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까지 정치후진국이 될 순 없다.
북한 김정일 장례 조문을 두고 남남갈등이니 하는 표현들을 언론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가벼운 처사라 하겠다. 이에 대한 사람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이해득실이 다르고, 또 북한 때문에 가족을 잃거나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조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이런 일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니 대범하게 넘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公)은 공이고, 예(禮)는 예이다. 북한이 졸지에 당한 일이라 경황이 있을 리 없을 터, 그렇지만 정부에선 정식으로 조문특사와 함께 대규모조문단을 보내는 것이 상례이다.
물론 이미 짐작한 바대로 북한에선 일체의 해외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지만 아직 장례일까지는 시간이 있다. 동원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동원해서 조문단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남한은 해외가 아니다. 비록 총을 겨누고 있지만 우리는 원래가 한 나라였고 머잖아 다시 한 나라가 되어야 할 동족이기 때문이다.
조문은 정치외교의 꽃 중의 꽃
조문외교 사례는 역사상 수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그에 대한 절묘한 고사들도 많다. 비록 적국이라 해도 심지어 전쟁 중인 국가끼리도 왕이나 그 인척들이 죽었을 적엔 일단 전투를 중지하고 조문단을 보내 예(禮)를 표하는 것이 동양의 전통적인 예법이다. 당사국도 비록 적국이라 해도 조문단을 거절하는 법이 없거니와 원수가 죽었다 해서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것 또한 대범치 못한 처사라 여겼기 때문이다.
조문을 통해 나라 간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꼬투리를 모색하고, 상대국의 정세와 의중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싫고 좋고를 떠나 무조건 조문사절을 보내야 했다. 어쨌건 이를 계기로 만나서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또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몰려 온 여러 주변국 특사들이 물밑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조문을 받아야 한다.
현재 북한이 처해있는 온갖 난관은 이미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이번 김정일 사망은 기실 북한 주민은 물론 정권에게도 다시없는 행운의 기회이다. 조문을 개방으로 나아갈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러니 체제의 불안을 감추기보다 대내외에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내세워 체제를 안정시키는 기회가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북한이 해외 조문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북한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기회에 북한에서 현명하고 전향적인 인물이 부각될 수 있도록 부추겨서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야 한다.
한국정부가 조문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망설이다가 공식조문단 파견은 없고, 대신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방북만 허락한다 하여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보내면 보내고 말면 말지 이 무슨 훼괴하고 치졸한 장난인가? 조문단 파견은 공적인 문제이지 여론이나 정당, 혹은 정치인 개개인의 의향에 따라 우왕좌왕할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도대체 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민간인 신분의 두 여성에게 떠맡기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그토록 자신이 없는가? 남이나 북이나 어찌 이토록 판세를 제대로 읽는 인물이 없단 말인가?
현재 집권당에서는 박근혜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그러니 그를 조문특사로 임명하여 정계, 재계, 종교계 대표들로 공식적인 조문단을 꾸려 북으로 보내야 한다. 설사 저쪽에서 받아주지 않아 판문점에서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정에 맞춰 올라가야 한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국격(國格)은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이는 우리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조문을 둘러싼 갈등을 잠재울 수 있고, 정부의 위신이 바로 선다. 정치는 감정으로 하는 것 아니다. 진정한 햇볕정책이란 이런 것이다.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원수가 죽었는데 무슨 조문?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조문단을 보내야한다. 우리끼리 안에서 보수 진보 다툴 때에야 민심이니 여론이니 하며 눈치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외적인 문제는 곧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다. 따라서 민심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그게 지도자의 책무이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뒤늦게 파악했다 해서 관련기관에 대한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 한심하지만 그게 이 정부의 한계인 걸 어쩌겠나. 해서 더더욱 공식조문단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직접 만나보고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다. 관상은 기본이고 걸음걸이, 악수할 때의 눈빛, 말할 때의 음색 등등 직접 만나 슬쩍 훑어만 보아도 그대로 심상(心相)까지 파악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본 재계 종교계 원로들이 이런 일에는 제격이다. 국정원이나 연구소 파일보다 그런 정보야말로 진짜 고급정보란 말이다. 적진 심장부까지 들어가 핵심인물을 모조리 대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다하다니 이게 제 정신이 있는 정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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