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던 ‘근원적 처방’이라는 것이. ‘중도강화론’이라니 한 마디로 기가 막힌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지나치게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이 우파로 규정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스스로를 중도로 자리매김한다는 얘기는 여러 곳에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나는 아스팔트 우파를 경멸한다”고 했다던가.
그럼에도 애국우파는 이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걸어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 대기업CEO,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그의 삶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그는 이론화되지는 않았어도 우파적 가치를 체현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국우파가 대통령 이명박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다. 자기에게 자리를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좌파정권 10년을 종식시키고, 좌파 정권 10년의 폐해를 바로잡기를, 그래서 2012년 진정한 우파정권으로 가는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 작은 기대마저 철저히 배신했다. 그는 촛불시위에 주저앉았고, 용산 화염병 시위에 밀렸으며, 노무현 자살에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좌파와 싸워야 할 때마다 중공군 만난 유엔군처럼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를 거듭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와 싸워야 할 대상과 정신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작년 촛불난동 당시 전경들이 촛불폭도들에게 매 맞고 있을 때 북한산에 올라 시위대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노라고 감상어린 고백을 했던 것이 그 증거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쥐박이’라고 멸시하면서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대와 ‘정신적 간통’을 했던 셈이다.
애국우파의 등에 칼을 꽂은 이명박
그것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이제는 ‘중도강화론’이란다. 한 마디로 등에 칼을 맞은 느낌이다. 그의 발언들을 곰곰이 복기해 보자.
그는 "우리 사회가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지나치게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을 뒤집어 업자는 좌파들과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애국우파를 동렬에 놓는 얘기다. 좌파도 병든 세력이지만 우파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좌파 뿐 아니라 우파도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세력이라는 얘기다.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얘기는 또 뭔가? 뒤집어서 말하면 우파도 좌파와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한 세력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이 ‘이념에 함몰돼 있다’느니 ‘건강하지 못하다’느니 하면서 그렇게 경원시하는 우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따져보자.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 동안 그들과 박 터지게 싸웠던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반역성을 고발하고, 노무현과 그 졸당들의 이중성을 폭로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이 조직적으로 한미동맹을 허물어나갈 때 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혹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태극기를 흔들며 이 나라를 지키자고 목이 메어 외쳤던 사람들이다.
좌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모욕하고,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이 덤불 속에 대가리를 처박은 암탉처럼 숨어 있을 때, 좌파들이 점거한 광화문 네 거리에 나가서 그들에게 조롱당하고 매 맞아 가면서 싸웠던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촛불난동을 조장했던 MBC PD수첩 하나 못 잡아 절절맬 때, PD수첩의 새빨간 거짓말을 폭로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 자살 이후 MBC 등이 때를 만났다는 듯이 노무현을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미화할 때, 그러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던 사람들이다. 지난 1년 동안 MBC의 거짓말과 부도덕성을 부단히 국민들에게 일깨워줬던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우파들은 좌파와 싸워서 이명박 정권을 만든 사람들이고, 이명박 정권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좌파들이나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이런 배은망덕이 없다.
이명박의 '좌클릭' 선언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은 "좌우 할 것 없이 국민 실생활의 문제를 풀려 하기보다는 이념에 함몰돼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무식한 얘기다.
좌파들은 미디어법 개정을 반대한다. 한미FTA를 반대한다. 의료산업화를 반대한다. 공기업 개혁을 반대한다. 교육의 자율성 증대를 반대한다.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한다.
이명박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이 사업들은 모두 ‘국민 실생활’과 관련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좌파들은 이 모든 것들에 딴지를 건다.
이들 문제들은 ‘국민 실생활’ 문제가 아니다. 이념문제다. 이명박 정권이 싸움을 회피하고 싶어해도 좌파들은 이념문제로 걸고넘어지면서 싸움을 걸고 있다. 이념문제라고 피해갈 것이 아니라, 정면대결해야 할 문제들인 것이다.
이념문제를 회피해서 우회해 가면, ‘국민실생활 문제’라고 좌파들이 넘어가 줄 것 같은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왜 이런 ‘중도강화론’이 나왔나? 장삿속 때문이다. "현재 35%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가 떠나간 중도파와 무당파들이 발길을 되돌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장삿꾼’이라고 했던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 등의 비판이 그른 것이 아니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대놓고 좌로 클릭이동을 할 것이다. 좌고우면하면서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밉보이지 않으려는 꼴난 회색분자들을 중용할 것이다. 가능하면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들까지도 끌어안으려 할 것이다. 밤에 북한산에 올라가 남몰래 하던 간통을 이제 백주대낮에 대놓고 하려 들 것이다.
벌써부터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인사에서 좌우간의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는 중도적인 인물들이 기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인물들을 통해 중도층이 두터워지고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웃기는 얘기다. 이념내전 중인 대한민국에 중도가 설 자리는 없다. 김동길 교수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에 좌우는 없다. 있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세력과 적화통일 하려는 세력이 있을 뿐이다. 이 사이에 어떤 ‘중도’가 있을 수 있나?
그럴듯하게 ‘중도’를 말하는 자들은 알고 보면 김대중 정권이건, 노무현 정권이건, 이명박 정권이건, 자리만 준다면 달려갈 자들이다. 그런 자들 아무리 써 봤자 ‘중도’가 강화되고 이명박 정권이 강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파의 지지기반마저 무너지고, 이명박 정권은 안에서부터 곪아 들어갈 것이다.
'좌익척결'우익보강'이 '근원적 처방'이다
‘근원적 처방’은 ‘중도강화’가 아니다. 폭탄주 마실 때 우리는 술잔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좌익척결’이라고 외친다. 술잔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는 ‘우익보강’이라고 외친다. ‘좌익척결’과 ‘우익보강’ -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근원적 처방’이다.
그 ‘근원적 처방’을 외면하고 ‘중도강화’운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하긴 그게 이명박이라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는 동안 이명박은 문제에 직면하면 언제나 정면대결하기보다는 뒤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중도’ 열심히 강화해서 잘 해보십시오. 당신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믿음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대신 제2의 촛불난동이 났을 때,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애국우파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애국우파는 한번 쓰고 버리는 크리넥스 티슈가 아니니까요. /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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