 때도 대리인을 내세워 말하게 하고, 이정현, 윤상현, 이상돈과 같은 ‘환관’ 수준의 아부꾼들로 하여금 희한한 ‘관심법’으로 말실수를 만회하게 하고, 정면으로 나서야 할 모든 사안마다 비껴가기식으로 피해가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할 땐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게 박 전 위원장이 보여 왔던 리더십의 행태다. 그러면서도 제왕적 태도로 당에 군림하는 박 전 위원장의 리더십이야말로 21세기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 그 자체가 아니고 뭔가. 이재오, 박근혜 그 둘 중 도대체 누가 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란 말인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안보관, 경제관 등 모든 분야에서 제대로 검증을 받을 생각 없이 과거 아버지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고 검증이 다 됐다는 식으로, 매사 두루뭉실 넘어가는 그런 불분명한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논리라면 남편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이순자 여사도 훌륭한 대통령감이다.

마침 이재오 의원에게 먼저 21세기론을 꺼냈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박 전 위원장이 깨닫는바가 있길 바란다. 자신에게 제기된 온갖 의혹과 문제점, 비판에 대해 지지율만 믿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솔직담백하게 밝히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기 바란다. 21세기형 리더십, 21세기형 정치인, 21세기 인간형을 요구하는 시대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국민이 박 전 위원장을 보며 “21세기에도 저런 정치인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트위터 주소 : https://twitter.com/phm5670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