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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룰 아집(我執)이 박근혜 ‘국가관’ 보여 준다

무원칙한 원칙주의 버리고 원칙의 본질 생각해야

원칙주의자의 무원칙한 아집과 이기심으로 새누리당이 꽁꽁 얼어붙었다. 밖에서 보자면, 활력은커녕 동맥경화로 생기가 가신 저런 당이 살아있나 싶을 정도다. 그나마 당이 꿈틀거릴 땐 비박주자들의 단발마적 비명소리가 들릴 때고, 당권파가 이들을 밟아 뭉갤 때 정도다.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합리적 비판과 이의제기가 모두 무시당하고 얼굴만 다른 아바타들이 계속 등장해 현란한 언론플레이만 해댄다. 대화와 타협을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가 사라진 곳에 수(數)의 논리, 힘의 논리, 강자의 논리만 횡행한다.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대가로 원칙의 아이콘을 얻었다더니 그 원칙이란 이름으로 당의 민주주의 숨통을 옥죈다. 모순의 극치다.

경선룰을 놓고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펴는 논리는 사실 ‘총체적 원칙 파괴’ 라고 부를 수 있다. 자신이 놓인 처지와 입장에 따라 원칙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져왔는데도 어제도 오늘도 자신의 주장만을 오로지 원칙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근혜의 원칙이라 쓰고 박근혜의 독선·욕심이라고 읽는다. 모두가 절대강자의 눈치를 봐야하는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그 절대강자가 가진 권력의 힘으로 내리찍어 세운 원칙이 모두에게 불편부당한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그건 지배논리에 다름 아니다.

경선룰에 관해선 단 한 가지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인 박근혜 전 위원장의 주장을 보자. 언론이 전했다. 한 친박계 의원이 박 전 위원장의 생각이 이렇다고. "박 전 위원장은 경선룰 개정으로 경선의 흥행을 일으키는 등 이벤트를 통해 지지를 받기보다는 정책비전과 철학을 국민에게 제시해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좋은 말이다. 박 전 위원장이 정쟁을 경계하고 무엇보다 정책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의 이런 원칙은 일관성이 있는 것인가? 지난 대선 때 언론보도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 과거 원칙과 현재 원칙 전혀 다르다

지난 2007년 1월 원희룡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간의 검증대결이 과열되자 양측의 ‘열차페리’ ‘대운하건설’과 같은 정책들이 구체적 실현방안이 없다면서 ‘정책검증을 벌이자’고 제안했었다. 주자간 검증공방이 치열하다 못해 인신공격성으로 흐르자 원 의원이 정쟁보단 정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정책보다 후보 검증이 먼저라며 원 의원의 정책검증 주장을 일축한 것은 박근혜 후보측이었다. 지나친 인신공격으로 비춰질 정도의 이 후보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예방주사’논리를 내세웠던 것도 박 후보측이었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예방주사나 백신을 맞는 기분으로 거를 것은 걸러야 한다" 바로 이게 박근혜 전 위원장의 지난 대선경선에서의 원칙이었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부터 시작해 대선경선도 되도록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치르자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의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혹독한 후보검증조차 ‘예방주사’ 논리로 옹호하던 이가 바로 그였다. 대선승리를 위해선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경선에서의 그의 원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박 전 위원장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완전국민경선제는 단순히 국민 참여 비율의 문제인가? 이 게임의 룰이 어떻게 흥행을 일으킬 수 있나? 정책검증, 후보검증, 총체적 검증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이다. 완전국민경선제를 통해 예방주사를 미리 맞자는 것이다. 상대는 맞아야 하고, 나는 맞을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예방주사가 될 수 있나.

올림픽과 겹치는 경선일정, 변경 않고 국민의 알권리 무시할 작정인가

현재의 경선일정을 고집하는 것도 정책비전과 철학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박 전 위원장의 원칙에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온통 올림픽으로 가 있을 때, 그 와중에 경선을 치르면 자신의 정책비전과 철학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릴 수 없게 된다. 또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게 되고 판단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국민의 입장에선 일종의 알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셈이다. 국민의 관심을 되도록 피해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올림픽 기간과 경선기간이 겹치는데도 불구하고 원칙 타령으로 후보 당사자와 국민모두의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는 이런 불합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만일 이 같은 점을 의식해, 경선일정을 늦추려면 대선 120일전인 8월21일까지 대선후보 경선을 마무리하도록 하고 있는 새누리당 당헌·당규를 고쳐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당헌·당규를 따라야 한다는 박 전 위원장의 또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경선일정을 늦춘다는 건 경선룰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경선일정을 조정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국민에게 전폭적인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에서 완전국민경선제를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박 전 위원장은 이런 우려 때문에 경선일정마저 원칙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은 더 이상 자신의 입장과 기준에서의 원칙만을 고집할 입장이 아니다. 지난 2002년 경선룰 변경 등을 요구하다가 탈당한 전력, 2007년 대선 경선에서의 ‘예방주사론’ 등은 박 전 위원장이 현재 고집하고 있는 여러 원칙들에 위배된 것들이었다. 아니, 애당초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모든 것을 바꾸면서 한나라당의 경선룰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간 것 자체가 박 전 위원장의 원칙이 고무줄 원칙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보수삭제 논란을 통해 당의 정체성마저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그런 유연한(?)태도를 가진 이가, 당권대권 분리라는 자신의 확고부동한 원칙도 비대위를 통해 얼마든지 변칙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이가 유독 경선과 관련해서는 원칙을 따진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이 아닌 독선이고 욕심이라는 것이다.

경선룰 변경은 국민소통의 문제, 국민 떠난 원칙 아무 소용없다

경선룰을 바꾸자는 것은 단순히 경기 규칙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경선 일정을 조정하자는 것은 단지 날짜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더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긴 문제다. 그것은 대선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고, 결국 그 문제는 새누리당이 가진 비전과 철학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린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입을 열 때마다 강조하는 그 자신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원칙이란 미명하에 사실상 모든 확장 가능성을 막고 차단하며 자기부정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원칙’은 궁극적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수단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원칙은 이미 목적을 잃고 자기 욕심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수단으로 전락한 원칙은 존경과 박수의 대상이 아닌 증오와 거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설령 운이 좋게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박 전 위원장이 현재와 같은 원칙을 고집한다면 집권 후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르는듯 해도 국민은 박 전 위원장의 원칙이 어떻게 변질돼가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 전 위원장이 야당 의원에게 문제 삼은 국가관, 국민이 그의 무원칙한 원칙 고집을 이유로 본인의 국가관을 문제 삼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점도 기억하기 바란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트위터 주소 :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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