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니, 차라리 ‘아전인수(我田引水)’에 가깝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감싸려는 이상돈 교수의 충성발언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6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석기·김재연을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박 전 위원장 발언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은) 국민 정서상의 제명을 언급한 것으로 봐야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국가관 문제를 언급하신 것은 아마도 임수경 의원과 같은 사건 등을 포함해 넓은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 같다"고 해석했다.
말 그대로 이 교수의 해석에 불과하다. 박 전 위원장이 좌파진영으로부터 ‘그럼 당신의 국가관은 뭔가’라고 역공을 당하는데 마땅한 옹호논리는 없고, 그러니 ‘국민 정서상의 제명’ 따위의 옹색한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나름 충성심의 발로이겠으나 결과적으로 이 교수가 덧붙인 해석은 박 전 위원장의 제명 발언을 더 분명히 드러내 줄 뿐이다. 박 전 위원장의 입장에선 이 교수의 해석이 떨떠름할 것이다. 국회의원 사상검증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7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등에 힘입어 뜬구름 잡는 식의 모호한 평소 발언들과 달리 명확하게 제명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 교수가 자신의 발언에 시큼하게 초를 쳤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박 전 위원장의 제명 발언을 ‘국민 정서상의 제명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박 위원장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을 제명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두 사람이 제명 대상인지 아닌지 국회법도 잘 모르며 오로지 그저 여론이 결론 낸 데에 따라 움직이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임을 재인식 시켜줬기 때문이다. 이석기·김재연 제명 발언이 박 전 위원장의 원칙과 신념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후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말하지 않겠다”며 다시 입을 닫은 그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설사 두 사람의 제명이 현행법상 어렵더라도, 또 좌파진영으로부터 5.16과 유신 등으로 국가관 역공을 당하더라도 그가 스스로 강조한 원칙과 신념의 정치인이라면 제명 발언에 대해 다시 명확히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차라리 ‘국민 정서상의 제명’ 발언이 이 교수가 아닌 박 전 위원장 입에서 나온 것이라야 했다는 얘기다.
종북주의 비판도 좌파 눈치 봐야 한다는 이상돈의 잣대는 오로지 박근혜
이상돈 교수의 끔찍한 박근혜 사랑은 다른 발언에서도 충분히 감지된다. 그는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사상전을 확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지나치게 문제를 확산시키면 역풍이 불 수 있고,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본질은 사라진 채 이미 역풍이 불고 있다”며 “‘박 전 위원장의 국가관은 뭐냐’는 지적이 들어오고 새누리당이 경직된 보수로 보이며 사상 검증을 하려는 것처럼 보여 이미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역풍이란 뭔가? 좌파세력이, 종북세력이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면 그게 역풍이란 말인가? 그럼 박 전 위원장의 종북 비판이 어느 수준까지는 괜찮고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말인가?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좌파와 종북세력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그럼 침묵해야 한다는 말인가? 북한을 추종하는 주사파를 비판하는 게 ‘경직된 보수’란 말인가? 경직된 보수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주사파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린가? 그의 논리라면 좌파·종북세력에게 공격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아예 입을 닫아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세력의 지지와 환심까지 사려면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된다는 소리 밖에 안 된다. 실제로 이상돈 교수는 지금까지 ‘합리적 보수’란 탈을 쓰고 좌파·종북세력과 똑같은 스탠스를 취해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교수의 사상전 역풍 운운 발언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원래 그는 그런 사람이다.
