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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성화는 꺼지고

세계의 의미를 살피는 축제가 되었기를

* 자유토론방의 훼드라님의 글입니다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금 13, 은 10, 동 8 개를 획득 세계 7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편 대회 시작전부터 중국내 인권문제 및 소수민족 분리독립 요구 등으로 말많고 탈많았던 올림픽이기도 했고, 실제로 대회기간중에도 이런저런 크고작은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기도 했습니다만 어쨌든 베이징 올림픽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린 것입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서구열강에게 갖은 수모를 겪기도 했던 중국. 공산체제와 모택동의 독재를 지나 등소평의 시대부터 개혁개방을 천명하기도 했던 중국. 그 중국이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다시금 전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야심찬 기획하에 치루어진 베이징 올림픽. 하지만 과연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정녕 이루게 될 것인지는 앞으로 좀 더 두고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여전히 탈북자들은 만주땅 어딘가를 떠돌고 있고 자신들만의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원하는 티벳이나 신장-위그르 지역 이슬람인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론 자본주의를 택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과연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로의 전환은 가능할것인지. 중국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가 지켜보게될 가장 큰 숙제일 것입니다.

잠시 올림픽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시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서 그리스 각 도시국가의 젊은이들이 ‘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 ’란 주제로 힘과 기량을 겨누며 약 천년간 지속되었던 대회. 하지만 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고대 올림픽이 폐지되면서 2천년 가까이 전설속에 묻혀져버린 올림픽. 그러다 19세기 말 고대 올림피아 유적이 발굴되고, 특히 여기에 깊은 관심을 보인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림픽 부활운동.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지향한 고대 그리스 체육의 정신을 되살려 ‘ 승리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는 ’ 새로운 근대올림픽을 제창 1896년 아테네에서 첫 막을 올린이래 근대올림픽의 역사도 어느덧 112년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의 역사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올림픽 초창기엔 경기종목이나 운영방식등으로 여러차례 난항을 겪기도 했고, 유럽 각 도시들이 올림픽 개최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으로 세차례나 올림픽이 취소된 적도 있었으며 우리에게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으로 잘 알려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 우상화에 전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은 2차대전 이후론 대체로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자기네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길 희망했고 1964년 일본의 도쿄 올림픽이나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은 2차대전때 패망한 국가들이 다시 경제적으로 부흥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의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경우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이스라엘 선수단 총격 사건으로 얼룩진 피의 올림픽으로 남기도 했고, 대표적인 적자 올림픽으로 기록되기도 했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 불참을 선언하기도 한 1976년 카나다의 몬트리올 올림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그에 대한 보복조치로 이번엔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불참한 1984년 LA 올림픽은 냉전시대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와같은 반쪽대회였던 모스크바와 LA의 전력이 있었던 뒤에 열리는 올림픽이라 그 어느때보다 우려가 컸지만 우리의 적극적인 외교활동으로 소련과 쿠바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참가 대체로 성공작이란 평가를 받고있는 88 서울 올림픽. 하지만 서울 올림픽 역시 북한의 불참은 우리에게 끝내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근대 올림픽의 역사 역시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으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모인 각국의 모든 선수단과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분하게 꺼져가는 성화를 지켜보며 잠시 카타르시스에 젖어 보았습니다.

저는 올림픽 개,폐회식을 볼때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이야 핵가족 시대고 둘만낳아 잘기르자 시절에 태어난 세대가 어느덧 학부모의 연령대가 되었으니 거의 다 외동아들,딸이거나 많아야 형제가 둘,셋 정도입니다만 한 집안에 형제가 보통 7,8남매 정도 되는 시절의 각 가정들은 그야말로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말도 많고, 사연도 많은 형제,자매들이지만 설이나 추석때가 되면 그래도 1년에 한두번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화목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 올림픽도 그렇게만 된다면 좀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동의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들은 전쟁의 참화속에 신음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도 내전과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는 중남미의 여러나라들. 또는 이런저런 내부의 문제로 골치아픈 유럽 각국들. 우리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이 온 국민을 실망케 만들기도 했고, 10년만에 야당이 된 민주당을 대안세력으로 신뢰할수도 없어 그 마음이 허망하기도 하고, 올림픽 와중에 일어난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기소사태 역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기만 합니다. 또한 북한동포들은 지금 이시간에도 독재와 굶주림속에 고통받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름을 잠시나마 놓을수 있는 추석같은 올림픽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필부(匹夫)의 부질없는 작은 소망입니다.

