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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여신 산다라박, 대한민국 강타"

동아시아의 순수함의 가치를 한국적 세련됨으로 승화시켜


* 주간 미디어워치 22호 기사입니다.

여자 빅뱅으로 알려진 2NE1의 산다라박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그들의 데뷔곡 ‘I don't care'는 각종 뮤직 차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산다라박의 국내 진출 성공은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에서 가장 유력한 방송사인 ABS-CBN의 연예인 공개 채용프로그램 'STAR CIRCLE QUEST‘를 통해 데뷔한 산다라 박. 그녀는 7000명의 지원자 중 2위로 선발되었다. 외국인으로 상위입상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선발기간 동안 뛰어난 연기력과 재치를 바탕으로 인기를 쌓아온 그녀는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산다라 박 특집방송‘을 했을 정도이다. 국내에서는 필리핀의 연예인 조셉과 연인 사이로 보도되었지만, 이것은 필리핀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상의 연출이었다. 실제로 산다라박이 2위로 입상할 당시 1위였던 남자 배우 히로와도 연인 컨셉으로 TV와 영화에 출연한 바 있고, 연인 사이라는 오해는 히로 때도 있었다.

산다라박에 대한 냉정한 평가

산다라박에 대해서라면 지난 해 KBS 인간극장 ‘내 이름은 산다라박’이라는 방송을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에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산다라박의 한국 진출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그녀는 필리핀에서는 톱스타로서 연예활동을, 한국에서는 평범한 가수지망생으로서 맹훈련을 하게 되었다. 양현석 대표는 “대체 너를 언제 가수로 데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산다라박이 언제 데뷔하느냐”는 질문에 “데뷔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국내 필리핀 음악 마니아 사이트 내에서의 산다라박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필리핀 원주민 고유문화, 스페인 문화, 미국의 팝문화가 결합되면서, 음악의 리메이크 시장이 가장 발달된 곳이 필리핀이다. 리메이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수의 가창력이 필수적이다. 인물을 비교하려면 단체사진을 찍어봐야 알 수 있듯이, 카펜터스, 셀린디온, 휘트니휴스턴 등 팝 역사의 명가수들의 노래를 다시 부르면 그들의 가창력이 자연스럽게 검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메이크 시장에서 살아남은 필리핀 톱가수들의 가창력은 미국의 가수들보다 뛰어나다. 산다라박이 히로와 주연한 영화 ‘Can this be love'에서 주제곡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최고의 가창력을 갖춘 여가수 사라제로니모가 부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적 전통의 소녀 댄스뮤직

이러한 필리핀 가수들의 가창력과 비교하면 산다라박은 평가를 해주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런 산다라박은 필리핀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겨울연가>, <파리의 연인>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통한 한류붐이 일고 있다. 또한 세븐 등, 필리핀 현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고난도 댄스가수의 인기도 여전하다. 그 점에서 본다면 산다라박은 역시 필리핀에서는 매우 희귀한 댄스풍의 노래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어찌보면 한국 음악의 전통이나 다름없다.

소녀댄스그룹의 원조는 SES와 핑클로 시작된다. 그 이전의 BB나 슈의 경우, 락댄스와 발라드로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아이돌 댄스음악으로 완성되지는 못했다. 물론 개중 SES는 매우 세련된 일본풍의 팝으로 변모해간 반면, 핑클은 늘 소박한 한국적 댄스를 유지했다. 핑클의 데뷔곡인 <내 남자친구에게>의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한국적 댄스곡의 상징니다. 그야말로 조잡하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 노래가락, 가사, 그리고 뮤비 영상은 놀랍게도 1998년 최고의 노래와 가사와 뮤비로 꼽혔다. 당시 음악평론가들의 분석은 IMF시의 살벌한 구조조정과, 취업난 속에, 대학의 취업준비생들이 <난 니꺼야>라고 깜찍하게 미소짓는 평범한 소녀들에 반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너무 세련되거나 값비싸 보이는 SES보다는 무언가 어설프고 소탈해 보이는 핑클이 오히려 더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산다라박의 필리핀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데뷔 당시의 핑클과 유사했다. 필리핀 내에서도 너무 유창하게 팝음악을 리메이크하는 자국의 가수들보다는 귀엽고 발랄하고 소박한 산다라박의 매력이 독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떨까?

섹시하다 못해 퇴폐미로 빠져버린 한국의 댄스음악

최근에는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등 다시 여성댄스그룹이 대유행이다. 산다라박이 소속된 2Ne1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들과 핑클이나 SES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그 영향력은 턱없이 떨어진다. 이미 음반 판매량에서 비교할 수가 없고, 세대의 층의 폭도 다르다. 의미심장한 점은, 핑클과 SES 이후에 나온 아류 여성댄스그룹이 이효리의 컨셉을 따르며 온통 섹시미로 포장한 반면, 최근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그리고 2Ne1은 소녀 컨섭과 섹시 컨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핑클이 데뷔할 당시는 90년대 중반학번들이 대학에 복학했을 시점이다. 그리고 초중고생들의 팬층 역시 매우 넓었다. 이들 중 이제는 서른을 넘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핑클에 열광했을 때의 사회와 지금의 사회가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여전히 취업은 어렵고 삶은 힘들다. 그리고 2009년 산다라박의 21Ne1이 다시 나온 것이다.

음악은 세련됨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늘 복고라는 또 다른 유행을 유발한다. 특히 더 이상 만들어낼 것이 없는 한국시장에서는 80년대 곡들을 흔히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핑클을 다시 리메이크 할 수 있을까? 이미 도박판으로 변질된 한국의 연예시장에서 핑클과 같은 그룹이 나오기는 어렵다. 기획사만 들어가면 모조리 성형수술로 똑같이 만들고, 똑같은 춤을 가르치고, 똑같이 벗기는 단세포적 기획만이 판을 칠 뿐이다.

그 점에서 산다라박의 등장은 오히려 한국팬들에게도 더 참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약간은 어설픈 가창력, 자연스러운 얼굴, 아기자기한 율동, 현재 한국의 댄스가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보이지만, 음악에도 순수함의 미학이라는 것은 늘 존재한다. 산다라박은 이러한 원천적 가치를 각고의 노력으로 세련된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21Ne1의 다른 여가수들과 달리 유독 나이가 가장 많은 산다라박에 집중 조명을 받는 이유, 복고풍의 순수함과, 세련됨을 함께 추구하는 2009년 한국 여성댄스 음악 시장의 변화의 흐름이 아닐까? 또한 한국에 들어와있는 최고의 가창력을 갖춘 수많은 필리핀 가수들이 여전히 ‘산다라박’을 외치고 있는 현실, 한류의 새 흐름을 엿 볼 수도 있는 일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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