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국가발전과 국민복지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자신이 밟아온 출셋길을 완벽히 봉쇄해버렸다는 점이다. 고시공부하는 심정으로 민주화투쟁에 뛰어들었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해찬으로 말미암아 더는 국민들에게 지지를 구걸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해찬은 권력의 단맛에 중독된 옛 민주화투사들의 타락과 변질을 대표한다.
이해찬이 서울 관악에서 다시 금배지를 달 수 있으리라고는 이해찬 본인조차 믿지 않을 게다. 국회에는 또 들어가고 싶은데 기존 지역구서 당선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럴 때 필드에서 골프채라도 신나게 휘두르면 답답한 속이 좀 풀리련만 서민들의 따가운 시선 탓에 골프장마저 맘대로 드나들기 힘들다. 노무현이 퇴임 후 입주할 ‘노무현 타운’에 골프연습장을 설치한 데는 역시나 깊은 뜻이 있었던 셈이다. 무능하고 못난 통치자일수록 백성들한테는 매정하고 간신배들에게는 자상한 법이다.
과연 유시민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해찬에게 정치적 활로를 제공했다. 지역구 의원만 국회의원인 게 아니다. 전국구 의원, 즉 비례대표도 명실상부한 헌법기관이다. 유시민이 창당하는 영남신당은 이해찬에게 국회의석을 확실하게 보장할 전망이다.
노무현을 5천년 민족사가 낳은 최고의 성군이라 칭송하는 경상도 노빠들이 부지런히 키보드 두드리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열심히 날리면 지역구는 불투명할지언정 전국구 의석 두세 개 나올 정당 투표율은 거뜬하게 확보하기 마련이다. 경상도 노빠들의 특성은 경상도의 ‘경’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는 데 있다. 그들은 유시민이 차릴 영남신당의 간판으로 경상도 태생 인사를 내보내는 사태를 두려워한다. 여기에서 이해찬과 영남친노들의 거래관계가 성립된다. 영남친노세력은 이해찬에게 국회의석을 선물하고, 이해찬은 유시민이 만든 영남신당에 경상도 사람만 있는 건 아님을 선전하는 알리바이 구실을 한다.
유시민은 현재 지역구인 경기도 고양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친노세력이 제일 인기가 없는 곳이 수도권과 호남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대구로 낙향한다는 유시민의 선언은 순전히 뻥이다. 그의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대구 대신 광주나 전주로 내려가 민심의 심판을 받아야 옳다. 복제 유시민이 출현해 유시민의 현재의 지역구에서 출마한다면 대구로 귀향한 오리지널 유시민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득표율을 기록할 터. 수도권서 낙선하면 그걸로 정치생명이 끝이지만 대구에서 떨어지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하여 온몸을 불사른 것처럼 뽐낼 수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시민의 결단에 감사해야 한다. 징글징글한 경상도 사투리가 진보개혁진영에서 당분간 잦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향토에 머물면 나라에 도움이 되지만, 고향땅을 벗어나자마자 대한민국에 유해한 암적 존재로 돌변하는 게 소위 영남 민주화세력의 특색이다. 대구로 귀향한 유시민은 진보진영에 지금보다는 훨씬 덜 해로울 게다. 나라를 위해서도,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리고 맹목적으로 그를 추종하는 영남유빠들을 위해서도 유시민은 경상도에 쭉 짱 박혀 있어야 마땅하다. 그가 영남지방에 틀어박힌다는 조건이라면 이해찬이 계속 여의도에서 설치고 다니는 눈꼴사나운 광경쯤은 우리 모두가 즐겁게 감수해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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