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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천추태후> 대형 사기극을 멈춰라

역사왜곡의 주범 대하드라마

대하(大河) 사극이란 과연 무엇인가 ? 이 점에 대해 긴 시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1930년 프랑스의 앙드레 모르아는 ‘ 대하소설 ’에 대하여 ‘ 내용의 줄거리 전개가 완만하고 등장인물이 잡다하며, 사건이 연속해서 중첩되어 마치 대하의 흐름처럼 계속되는 장편소설 ’이라 정의하였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대하소설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인간의 사회적 배경과 성장과정을 시대적 변천과 흐름에 따라 포괄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여러개의 줄거리와 다양한 등장인물이 거의 엇비슷한 비중으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로 떠올려지는 박경리의 ‘ 토지 ’나 조정래의 ‘ 태백산맥 ’ 같은 것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 격동의 근대사를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사건과 삶을 통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 시절을 조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 대하(大河) 드라마도 대하소설이 갖는것과 비슷한 무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사전에선 대하사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역사를 여러시대에 걸쳐 사회적 배경을 넣어서 쓴 대규모적 장편드라마 ’라고. 사실상 대하사극의 원조격이라 봐도 무방한 일본이기도 하지만, 특히 일본의 대하사극들은 철저한 고증과 준비과정을 거쳐 제작되며, 특히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지나간 일본의 역사를 섬세한 각도에서 재조명 하는것이 높이 평가받곤 한다.

요즘 우리나라 사극이 막 가고 있다는 평가가 계속 나온다. 특히 사극을 기존의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으로 만든다는 명목하에 만들어지는 ‘ 퓨전사극 ’들이 그렇다. 그 무슨 의적 이야기를 한다며 어설프게 현실정치와 오늘날의 사회를 풍자하는것 까지야 어색한대로 그럴수 있다고 치자. 퓨전사극이라고 해서 어느정도의 파격은 눈감아 주었더니 도가 지나치다.

가령 ‘ 최강칠우 ’나 ‘ 일지매 ’에선 모두 아버지에게 막 대하는 아들과 딸이 나왔다. 그걸보고 언론에선 ‘ 사극에도 친구같은 아버지 붐 ’이 분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허나 윤기와 강상을 으뜸으로 삼은 조선왕조 시절에 아무리 평민집안이라 할지라도 그런 콩가루 가족관계가 가능했을거라고 보는가 ? 더욱이 엄연한 신분사회 시대에 양반과 천민이 연애를 하면서 변장도 하지 않고 버젓이 대낮에 저자거리를 활보한다던가 하는 모습은 황당함의 극치였다. ‘ 쾌도홍길동 ’에서던가 여자주인공이 ‘ 청나라에 장사하러 갔을때 색목인(서양인)들이 ‘ 아이러브유 ’ 하는걸 들었다 ‘며 홍길동한테 ‘ 아이러브유 ’ 하고 고백할때는 ‘ 그냥 사극이라 하지말고 시트콤이라고 해라 ‘고 말해주고 싶었다.

문제는 소위 ‘ 정통사극 ’이나 ‘ 대하사극 ’을 표방한 사극들이라 해서 그런 퓨전사극과 이제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래도 ‘ 정통사극 ’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골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최소한 역사적인 주요 사건이나 역대왕의 즉위순서 또는 역사적 주요인물의 생몰년도 정도는 반드시 지켜져야한다. 그런점에서 연개소문과 김유신의 누이가 어린시절 인연이 있던것처럼 묘사한 SBS ‘ 연개소문 ’이나 이미 문종조부터 내시였던 ‘ 김처선 ’을 성종 즉위후 성인이 되어서야 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한 ‘ 왕과나 ’는 그 원칙을 너무 벗어났다.

