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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영, 나는 당신같은 기자가 되지 않겠다"

기자 기본의 실력 배양보다는 처세술에만 연연

기자가 된 후 첫 인터뷰 상대는 개그맨 안상태였다. 20대를 위한 조언을 요청하자 그는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아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꼭 성공한다”고 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고민하는 20대가 덜 조급해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취지라 이해했다.

모든 문제는 ‘주변’이 잘못됐기 때문?

최근 발간된 서적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불안한 경제와 맞물려 크게 성공한 처세술, 성공전략, 자기계발서 종류로 딱히 콘셉트 면에서 특별하진 않다. 그러나 작가의 이력이 독특한 탓인지 언론 노출도가 높다. 책을 쓴 작가 이여영은 네티즌들 사이에 촛불해직기자, 슈퍼모델 참가자 출신의 언론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를 읽은 소감은, 한 마디로 실망스러웠다. ‘20대 여성 직장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설수 있도록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책’ ‘20대 초반을 위한 20대 후반의 조언’으로 포장된 이 책은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했다. 제목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중앙일보 인터넷뉴스부에서 살아남기’ 정도라면 이해해줄 법한 구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같은 20대 신입 여자 기자로서 그녀의 의견이 공감될 법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후배 20대를 향한 조언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를 무리하게 일반화시킨 기존 처세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전반적으로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았다. 기자라는 특수한 직업의 경험이 보편적일 수 있는지, 그 중에서도 중앙일보라는 특정신문사 경험을 사회생활의 일반화된 모델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둘째, 자칭 전문기자라 주장하면서도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다룬 부분은 보기 힘들었다. 그의 전문 분야를 다룬 챕터 ‘와인과 고뇌의 나날들’에서 역시 그저 자신이 애주가라는 설명뿐이었다. 셋째, 그를 둘러싼 모든 문제의 근원은 본인이 아닌 외부인과 외부요인들로 묘사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그저 그런 인터넷 기자’라 평가하는 주변사람들 탓에 자신의 의견이 무시됐다는 것이다. 사회초년생들에게 ‘너희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주변이 잘못됐기 때문’이라 일러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당당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점은 물론 높이 평가 한다. 갑작스런 해고통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했던 그녀의 용기에도 박수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은 곧 처세이며, 자신을 대하는 외부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그녀의 결론은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처세술 속에 사라진 ‘정말 필요한’ 것

교보문고에서 집계한 2007년과 2008년 최고 베스트셀러는 ‘시크릿’이라는 책이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고 홍보된 이 책은 대표적인 처세서다. 한 대형 인터넷 도서 판매 사이트의 ‘사회초년생을 위한 조언과 책 추천’의 대부분도 ‘이기는 습관’ ‘직장인 생존 철칙 50’ 등 처세서였다.

언제부턴가 미디어는 사회초년생들에게 처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하는 책들도 잘 팔리는 책들도 그에 집중됐다. 그 사이 20대의 ‘실력쌓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당연시 여겼거나 그것보다 처세술이 더 중요하게 여겼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그러나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모든 20대 사회초년생들이 사회를 처세술로 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판단을 하는 20대가 있다는 현실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다시 이여영의 책 한 대목을 보자.

“늘 열심히 일하지만 승진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기자가 안타까워 보여 사내정치의 수순도 조언해 줬다. 그는 그저 타이틀이 필요한 사내정치에 초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임 편집국장이 그에 대해 극찬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다. 사내정치를 떠난 듯하면서 최고 수준의 정치를 했을 지 누가 알겠는가. 겉으로 드러난 일만을 갖고 함부로 판단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p87~88 요약)”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한 선배를 편집국장이 칭찬하자 곧바로 사내정치로 해석한 이여영의 글을 보며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정치’라는 코드를 정말 좋아하는가보다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0대는 말 그대로 초년병일 뿐이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실력에 대한 투자보다 (혹은, 적어도 실력에 대한 투자‘만큼’) 처세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는 발상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그런 식의 사고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고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꿈만 꾸는 이상론자라는 식의 발상은 애늙은이의 어른 흉내내기밖에 안 된다.

안티테제 역할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책

대부분 기자들은 기사작성의 원칙으로 중립성, 객관성, 공정성을 꼽는다. 이여영도 책에서 기자생활의 대원칙을 언론의 자유, 편집권의 독립, 진실에 대한 추구로 꼽았다.

이여영을 유명하게 만든 건 촛불 필화사건이었다. 그 결과 촛불해직기자라며 진보좌파 언론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미디어오늘에서는 촛불로 ‘권력의 눈 밖에 난 기자’라며 인터뷰까지 했다. 촛불정국 당시 이여영은 자신의 블로그에 ‘중앙일보 인터넷 뉴스부 소속기자’로서 본인 스스로 “냉철한 기록자가 되기에는 서울시청 맞은 편 플라자호텔 고층이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도저도 아니었다.”면서도 “촛불 집회에는 배후 세력은 물론 지도부도, 심지어도 주최측마저 없어 보였다.”는 추측성 주장을 실었다.

이여영은 촛불필화 사건으로 본인이 해고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게 해석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정치적 사안을 떠나 스스로 기자자질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다. 기자가, 기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시작한 블로그라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추측성 글을 쓴 기자의 자기반성조차 없이 모든 것을 남 탓과 권력의 탓으로 돌리는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필자뿐일까.

8개월의 기자생활 동안 내 스스로의 한계 극복을 위해 매일 실력 쌓기에 고군분투한다. 아는 게 없다는 자격지심에 매일 수권의 책을 읽고, 선배들의 시사토론을 귀 기울여 듣는다. 부족하면 부족함을 인정한다. 모르는 건 언급을 삼간다. 확실치 않은 건 기사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처세술은 부리고 싶어도 그런 걸 생각할 여유 자체가 없다. 배워야 할 건 너무 많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늘 부족하다.
이여영 기자-현 시점 기자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타당하다면-의 책을 읽고 말하고픈 건 하나다. 나는 당신 같은 기자가 되고 싶지 않다. 언론사에 몸담으면서도 늘 처세를 생각하고, 확실치 않은 주관적 견해를 객관적인 양 쓰고, 2년 어치 정도의 자기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이렇게 사는 게 옳다고 누군가에게 충고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여영 기자의 책은 내게 도움이 됐다. 앞으로의 기자 생활에 있어 분명한 안티테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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