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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쓸데없는 자부심을 버려라

70년대생들은 이제부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지난 3월 28일 빅뉴스 대표 변희재씨는 자신의 칼럼에서 386 이후 세대는 어렵다고 말한 진중권의 인터뷰에 대해 장문의 비판글을 썼다. 변희재가 지적한 문제의 인터뷰에서 진중권은 이른바 포스트 386에 해당하는 70년대생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386은 책이라도 읽었거든요. 이 사람들은 세상을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체제 바깥을 넘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이 점이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을 심하게 제한하고 있어요. "

386은 책이라도 읽었다. 그러나 그 이후 세대는 독서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리는 이 인터뷰 내용은 확실히 진중권의 오만함이 드러나있다. 진중권의 글이나 인터뷰 기사를 관심을 갖고 읽어본 바 있는 필자는 이 인터뷰 기사에서도 역시 진중권 특유의 지적 우월감과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느낄수 있었다.

한편 필자가 변희재의 글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이에 10여일 앞선 3월 16일 그가 쓴 또다른 글 ' 윗세대 패거리들에 막혀있는 신세대의 꿈 '이란 글과 연결되는 주제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16일 글에서 변희재는 386세대에 비해 70년대생들이 유독 사회진출이 느리다는 점을 지적하며 혹시 386 파워엘리트 그룹에 의해 이후 세대들의 출세가 막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386 파워엘리트 그룹이 인위적으로 이후 세대의 출세를 저지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해내긴 매우 어렵다. 허나 진중권류의 386 지식인들의 지적 우월감이나 오만함은 필자 역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많이 느껴본바 있다. 자신들만이 오직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오직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를 구현하고자 싸웠다는 드높은 자부심. 노무현 정권하의 집권세력이 오만으로 빠졌던 것은 확실히 그와같은 386 파워엘리트들이 자신들이 걸어온 시대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역사적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과 열우당 정권은 늘 자신들이 하는 개혁만이 ' 오로지 옳다 ! '고 외쳐댔던 것 아닌가.

사실 386의 오만함은 그런면에서 우리들의 부모세대와 공통점이 있다. 6.25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쨌든 자식새끼들 두 번다시 굶주리지 않게하려고 피땀나게 일했다는 그 자부심. 부모님 세대의 자부심이 산업화를 이룬 자부심이라면 386의 그것은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이다.

헌데 자신들이 거쳐온 시대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과 우월감이 지나치다보면 결국 ' 오직 내 생각만이 옳다 '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386의 지나친 역사적 우월감이 이후 세대들을 좌절에 빠트리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386 이후 세대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386 세대라는 변희재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헌데 문제는 이런식의 역사 우월의식이 386 세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부모세대 역시 6.25를 겪고 그 폐허하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산업화에 대한 역사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70년대생이라면 학창시절을 보낸 80년대에 부모님들로부터 귀따갑게 들어본 이야기가 있다. ' 우리땐 먹을거 하나 없어 굶주리며 보냈는데, 도대체가 너희들은... '

부모님 세대의 역사적 우월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김수현 작 ' 사랑과 야망 '이다. 1943년생으로 70년대부터 작품활동을 시작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하며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웠던 작가 김수현.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6,70년대를 주 배경으로 태수,태준형제의 삶을 그려나간 ' 사랑과 야망 '은 1986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6년에 리메이크 되었다.

헌데 2006년에 리메이크된 ' 사랑과 야망 ' 제작발표를 하면서 김수현 작가는 이렇게 밝힌바가 있다. ' 80년대 판에서 지루했던 초반부를 줄이고 이후 9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겠다 '고. 사실 이 부분은 필자로 하여금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 발언이었다. 과연 김수현의 펜은 8,90년대를 어떻게 그려나갈까. 허나 애초 50부작에서 80부로 연장되기까지한 2006년판 사랑과 야망은 결과적으로 필자를 실망시켰다.

사실 2006년판 사랑과 야망은 중반부로 들면서 3,40대 주부 시청층에게 지루함과 짜증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김수현이 밝혔던것과 달리 80년대판과 내용이 달리 새로울 것도 없었고 특히 극중 태준의 아내 미자의 술주정이 너무 지루하고 길게 계속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점은 작가의 스토리 전개의 미숙함을 드러낸것에 불과하니 여기선 논외로 하겠다. 정작 필자를 실망시켰던 것은 기껏 그린다고한 80년대 이후의 이야기가 느닷없이 나타난 철없는 며느리의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종반부 약 10회 가까이 방영된 80년대 이야기의 중심은 태수의 아들 훈의 여자친구인 현정. 즉 박태수가에 들어온 철없는 며느리 이야기가 전부였다.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현정과 사고를 쳐 결국 그녀는 훈의 군복무중 임신을 하게되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무개념 투성이 며느리의 잇달은 싸가지없는 행각들. 고작 그 이야기 하자고 종반부에 80년대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말을 제작초기에 밝혔나. 하지만 그저 작가 김수현 개인에 대한 실망감을 넘어서 분노를 느꼈던건 그렇게 철없는 며느리 이야기의 등장으로 드러난셈인 김수현의 8,90년대에 대한 역사관 때문이다.