우리에게도 올림픽은 참 남다른 인연이 많기도 하지요. 식민지의 아픔을 느끼게 해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금메달에서부터 시작, 1964년 도쿄 올림픽때는 북한의 신금단 선수와 남한의 아버지가 상봉 이산가족의 아픔을 지켜보며 온 국민이 목놓아 울기도 했었습니다. 1976년 건국이래 최초의 금메달이 나온 몬트리올 올림픽 역시 우리에겐 잊을수 없는 대회였으며 88 서울올림픽은 그 자체가 온 국민에게 기대와 설레임이었으며 감격과 환호였습니다. 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한을 56년만에 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시 우리에겐 잊을수 없는 대회입니다.

좀 생뚱맞게도 ‘ 이 날을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 하는 광복절 노래가사가 생각나네요. 은메달과 동메달 한두개 정도에 만족해야했던 6,70년대의 우리나라 올림픽 참여 성적을 생각해본다면, 그 시절에 어르신들은 오늘날과 같은 금 13, 은 10, 동 8 세계 7위의 성적을 꿈엔들 상상 했었겠습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획득한다고 그게 선진국과 직결되는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올림픽 역대 전적을 살펴보면 마치 그것이 우리나라 국력 성장의 모습과 엇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나 동메달 한두개에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환호하고 있습니까.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참가 수십년만에 최초의 메달을 획득 축제분위기가 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는것과 같은게 사람의 정서라고 하지만 우린 그런 나라들을 지켜보며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잊지말고 겸손하며 겸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는 모두 204개국. 한편 태평양이나 카리브해엔 아직도 미국이나 영국 혹은 프랑스령으로 있는 섬나라들이 대략 10-20개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중국이나 러시아연방 내에도 여전히 독립을 추진하는 소수민족 죽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걸 감안한다면 전 세계엔 대략 220-230개 정도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추산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마치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엔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화합의 자리를 보이듯 4년에 단 한번 보름남짓한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그 모든 나라 모든 민족 50억이 넘는 온 인류가 잠시나마 시름을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평화는 온 인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며 최고의 이상향이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는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포츠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존재하기 마련이듯 가진자가 있으면 그보다 덜 가진자가 존재하는건 어떤 시대, 어떤 시절이 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그 격차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세상, 그리고 가진자가 덜 가진자에 대해 조금은 더 겸손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보살펴줄줄 아는 세상, 그리고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이 세상의 이들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화해하고 용서할줄 아는 세상. 그런 세상으로의 한 발자욱 정도의 진보는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굴곡많고 사연많은 세계사 그 자체처럼 올림픽도 사연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다만 4년에 한번 이 보름 남짓한 시간동안만은 온 세계가 그 의미를 한번쯤 되새길줄 아는 그런 축제의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 더도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란 우리네 옛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 더도덜도 말고 올림픽때만 같아라 ’는 말 정도만이라도 인류의 후대에게 남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나면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는것처럼 인류 또한 이 지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혹 그때 다른 생명체가 이 지구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아니 설사 지구가 더 이상 생명이 살수 없는 별이 되었을때, 그때 어느 다른 외계의 생명체들이 와서 이 지구를 탐사하고 간다 하더라도. 그때 이 작은 별나라에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는 흔적 하나정도만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이 지구상에 두팔과 두 다리 그리고 두뇌를 쓰는 인류라는 생명체가 있었노라. 그들은 어리석게도 수천 수만년을 살아가면서 수백개의 나라와 민족,인종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길항하였느니라.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4년에 단 한번 보름남짓은 그 모든 싸움과 갈등을 멈추고 서로 웃으며 손잡고 기뻐하는 그런 화합과 축제의 자리를 만들었노라.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 올림픽 ’이라 불렀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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