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을 앞두고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행보가 가파르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미 국민참여당의 당대표로 내정된 상태에서 기자회견, 강연, 간담회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유시민 전 장관의 행보에 민주당에서는 적절히 제동을 걸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민주당에서 공들인 경남 김해을 재보선에 김경수 봉하마을 사무국장이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유시민 전 장관의 영향력 탓이라 분석하고 있다. 이른바 친노세력의 적자론이다.
유시민 전 장관의 언론플레이 능력은 타 정당 인사들을 월등히 압도한다. 의석수 하나 없는 미니 정당 국민참여당의 당대표 내정자로서 거대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들을 능가하는 이유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을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에 발끈하여 이인영 최고위원, 장성민 전 의원 등이 유 전 장관을 비판했으나, 유 전 장관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시민, “다른 사람들이 좌클릭하다보니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 전 장관은 17일 당대표 토론회에서 '정책은 우클릭, 정치는 좌클릭했다'는 지적에 대해 유 원장은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는 몇년 전부터 그 자리에서 일관된 입장을 지키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왼쪽으로 '좌클릭'을 해서 상대적으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 원장은 "나는 참여정부 때와 거의 마찬가지의 이념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유 전 장관은 재보선, 총선, 대선 때의 야당 연합을 위해 민주당과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느닷없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따라 너무 좌클릭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좌파 정당으로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이라 비판받았던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이념적 위치와 변한 게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시민 전 장관의 노무현 정권 당시의 입장들은 어떠했을까? 좌파정당들이 야권연대의 가장 중요한 고리로 보는 한미FTA에 대해 유시민 전 장관은 최전방에서 이를 돌파하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
유 전 정관은 한미FTA 협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이에 참여했고, 협상 타결 이후 이를 적극 홍보했다. 그러자 시민ㆍ사회단체가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서 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하자, 유 전 장관이 "기쁜 마음으로 청문회에 참석해 사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현혹하는 무책임한 선동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관세 낮추고 자유무역 확대해야” 한미FTA 찬성은 유시민의 지론
야권연대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유 전 장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시절 체결한 한미FTA 원안에 대해선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도덕적 선악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입장엔 변함이 없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진 건, 역량이 부족한 중도성향 자유주의 정부에 대해 진보야권이 대결적 자세를 갖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FTA 자체만 갖고 도덕적 선악의 잣대를 대는 게 합당하느냐 그렇게 지금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유 전 장관은 2010년 11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관세를 낮추는 등 자유로운 교역이 필요하다는 데는 찬성한다”라며 근본적인 찬성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유시민의 자유시장경제론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물론 유 전 장관이 좌클릭했다 비판하는 민주당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미FTA 반대를 위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전 대표 등과 미국을 다녀온 천정배 의원은 “앞으로 우리의 공공정책권은 심각하게 침해된다. 우리가 열망하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우리 자신의 주권적 수단인 공공 복지권을 미국의 자본 투자자에게 넘겨주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것”이라면서 “농업, 축산, 의약품, 자동차 부분마저 미국에 대폭 퍼주고 말았다”며 탄식했다. 천정배 의원이 비판한 공공 복지권을 미국의 자본 투자자에게 넘겨준 원흉은 바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유 전 장관은 물론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미국의 오바마 정권이 수정 요청한 타결안을 수용하여,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안과 달라졌다”는 논리로 최소한의 반대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이 한미FTA 찬성 의견을 워낙 여러차례 밝혔고, 보건복지 분야의 협상 당사자로서, 이러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빠져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한미FTA 비준안 논의가 시작될 2월 국회, 재보선을 거치면서 유 전 장관은 좌파 정당은 물론 좌클릭한 민주당과의 노선 차이가 더 분명히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당시 “한나라당과 공생해야” 전도사 역할 자처하기도
유 전 장관의 노선에 대해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가장 문제삼는 대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이를 밀어붙인 전도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는 별로 없다”고 발언한 점이 두고두고 유 전 장관의 발목을 잡아오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은 대연정에 대해 2005년 9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문답했다.
“지지자들이 혼돈을 겪는 것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다며 지지자들에게 연정을 강요하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다.
=유권자들, 지지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나도 한나라당이 싫지. 그러나 싫다는 감정에 입각해 계속 이런 대결적 정치를 만드는 선거제도를 유지하면 어디로 가죠?
<한겨레>에 칼럼 쓰는 분들 말처럼 계속 한나라당은 극복의 대상이면? 물론 극복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선거제도가 이렇게 돼 있는 이상 한나라당은 절대 안 망한다. 50년 가면 망할 수도 있지만, 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는 때려죽여도 한나라당이 극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정해야 한다. 공생해야 한다. 공생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제 갈 길 갈 수 있도록 만들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국민이 한나라당을 살려나가는데 인정 안 하고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은 이 민주화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이제 지극히 자유로운 민주공화국으로 왔다. 이런 미완의 과제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면서도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우리 정치사회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선진화의 시대로 가야만 한다. 경쟁과 공존, 대립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정치 풍토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니 그런 인프라를 짜자고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선거구제 개선만 해주면 다 준다는 것 아니냐“
유 전 장관의 이러한 한나라당과의 공생론은 이명박 정권 들어 많이 퇴색했다. 유 전 장관이 주장하는 야당연합이야말로 한나라당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여, 이들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노선이 다른 야당들이 모두 뭉치자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 전 장관의 한미FTA찬성론, 복지론 등은 한나라당의 정책과 전혀 차이점이 없다.
