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대표의 이번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볼 때 딱 떠오르는 말이다. ‘뱁새 정세균의 황새 노무현 따라하기’이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하나의 업적이라 하면 작은 이익을 버리고 큰 이익을 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단은 큰 이익이 설사 안 돌아오더라도 상관없다는 정도의 도박 근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노무현은 바로 이런 도박근성이 최고 수준에 달한 정치인이다. 노무현의 도박근성이 어떻든 이러한 작은 이익을 버리는 노무현식 정치가 한국 정치에 좋은 흐름을 형성할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유일한 노무현의 업적조차도 점차 오염되고 있다.

당 내팽겨치고 장관 자리 찾아갔던 정세균의 안위 정치

그 원흉격이 바로 정세균이라는 것이다. 정세균 대표는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정치인이었다. 좋은 사례로 열린우리당 당대표 시절 노무현 정권에 여러차례 추파를 던져 기어코 산업자원부 장관 자리를 차지한다. 이 당시 열린우리당에서는 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이 분개했다. 어떻게 여당의 당 대표가 정부의 일개 부처 장관으로 가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쏟아져도 정세균 대표는 아랑곳 하지 않고 훌훌 산업자원부 장관 자리로 날아간다. 만약 지금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가 MB 정권의 법무부장관으로 간다면 한나라당 당원들이 가만히 있을까?

또한 정세균 대표는 전직 당대표였음에도 지난 총선 당시 중견 정치인의 수도권 차출론 때 조용히 빠져있었다. 정동영 전 대표가 동작에 출마하고 손학규 대표가 종로에 출마할 때, 전직 당대표들 중에서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정대표는 아예 이름 자체도 오르지 않았다. 조용히 여론의 초점을 피해가면서 안전한 전북에 임실에 출마하여 손쉽게 당선된다. 정대표를 크게 욕할 필요없이, 이런 것이 이른바 정세균의 정치였고, 일반 정치였다.

이런 정세균이 미디어법 관련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의원직 사퇴를 약속하니, 바로 노무현 식 정치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세균은 뱁새이며, 노무현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황새이다. 노무현은 설사 큰 이익이 안 돌아오더라도 괜찮다는 자세로 덤볐다. 정세균은 명확히 계산하여 단식투쟁과 의원직 사퇴하면 나중에 무언가 큰 것이 돌아올 거라 믿고 있어 보인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미 당 대표로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의원직을 던지겠다고 약속했다면, 오늘 당장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어야 했다. 그래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노무현 같았으면 100% 이렇게 했다. 그러나 미디어법 통과된지 24시간이 흐르고 있는데도 사퇴서를 제출한다는 말이 없고 장외투쟁을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측근 의원들은 “사퇴가 능사가 아니다”고 언론플레이를 해대고 있다. 이래서 정세균은 노무현에 비하면 뱁새라는 것이다.

물론 정세균이 의원직을 던졌을 때 큰 것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노무현식의 도박 정치를 근절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정치개혁이다. 조금씩 이런 흐름이 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정세균이 의원직을 던진다면 아마 앞으로 영원히 국회로 못 돌아오고, 그대로 야인으로 묻혀 살 것이다. 정세균이 계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무언가 멋있게 던지고는 싶은데, 아무리 계산해봐도 노무현 때와는 시대가 다르다는 말이다. 특히 정동영의 경우, 어쨌든 여러 차례 쇼든 뭐든 몸을 던졌다. 이런 정동영이 당에 들어오지 못하고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도록 칼을 휘둘러댄 게 바로 정세균 자신이니 오죽하겠는가. 정세균이 원외로 빠지고, 지자체 앞두고 민주당 지도체제 개편되는 순간 정세균은 끝나고, 그가 의원직을 던졌다는 사실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정세균은 구시대의 막차에 올라타라

정세균은 노무현 시대에는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방식의 낡은 정치를, 이명박 시대에는 뒤늦게 노무현의 도박근성을 따라하는 역시 낡은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권 창출을 기대하는 세력 중에서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민주당이 정권 창출 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유가 바로 정세균과 그를 둘싸고 있는 친노 386들 탓이라는 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민주당이 정신만 정확히 차리고 있었으면 10년만에 등장한 이명박의 우파 정권이 워낙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거의 압도적으로 정당 지지율에서 한나라당에 앞서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게 바로 정세균과 친노386들의 낡은 노무현 따라하기 때문에 좌절된 것이고, 아마도 회복이 불가능해보인다.

방법은 하나다. 정세균이 하루라도 빨리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다. 정세균이 의원직 사퇴하고 다시는 국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 바로 노무현의 도박정치를 따라할 뱁새들이 사라지고, 2010년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노무현과는 전혀 달리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새로운 황새형 정치 리더십이 등장할 것이다.

맨날 명패 던지고, 신발 던지고, 의원직 던지고, 울고 불고 자살하고, 이런 건 낡은 386들의 시대에나 필요한 덕목이고,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는 전혀 다른 리더십이 선보여질 거라 기대한다. 구시대의 마지막 열차에 올라타겠다는 정세균의 건투를 빌며, 새로운 실크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정세균이 막차에 올라타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도 밝힌다. / 변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