요즘은 도대체 ‘ 대하사극 ’이나 ‘ 정통사극 ’을 표방한 작품이라고 해서 소위 ‘ 퓨전사극 ’과 다를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 대왕세종 ’에서 장영실은 명나라의 천문기술을 빼내기 위해 명 황제의 후궁이 된 자신이 노비로 있던시절 주인집 딸을 이용한다. 이게 가능할것 같은가 ? 더욱이 그 시절 명나라는 성조 영락제때다. 영락제가 어떤 황제인가 ?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명을 거역한 신하가 있자 그의 9족(친가 4대, 외가 3대, 처가 2대)은 물론 친구와 제자들까지 멸살시킨 그런 독한 인물이다. 어린 후궁이 ‘ 아잉~~~ 옛날에 우리집에 있던 하인이에여~~~ ’ 한다고 헤벌레 넘어갈 그런 허수아비 노인네가 아니란 말이다. 아마 정말 그런일이 있었다가 발각되었다면 장영실과 다연이는 물론 같이 간 조선사신 일행 모두 목숨을 부지할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TV 드라마의 역사도 어느덧 50여년에 이르고 사극의 역사도 40년에 달한다. 이쯤되면 TV 사극에도 어떤 원칙이나 전통 같은것이 세워져야 할법한 세월임에도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갈수록 사극은 망가지고 있다. 특히 역사를 기존의 딱딱한 틀을 벗어나 젊은 세대들에게 좀 더 쉽고 친숙하게 다가설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근래의 사극은 오히려 역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극의 진보(進步)가 아니라 오히려 퇴보(退步)다.

KBS가 ‘ 대왕세종 ’의 후속작으로 11월말부터 ‘ 천추태후 ’를 방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천추태후 ? 아니, 아마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그보다 ‘ 고려 목종의 어머니 ’라고 해야 어느정도 알아들을것이다. 바로 경종의 세 번째 황후이자 목종의 어머니로 김치양과 통정을 하고 10년간 전횡을 일삼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몰락했다는 바로 그 인물이다. 그리고 고려는 강조의 정변 직후 거란의 제2차 침입을 맞는다.

물론, 근래에 들어선 천추태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우선 고려사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의해 유교적 관점으로 쓰여진 사서고, 따라서 유교보담은 불교를 숭상한 천추태후를 상대적으로 깎아내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당시 있었을 신라계 : 고구려계의 갈등도 천추태후에 대한 폄하에 일조했을것이란 지적도 있다.

헌데, 천추태후 출연진 기자간담회와 촬영장 공개를 보니 가관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선 기획의도에 의하면 천추태후는 거란과의 1-3차 전쟁을 모두 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대체 천추태후가 거란과의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거란과의 1차 전쟁은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거란이 물러갔고, 3차에서의 맹활약은 강감찬이다. 헌데 ‘ 도대체 웬 천추태후 ? ’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굳이 천추태후와 거란과의 전쟁 연관성을 찾자면 강조의 정변 직후 맞게되는 2차 침입이다.

대왕세종 후속작으로 천추태후가 방영된다는 첫 언론보도가 있었던것은 5월경이었다. 채시라가 주연을 맡게된다는 보도가 있었을때도 그저 어느정도의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나보다 정도로 생각되었다. 거란과의 전쟁 이야기가 나올때도, 워낙 대왕세종이 시청률에서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는 전쟁 이야기로 시청률을 좀 올려보자는 생각이려니 정도로만 생각했다.

헌데 웬걸 ? 보도자료를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공개된 촬영장 관련 보도를 보니 제1회에서 채시라가 맞는 천추태후의 첫 대사인즉슨 “ 나는 태조왕건의 손녀다 ! 항복은 없다. 모두 나가서 싸우자 ! ”다. 거란과의 제1차 전투때 안융진성에서 강조,김치양과 함께 몸소 의병을 일으켜 싸운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PD의 말은 한술 더 뜬다. 천추태후를 여자 주몽 혹은 한국판 잔다르크로 재탄생 시키겠다는 것이다. 아니, 대체 천추태후가 웬 잔다르크 ? 천추태후가 의병을 일으켰다는 이야긴 역사서는 커녕 그 어느 전설이나 설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아마도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이란 KBS 제작진의 답변은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헌데, 그럼 이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지 살펴보자. 천추태후 제작 취지에 대한 제작진 및 출연진 답변의 일부다. “ 역사적으로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제작했다...천추태후는 한국판 잔다르크 혹은 여자 주몽으로 불릴만한 인물이다...중국의 동북공정이 계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 고려의 이상을 품고 거란의 침략에 맞선 여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

이게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긴가 ? 만약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면, 거기서 대체 그 무슨 중국의 동북공정이 계속되고 있는 시대상황에 맞춰 거란에 맞선 고려의 여걸을 그린다느니, 역사속에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를 변화시킨다느니 이런 거창한 기획의도는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사극의 역사왜곡을 지적하면 늘 ‘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이라 답변하는 제작진. 자, 이제 그럼 이런식의 대화가 논리적으로 맞는지 다시한번 살펴보자.