또 다른 발언들을 보자. “박 전 위원이 유력한 대권 후보이기 때문에 국가관을 묻는 질문은 언젠가 나올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런데 굳이 왜 이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나서 확전을 하는가” “4·11 총선 당시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당은 ‘김대중 정권의 불법 도청’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야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공격이 나오지 않았느냐” “물론 우리 사회에는 심한 왼쪽에서부터 심한 오른쪽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에 두 의원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논리적으로 냉철하게 대응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교수 주장대로 박 전 위원장이 유력한 대권 후보이기 때문에 국가관을 묻는 질문은 언젠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그 자신이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될 문제다. 정치권이 종북주의와 결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초미의 시국에서 그렇다면 박 전 위원장은 그들과 다르게 어떤 국가관을 가지고 있느냐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라는 말인가? 유력한 대권 후보가 자신의 국가관을 지금 밝혀선 안 된다는 이 교수의 황당한 주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이 교수가 5.16과 유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적어도 좌파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박 위원장이 공격받을 모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이 교수 심정이야 알겠지만, 그건 박 전 위원장 개인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발상일 뿐, 보수적 가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종북세력 융단폭격하는 박근혜 지지자, 종북세력 눈치봐야 한다는 이상돈엔 침묵
이석기·김재연의 제명은 법의 원칙으로 안 된다는 이상돈 교수, 이명박 정권의 모든 사안에 법의 원칙으로 비난을 퍼부었던 이 교수였다. 그런 그를 원칙적 보수주의자로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띄운 것이 좌파세력이었고, 좌파세력과 똑같은 스탠스로 현 정부를 비판한 세력이 박근혜 세력이었다. 그런 박근혜 세력과 박근혜 지지자들이 현재 야당을 싸잡아 종북주의로 비판세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 등을 과거를 트집 잡아 ‘좌파’ 심지어는 ‘종북’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종북세력 비판하는 보수우파를 ‘경직된 보수’ 아무것도 모르고 이석기·김재연의 제명이나 주장하는 꼴통보수로 모욕하는 이 교수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박근혜의 남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전원책 변호사가 ‘김정일X새끼’ 발언 했다고 ‘극우’ 보수우파의 수치라며 비난한다. 자신들은 중도·우파성향 정치인이 있건 없건 민주통합당도 종북이라며 싸잡아 비난하면서 가장 앞장서 종북세력을 비판해온 전 변호사에 극우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그들의 ‘종북’논리라면 돌팔매를 가장 먼저 맞아야 할 대상은 이상돈 교수이지 전원책 변호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친박 지지자들은 이상돈에 침묵하고 전원책을 비난한다. 박근혜란 단 한 가지 기준 때문이다. 그 기준은 한 사람은 ‘박근혜의 남자’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 한 사람은 박근혜 충성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 참칭한 일부 박근혜 세력의 보수 가치 훼손, 참된 보수들이 막아야
이런 논리적 모순에 이율배반적인 싸구려 행태에 무슨 보수의 가치가 있고, 보수의 정체성이 녹아 있고, 원리원칙이 있나? 오직 박근혜 옹호 논리 외에 원칙도, 보수의 가치도, 아무것도 없는 이런 자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보수우파를 모욕하는 데도 여전히 법과 원칙, 보수의 가치 떠드는 코미디를 보면서 보수우파들은 비판하지 않는다. 진영논리보다 더 좁고 우둔한 팬클럽 수준의 정치논리가 횡행하는 데도 정권재창출이란 장밋빛 전망에만 젖어 있다. 한심한 일이다.
법과 원칙의 잣대를, 종북주의 비판 논리를 특정 대선 후보 유.불리에 따라 적용하는 건 참된 보수의 자세가 아니다. 보수의 가치를 논하면서 보수의 가치를 포퓰리즘의 행태로 악용하는 정치인을 보고도 침묵하거나 궤변으로 감싸는 것도 보수의 태도가 아니다. 좌파·종북세력 비판도 대한민국 헌법과 정체성이 기준이 아니고 역풍을 맞느냐 아니냐에 따라 계산해서 해야 한다는 이와, 그에 박수치는 이들이 보수를 참칭해도 말 한마디 못하면서 그저 이석기·김재연 등 종북이나 때리면 만사오케이라는 안일한 태도로는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굳건한 토대를 만들기 어렵다. 포퓰리즘과 이미지의 한계라는 덫에 갇혀있는 보수를 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보수를 먹칠하는 사이비 보수정치인·학자들과 얼치기 지지자들부터 비판하고 걸러내야 한다. 종북척결만큼이나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보수 바로세우기의 출발점은 여기부터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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