결국 부모세대는 뼈빠지게 일했는데, 요즘 애들은 한결같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전형적인 부모세대의 70년대 이후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만을 나타내고 결말을 맺었기 때문이다. 70년대생에겐 고뇌가 없었나 ? 굳이 사랑과 야망 등장인물의 출생시기를 따져가며 세대를 밝히자면 태수의 자녀인 훈과 수경이 바로 60년대에 태어난 386세대고, 태준의 아들 상우와 막내 선희의 자녀들은 70년대에 태어난 포스트 386세대다.

사랑과 야망은 소위 ' 격동의 시대 '를 살다간 부모님 세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4.19가 일어나기 직전인 1960년 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 사랑과 야망 '. 4,19가 일어나자 걱정이 되어 아들이 공부하는 서울로 올라와선 정작 아들이 조용히 공부만 하고 있다는 사실에 ' 사내자식이 이 판국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다니 ? ' 하며 되려 역정을 내던 태준어머니, 5.16 군사정변 직후 ' 성님, 그래도 군인들이 하니까 빠르지 않아유 ? '하고 푼수처럼 주절거리던 파주댁. 무엇보다도 극중 태수와 태준의 부침(浮沈)은 건설업붐이 불기도 하고 유가파동이 일어나기도 한 70년대의 경제상황과 함께했었다. 헌데 그 사랑과 야망에서 80년대 이야기에 386 세대의 고뇌가 빠진 것이다.

김일성이 뿔달린 도깨빈줄 알고 자랐는데, 알고보니 80년 광주에서 전두환이 끔찍한 살육참극을 벌인 5.18로 인한 충격. 그 충격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야겠다며 거리를 누빈 386 세대. 그들의 이념적 갈등과 고뇌. 그리고 데모하는 형들을 보며 ' 아빠, 왜 대학생 형들이 데모하는거야 ? '하며 의아해하던 70년대생 동생들의 80년대는 사랑과 야망에 없다. 오직 철없는 며느리 현정의 엽기적인 행각만 이어졌을뿐.

공교롭게도 그와같은 김수현의 386과 그 이후 세대에 대한 인식은 90년대 이후 그녀의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있다. 7,80년대엔 주로 격정적인 멜로드라마를 썼던 김수현인 90년대 들어선 홈드라마 작가로 방향전환을 한다. 하지만 가령 ' 사랑이 뭐길래 '에서 대발이 아내 하희라나 ' 목욕탕집 남자들 '에서의 철부지 막내딸 김희선, 그리고 요즘 방영되는 ' 엄마가 뿔났다 '에서 영수나 영일에 이르기까지.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늘 보여준 자녀세대는 그랬다. 부모는 뼈빠지게 고생하며 오늘날의 부를 이루어놓았는데, 애들은 그저 부모 고마운줄 모르고 제멋대로인. 바로 산업화 세대가 갖고있는 그분들 시대에 대한 역사적 우월감이 김수현 드라마엔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세대의 고민에 대한 이해없이 자기 세대의 우월감에만 빠져있는데 자녀세대의 펜 역시 부모세대를 이해해줄리 없다. 우연치고는 묘하게 요즘 한참 활동하는 3,40대 작가들의 16부작 미니시리즈에선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다. 제작비 절감이란 고충도 있겠지만 그나마 등장하는 아버지들도 대개는 바람이 나 딴 여자랑 살림을 차렸거나 혹은 알콜중독자거나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다. 6,70년대 격랑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태수나 태준은 요즘의 미니시리즈에선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바로 요즘 한참 활동하는 3,40대 드라마 작가들이 6,70년대에 태어난 386과 포스트 386 세대다.

그러고보니 우연치곤 묘하게 유독 70년대생에게만 세대를 상징하는 명칭이 없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들 다닌 세대들에겐 90년대 초반 보수언론이 이른바 ' 386 세대 '란 상징단어를 붙여주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 각계의 개성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30대 초반 직장인들을 신문의 섹션란 같은데서 종종 기획기사로 다루면서 붙이기 시작한 명칭이 바로 ' 386 세대 '다. 한편 80년대생의 경우 2002년 월드컵과 반미 촛불시위를 전후해서 한겨레,오마이등이 ' 태극기 세대 '란 명칭을 붙여주었다. 386 세대가 애초엔 개성이 뚜렷한 30대 초반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언론이 부각시키면서 붙인 명칭이었던것과 달리 언제부터인가 민주화의 상징이 되어버린것이라면, 태극기 세대는 붉은악마와 반미 촛불시위를 주도한 20대를 산업화와 민주화가 다 이루어진뒤에 철이든 그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애국주의 감성이 팽배한 세대라는 특징을 진보언론이 발굴해내 붙인 명칭인 것이다.