“ 중국 동북공정 시대를 맞아 거란족에 맞선 고려시대 여걸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속에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천추태후는 한국판 잔다르크다 ”, “ 이건 역사왜곡이다 ! ”, “ 드라마니까 그냥 드라마로 봐달라 ” -.-;;

드라마가 또는 사극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 사극 제작진이 이런식으로 답변하는건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자 회피에 불과하다. 만약 사극 ‘ 천추태후 ’가 성공한다면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겐 드라마속에서 그 무슨 한국판 잔다르크로 묘사된 탤런트 채시라가 갑옷을 입고 말을 달리는 그런 천추태후의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게 될 것이다. 과연 자라나는 학생들이 또한 역사를 잘 모르는 주변의 지인들이 ‘ 천추태후가 실제 어떤 인물이었냐 ? ’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

천추태후를 그저 고구려계 : 신라계 혹은 유교 : 불교의 정치적,종교적 갈등속에 휘말린 인물쯤으로 재평가하는 선이었다면 그런대로 의미있는 사극이라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김치양과의 관계도 어쨌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드라마에서 조금 미화한다 하더라도 조금 이해해줄수 있을것이다. 헌데 한국판 잔다르크라니 ? 의병을 일으키고 거란족에 맞서 싸운다니 ? 이런 엉터리 사극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는가 ? 그것도 그냥 사극이나 퓨전사극도 아니고 명색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사인 그리고 입만 벙긋하면 ‘ 국가 기간방송 ’임을 내세우는 “ 정성을 다하는 KBS 한국방송 ”이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 대하(大河) 사극 ”으로 방영하겠다는 사극에서 이런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겠다는것이다.

이건 사극이 아니라 사기극이다. 언젠가 KBS 대하사극에 캐스팅된 중견배우가 “ KBS의 사극은 다른 방송국에 비해 뭔가 다르다는것을 느꼈다 ”고 말한적이 있다. 대하사극의 이런저런 거창한 의미와 수사를 굳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대하 어쩌구 하는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미 시청자와 일반 대중에게 다가오는 ‘ 무게 ’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공영방송사의 ‘ 대하사극 ’에서 이런 엄청난 역사왜곡을 저지른다면 그건 사극이라 봐줄수 없다. 사기극이다. 역사속에선 김치양과 통정을 하고 온갖 전횡을 일삼다가 나라를 망친 그리고 끝내 강조의 정변으로 쫏겨난 여인에 불과한 천추태후 아니 헌애왕후를 난데없이 잔다르크로 변신시키는. 대국민 기만극이고 사기극이다. 무조건 돈반 처바르고 긴 분량으로 찍는다고 ‘ 대하사극 ’이 아니다. 대하사극에서 느끼는 역사적 깊이와 가슴에 와 닿는 주제가 없다면, 그건 아깝게 돈만 낭비한 덩치만 큰 ‘ 대형(大形) ’사극일 뿐이다. 따라서 천추태후는 ‘ 대형 사기극 ’이다.

이미 주,조연급 캐스팅이 다 끝나고, 기자간담회까지 마쳤고, 거기다 첫 촬영 현장까지 언론에 공개한 마당에 사극을 중단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천추태후 사기극이 KBS 공영방송을 통해 방영된다는것은 도저히 두고볼수 없기에 감히 제작중단을 요구하는 바이다. 중단이 불가능하다면 그럼 그나마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 대하(大河)는 ’ 빼고 그냥 사극이라고 해라

이미 KBS의 대하사극은 대하극으로서의 그 의미와 무게를 잃은지 오래다. 그런 마당에 굳이 대하사극 운운하면서 주말 밤시간대에 떡하니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일지매나 쾌도홍길동 같은 퓨전 사극에 대해 누가 ‘ 옛날에도 정말 저랬느냐 ’고 묻는다면 ‘ 저건 다 꾸며낸 이야기야 ’라고 변명해 줄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슨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느니 한국판 잔다르크니 하는 거창한 기획의도까지 내건 사극을 그것도 공영방송사의 ‘ 대하사극 ’이란 타이틀까지 내걸고 하면, ‘ 천추태후가 실제 어떤 인물이었냐 ’는 물음에 대답해주기 참 난감해진다. 내가 난감해지는것 까진 몰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면 결국 KBS가 대형 사기를 쳤다고 말해주는것 밖에 더 되나 ?

당장 대형 사기극 천추태후를 중단하라 ! 아니면 차라리 ‘ 대하 ’를 빼고 그냥 사극이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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