이 때문에 장선민 전 의원은 “유시민 장관은 과거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장해 왔고, 한미FTA를 주장해 왔고, 이라크 파병을 주장했는데, 이게 전부 한나라당하고 정책이 똑같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담없던 정동영 최고위원은 친북좌파로 사상전향
유 전 장관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은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실용주의 노선에 있었던 인물이었으나 지난 해 민주당 당대표 선거 당시 민주노동당식 친북좌파로 사상전향을 선언했다. 그뒤 정동영 최고위원은 무차별식으로 친 김정일 발언과 무상 복지 발언 등을 쏟아내고 있다. 유 전 장관이 비판한 ‘좌클릭으로 우르르 몰려간 정치인’의 상징적인 인물인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좌클릭으로 몰려간 결정적인 이유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좌파 정당과의 야권연대 때문이다. 좌파정당은 설사 연대를 하지 않을지언정 자신들의 좌파 노선에 대한 일체의 수정을 거부하는 정치 결사체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에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다 함께 하기로 했다. 민주당과는 연대는 할 수 있지만 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국민참여당 역시 우리가 제시하나 기준에 동의하면 가능하겠지만 그쪽이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유시민식 자유경제론으로는 이론적으로 통합은 물론 연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이러한 좌파노선에 적극 협력한 반면, 유시민 전 장관은 야권 연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조차 이러한 노선 전향을 거부하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 출범 이전,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때부터 자신을 좌파가 아닌 자유주의자로 규정해왔다. 즉 유 전 장관의 노선은 오랫동안 축적된 자신의 이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유 전 장관이 좌클릭을 하는 순간 노무현 정부의 노선 전체를 부정해야한다는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도 못했고", "분양 원가 공개 공약이 좌초당할 때 반기를 들지 못했"으며, "한미FTA를 초고속으로 밀어붙일 때도 비켜서있었다 "며 노무현 정부의 우클릭을 비판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어차피 친노인사도 아니었던 정동영 최고위원으로서는 가볍게 노무현 정부를 우회전 정부라 비판하고 넘어가는데 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왕의 남자’라 불렸던 유 전 장관은 일체의 노선 변화와 반성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0년 11월 보육 토론회에서 "무엇 때문에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 주느냐"고 했던 유시민 원장은 최근에도 "모든 복지를 국가 책무로 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적극적 복지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의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사안별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결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유시민, “진보신당도 우클릭할 필요없고, 나도 좌클릭하지 않겠다”
또한 “민주당 이 더 왼쪽으로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 왼쪽으로 더 갈 수는 없다"던 유 원장은, "통합을 위해선 유시민의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심상정 전 의원에게도 "우리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더러 '우클릭'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상태 그대로 하자는 거다. 그쪽이 태도를 바꾸면 더 좋겠지만"이라고 답했다. 이런 그를 두고 "기존의 강성 이미지를 벗고 중도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방향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그의 '복지국가관'은 일관돼 있다.
유 전 장관은 민주당식 좌클릭으로는 절대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있다. 유 전 장관은 당대표 토론회 때 "아주 진보적인 노선을 표방했던 정당들이 왜 국민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하겠느냐"며 "진보 진영 자체의 문제인지 그 내용의 문제인지, 그 과정이나 문화의 잘못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진보자유주의를 표방하다 폐기한 바 있다"는 한 패널의 질문에 "지금 복지에 대한 관심, 진보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이 국민 속에서 자라고 있다"며 "정치인은 표를 받아야 하니까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유 전 장관이 자유주의 노선을 고집할 경우 대체 무엇을 고리로 좌클릭하는 민주당과 좌파정당들과 연대를 해나갈 것인지 반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유 전 장관이공생관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던 한나라당을 왜 부정하며,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를 위해 노선도 맞지 않은 좌파정당과 왜 손을 잡아야하는지에 대한 답도 분명치 않다.
유시민의 이명박 정부 비판은 노선이 아닌 방법론, 현 정부에서 총리도 할 수 있는 인물
이 때문에 좌파정당 일각에서는 “유 전 장관이 결국 단일화를 통해 좌파 정당의 출마 자체를 막은 뒤, 자신의 집권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유 전 장관은 상황이 긴박해지자, 인터넷선동을 통해 좌파정당을 찍으려는 네티즌들의 여론을 돌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투표하도록 하여, 좌파정당으로부터 원한을 사기도 했을 정도이다. 유 전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좌파정당의 노선과 정책이 아니라 오직 표라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이 최근 한나라당에 대해 퍼붓는 비판은 이념이나 노선보다는 ‘토목정당’, ‘무능정당’ 등등 국정운영의 방법론으로 한정되어있다. 이러한 방법론의 논리라면 극단적으로 유 전 장관 하나만 이명박 정부의 총리로 임명되면 꽤나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치 노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없다며 대연장을 제안했다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서 유시민 전 장관에게 대연정을 제안해도, 노선이나 정책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자유주의 노선, 경남김해가 아닌 전남순천에서 판가름날 듯
경남김해을은 김경수 사무국장의 불출마로, 어떤 방식을 거치든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봉수 단일후보가 한나라당의 후보와 맞대결을 하게 되면 유 전 장관의 노선의 문제점이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남순천 선거이다. 민노당 후보, 민주당 후보, 민주당 탈당 후보, 무소속 김경재 후보 등이 난립하게 되면, 전남순천 선거는 치열한 사상과 이념, 노선 전쟁의 판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유시민 전 장관의 노선이 전남순천 선거에서 간접적으로 심판받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유 전 장관이 노선과 관계없이 우파세력을 타도해야할 적으로 규정해왔다는 점에서, 의외로 유 전 장관의 활동반경이 그리 크지 못하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노선은 좌파와 선을 긋고 우로 돌아섰다 해도, 우파성향 유권자들이 유시민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 전 장관은 자칫 좌우 양측에서 압사를 당할 위험성도 충분히 있다. 유 전 장관 하나의 힘만으로 이러한 구도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변희재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