태극기 세대란 명칭이 사라지고 최근엔 청년실업을 상징하는 ' 88만원 세대 '란 명칭이 새로 생기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60년대생과 80년대생들은 자기세대의 상징적 명칭이 붙여져 있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 해방둥이 '니 ' 전후세대 '니 하는 각기 세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유독 70년대생만 그것이 부재하다. 한때 7080 세대란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7,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라는 점에서 역시 70년대생보담은 386세대의 상징성이 강하다. 90년대 초반에 한때 X세대나 신세대란 말이 나오긴 했지만 신(新)세대는 글자그대로 새로운 세대란 뜻이니 30대가 된 70년대생을 아직까지 새로운 세대라 부르는건 어색하다.

그나마 70년대생을 상징하는 단어가 있었던건 8090세대니 297세대니 하는식의 386이나 7080같은 단어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결국 60년대와 80년대사이의 낀세대 혹은 곁다리 세대같은 인상이 강하다. 뉴라이트의 신지호류가 만들어낸 ' 포스트 386 ' 역시 결국 70년대생은 386의 후배세대란 뜻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마치 70년대생들은 윗세대와 아랫세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들의 개성이나 시대정신 자체가 무시되거나 사장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70년대생 앞에는 지금 두 개의 큰 우상이 가로막고 있다. 그 하나는 산업화를 이루었다는 부모님세대의 역사적 우월감이란 우상이고, 또 하나는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386이란 우상이다. 이러한 우상으로인해 자신들의 앞길이 가로막혔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때 나오는 후세의 유형은 극단적인 두가지 형태로 나뉘게 된다. 그 하나는 아예 우상앞에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던가 아니면 아예 이전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전면으로 부정하려드는 극단적인 반발심으로 나가게 된다. - 이상하리만치 요즘 3,40대 여성작가들이 쓰는 미니시리즈엔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개 재벌2세와 사랑을 나누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70년대생들이 언제까지 오늘의 현실에 대해 이전세대 탓만 하고 살수는 없다. 70년대생들도 이제 30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하나둘쯤은 두었을 법한 나이 아닌가. 나이가 그만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세대의 꿈이 이전세대로 인해 좌절되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386 파워엘리트 그룹에 의해 혹은 그 이전세대 주류층이 갖고있는 시대적 우월감에 의해 70년대생들의 고뇌와 시대정신이 부정되고 있다면 이제 70년대생도 우리 세대만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변희재의 주장은 분명 의미가 있다.

70년대생들에겐 분명 우리를 짓눌렀던 그 무엇이 있었다.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과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부모세대의 시대적 우월의식. 혹은 변희재가 지적한것과 같은 진중권류의 386 파워엘리트 그룹의 지적 오만함.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70년대생들의 출세를 가로막았다기 보담은 자신들의 잣대로 그리고 자신들이 걸어온 시대의 가치관만으로 무작정 70년대생들을 판단하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 종반부가 철없는 386 며느리의 등장으로 마무리 지은것이나 진중권이 ' 386이야 책이라도 많이 읽었지 그 다음 애들은... ' 하는식의 발언은 자기세대만의 시대적 우월감을 표출해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빅뉴스 대표 변희재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만약 386 세대가 신세대들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서로의 영역을 나누면서 세대간의 공존을 모색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386세대가 자기들 세대만이 가장 뛰어나고 밑의 세대는 보호해주어야할 대상 정도로만 본다면 세대간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

386과 이후 세대가 세대간의 대결을 벌인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전세대의 우상에 갇혀 우리들만의 목소리를 내지못한 것이 70년대생이란 점에서. 이제 우리들만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72년생인 필자는 두 살 어린 74년생 변희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386과 태극기 세대 사이에서 낀세대가 되어버린 70년대생. 386 파워엘리트 그룹의 패거리 문화에 막혀 사회진출 속도가 느려진 70년대생. 386의 민주화 시위가 만들어낸 80년대의 최루가스를 맡아가며 학창시절을 보낸 보낸 70년대생들. 20대때 인터넷의 전신인 pc통신을 접한 온라인 문화 1세대이기도 한 70년대생들. 그들이 이제 30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분명 우리의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만들어낸 우상에 갇혀 그 꿈과 고민 자체가 인정받지 못했던 그 세대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좀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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