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현장에 설치되는 폴리스라인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그 원인을 두고 각자의 주장이 다르다. 시위주최측은 경찰의 과잉진압 탓으로 돌리고 있고, 경찰 측은 시위대의 불법집회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서장폭 행사건으로 양측간 논란이 일고 있는 이번 광화문FTA반대집회도 지금까지의 다른 시위와 마찬가지로 폴리스라인이 무너졌다. 시위주최측이 정당연설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집회가 거기에 맞게 정당들이 자신들의 주장만하고 끝났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 집회도 불법시위로 이어져 시위대들이 경찰이 광장과 도로 사이에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넘어 도로를 점거하는 통에 한때 차량통행에 심한 혼잡을 빚었다.
필자에겐 폴리스라인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1970년대 말 한-미간엔 박동선사건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이 사건을 마무리하기위해 당시 시빌레티 법무차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대검찰청에서 검찰과 조율을 끝낸 시빌레티 차관이 검찰청사 앞에서 통역을 앞세워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그의 요구로 기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위해 땅바닥에 분필로 둥그렇게 줄을 그었다. 그것이 그 당시로는 처음 듣는 폴리스라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작된 기자회견은 여러 차례 중단됐다. 기자들이 좀 더 가까이서 듣기위해 분필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시빌레티 차관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신경질을 부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묘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진 않았지만 당시 검찰을 출입하고 있던 기자로서는 ‘덜 떨어진 나라의 기자들이라 하는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약간의 수치심과 함께 불괘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후부터 나의 뇌리에는 폴리스라인은 침범할 수 없는 질서선이며 성역이란 인식이 뿌리내렸다. 라인 안에서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위해 구호를 외치고 피켓시위 등을 할 수 있지만 라인 밖에서는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불편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기초해 경찰이 단호히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돼 있다. 미국의 경우 주지사든, 상원의원이든, 직책에 관계없이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침범한 시민에게 무자비하게 몽둥이질를 해도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1999년 5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질서유지선을 포함시키면서 폴리스라인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시위가 수없이 일어났지만 폴리스라인은 법전 속에서만 존재하는 규정이었다. 시위대가 3천명이며 경찰 3천명이 동원돼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대1로 해도 폴리스라인을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서양과 달리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분위기 탓도 있고 OECD 30개국 중 27위에 이를 정도인 우리국민의 낮은 법의식도 문제다. 남북대치상황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북한 추종자들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직업적인 시위꾼들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위현장에서 불법을 앞장서 저지르는 자 들이다.
복합적이고 고질적인 우리시위문화를 한꺼번에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시위주최자 등 사회지도층이 솔선해 폴리스라인을 지키고 집시법을 존중한다면 현재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란 생각이다. 경찰서장 폭행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이번 광화문집회사건만 하더라도 준법집회가 됐다면 교통이 막히고 서장이 폭행당하고 계급장이 찢기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위주도층에는 지난번 대선 때의 야당 대통령후보, 야당대표들도 있었고 상당수의 국회의원도 참여했다. 이들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질서유지를 당부하기보단 앞장서 불법집회를 유도했다. 그러고서도 불법집회원인을 경찰의 과잉진압 탓으로 돌렸으며 심지어 현장 기자들의 증언이 있는 데도 서장폭행사건은 자작극이라는 억지주장까지 했다. 만약 그 야당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 때도 이번시위가 불법으로 흐른 것이 경찰의 과잉진압 탓이며 경찰서장 폭행사건은 자작극이라 주장할지 의문이다.
법이란 ‘내가 하면 스캔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를 적용할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집시법에 질서유지선을 명시했다면 여당과 야당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된다.
시위에 대처하는 경찰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면 될 일인데도 정치권 눈치를 보고 여론에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폴리스라인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논쟁의 소재가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유지선이다. 어린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마구 흐트려 놓을 수 있는 장난감은 더 더욱 아니다.
도준호 본사대표<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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