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한 실수라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싶다. 북한의 ‘통일의 꽃’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꽃으로 변신한 임수경씨 얘기다. 임수경을 시내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탈북자 출신 백요셉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얘기가 어제 온종일 인터넷을 달궜다. 그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이 북한에 있었을 때 남한에서 온 임수경을 기억하고, 또 얼마 전 TV토론에서도 만났던 인연이 있는 터라 반가운 마음에 함께 사진을 찍었단다. 그런데 임수경측 보좌관이 종업원을 시켜 자신의 휴대폰 사진을 강제로 지우게 했고, 불쾌한 마음에 한마디 던졌더니 안면이 싹 변한 임씨가 그때부터 자신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 “변절자” 막말을 쏟아내더라 이거다.
순간적으로 임수경의 안색을 바꾸게 했다는 백씨의 말이 무엇이었을까? 백씨가 녹취까지 했다는 임수경의 당시 발언들을 백씨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북한에 있을 때부터 (임 의원을) 통일의 꽃으로 알고 있었고, 대학 과선배라 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웨이터가 임 의원 보좌관들의 요구로 내 휴대폰의 사진을 마음대로 지웠다” “임 의원의 보좌관에게 ‘타인의 핸드폰 정보를 일반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엄연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수경왈)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보좌관들이 신경 쓴 것이니 이해하라” “알겠습니다. (농담으로)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 “(백씨가 탈북자임을 밝히자) 야,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라,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태경 그 개새끼, 진짜 변절자 새끼야” “이 변절자 새끼들아, 너 몸조심해. 알았어?”
탈북자와 북한인권운동가 출신 하태경에 대한 ‘변절자’ 비난, 임수경 정체성 방증
임수경과 탈북자청년 사이에 오간 이 발언들을 보면, 이 세상에 이렇듯 이상한 대화가 또 있을까 싶다. 임수경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소통하고 자신을 알려야 하는 직업이다. 사진을 찍어선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그런 이유가 있을까만), 어느 때와 장소에서건 국민이 반갑게 사진 찍기를 요청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임수경의 보좌진은 강제로 사진을 지우게 했고, 임수경은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봐 보좌관들이 신경 쓴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탈북자 출신 청년과 사진 한 번 찍었다고 피해 받을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탈북자가 비위에 거슬릴 종북이 아니라면 그 사진을 문제 삼을 사람이, 세력이 어디 있다는 얘긴가.
백씨의 경우와 같이 타인의 핸드폰 정보를 허락 없이 들여다보고 또 강제로 삭제토록 한건 분명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젊은 청년도 아는 상식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자가 모르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정중하게 사진 삭제 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강제로 삭제하게 했다니, 임수경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북한인지 남한인지 조차 헷갈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임수경 본인의 말대로 탈북자주제에 감히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아는 척 까불고 개긴 자체가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그가 2012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기엔 자질이 심각히 부족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건 역시 변절자 운운한 대목이다. 탈북자와 북한인권운동을 해온 하태경 의원을 ‘변절자’로 보는 건 그가 충성할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북한 김정은의 지배를 벗어나 탈출했다고, 그런 탈출자들을 도왔다고 ‘변절자’ 운운하며 막말을 해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우리는 상상이나 해 본 적이 있던가? 임수경은 과연 대한민국 품으로 전향한 것이 맞나? “너희들 몸조심해라”고 협박하며 변절자를 제 손으로 살해하겠다고 떠드는 자가 국회의원이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런 저질의 ‘근본도 모르는 국회의원 XX’가 속속 등장하거나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전원책 변호사가 단적인 예로 말한 ‘김정은 X새끼’ 발언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어쩌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3류 종북 의원은 식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총살’단어 하나에 격해져 실수했다는 임수경의 고백은 하태경 의원의 지적대로 그가 쉽게 이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또 탈북청년이 총살 발언으로 정말로 얘기하고 싶은 게 뭔지 핵심 파악 능력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걸 뜻한다. 단어하나에, 술김에 그토록 쉽사리 이성을 잃는 그가 앞으로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고, 여당과는 어떻게 대화하고 법안을 만들며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지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다. ‘변절자’ ‘X새끼’ ‘죽여버리겠다’ 가 자칭 민주화 세력의 민주주의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면, ‘죽여버리겠다’고 자신을 협박한 상대를 향해 ‘술을 끊어라’고 점잖게 충고한 하태경 의원의 모습은 대한민국 ‘극우’로 매도되는 우파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준 셈이다. 임수경과 그가 속한 진영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임수경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걸맞게 종북 의혹 해소하고 국민을 위해 진짜 ‘변절자’가 돼야 한다.
종북논란 유탄 맞은 민주통합당과 박근혜의 무책임한 태도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전 대표만을 물고 늘어진다. 지난 2002년에 북한 김일성 생가를 방문해 북을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엉뚱한 물타기다. 마치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의혹엔 답하지 않고 박근혜에 말도 안 되는 입장 표명 요구를 하고 있는 것과 꼭 같다. 민통당이 국회에서 주사파 세력을 퇴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를 걸고넘어진다고 해서 자당 소속 임수경의 자질논란, 종북의혹, 연대세력인 통진당의 종북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민통당이야말로 현재 야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문제투성이에 대해 국민에게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판이다. 오직 권력야욕 하나 때문에 문제 있는 세력에 대한 검증도 하지 않았고, 도덕성, 자질, 능력, 그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 총선 후 계속된 종북논란, 자질 미달 따지고 보면 ‘묻지마 연대’로 시작된 일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는 종북’이라며 민통당으로부터 종북논란의 유탄을 맞은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우파들은 이미 일찍부터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그의 방북에 대해 설명하고, 대북철학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에게서 속시원하고 허심탄회한 대북관을 들은 적이 없다. 이번 통진당 사태도 종북주의가 국민에게 지탄을 받고, 여론의 판결이 끝난 뒤에서야 뒤늦게 이석기, 김재연 제명을 요구하고 민주통합당도 책임지라고 밝혔다. 여론 간 보며 내내 침묵하다 상황종료 된 후 한마디 툭하고 던지는 예전 그 고질적 버릇이 또 나온 것이다.
매사 이렇듯 ‘기회주의자’로서의 일관성만 보이니 결국 종북주의의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그간 좌클릭하며 경제는 물론 대북문제도 ‘6.15, 10.4선언 존중’ 등으로 유화적 분위기를 풍기던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종북이 한참 논란이 되니 요샌 좌클릭 발언도 쑥 들어갔다. 오히려 대북강성 발언이 자주 나온다. 집권에 도움이 된다 싶으니 이제 또 우클릭 발언의 간사함이 엿보인다. 뚜렷한 철학과 소신 없이 이처럼 시류에 따라 때로는 좌로 때로는 우로 흘러가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초지일관 ‘종북’ 소신의 주사파 세력과 임수경을 비난하는 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그 비난 발언에 과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담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한 색깔과 이념을 가진 주사파 척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민이 그런 주사파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고, 법치와 투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변신하는 기회주의자들은 퇴출이 어렵다. 늘 시류에 영합하기 때문에 진짜 얼굴과 이념을 알기 어렵고 쉽게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종북주의 시국에서 반사이익만을 취할 게 아니라, 스스로 걸어온 기회주의를 반성해야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변절자가 되선 안 된다. 임수경의 ‘변절자’들은 약자고, 애국자고, 건강한 국민에 속하지만 우파의 ‘변절자’ 박근혜, 새누리당은 강자고, 반역자에, 국가와 국민을 병들게 만드는 또 다른 악성 종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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