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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문국현은 세가 아닌 미래의 가치를 얻었다


진보의 조폭 정치에 호되게 당한 문국현

대선 결과가 발표되던 순간, 모든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문국현 후보만이 눈물을 흘렸다. 정치신인으로서, 어쩌면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큰 참패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하다, 혈혈단신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그에게, 이번 대선은 처음부터 힘겨운 싸움이었다. 특히 막판에 쏟아진 후보사퇴 압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문국현 캠프 측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선거 전날 새벽에까지, 진보진영의 유력 인사라는 사람들이 전화를 하여, 후보사퇴 압력을 넣었다. 해도해도 너무했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아마도 문국현의 눈물은 이러한 설움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문국현 후보는 기업인으로서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뿐이지, 현 정권의 실세들인 민주화 운동세력은 아니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가 출마했을 때, 오마이뉴스를 비롯하여 진보진영 전체가 같은 식구라고 비행기 띄우듯 하다가, 선거에 닥치니, “후보 사퇴를 하지 않으면 거짓 민주세력으로 낙인찍겠다”는 재야원로들의 행태는 조폭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진보진영의 대 문국현 협박은 지난 5년 노무현 정권이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게 보여준 현상이다. 패거리를 만들어 같은 편은 맹목적으로 밀어주고, 조금만 다른 노선을 걸으면, “수구꼴통”이라는 이름을 붙여 척결하는 조폭적 정치가 국민들의 혐오감을 키워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진보진영의 정치에 문국현 후보도 호되게 당한 셈이다.

문국현 후보에 대한 기억

필자는 문국현 후보와 공적으로 마주친 적이 있다. 2003년도 KBS 시청자위원회 출범 당시, 필자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문국현 후보는 경제 분야에서 함께 활동했다. 당시 KBS 시청자위원은 정연주 사장이 임명했지만, 노조에서도 많은 사람을 추천했다. 문국현 후보는 노조가 추천한 경우이다.

KBS노조에서는 그간 시청자위원의 경제 분야에서, 늘 경총, 전경련, 광고주협회 등 기존의 대기업의 인사만 선임된다며,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 후보를 강력히 추천했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는 일정 상의 이유로 거듭 고사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의 문국현 후보의 위상으로 볼 때, 직접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는 시청자위원직은 격에 맞지 않았다. 노조는 삼고초려까지 하여, 결국 문국현 후보의 승낙을 얻게 된다. 그간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지는 KBS 경제 프로그램에, 문국현만의 시각으로 매서운 회초리를 때려달라는 청을 그가 받아들인 것이다.

회의 당시, 필자는 문국현 후보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게 없다. 별달리 특별하고 논쟁이 될 만한 모니터 아이디어를 낸다거나, 달변이라거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자기 순서가 오면 조용히 상식적인 발언을 했고, 다른 위원들이 회의 끝나고 삼삼오오 뒤풀이를 하러갈 때, 그는 한 번도 이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다 워낙에 바쁜 개인 일정으로 6개월 뒤 사임했다. 몇 차례 회의 동안 필자와 나눈 사적인 대화는 그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봤고, 필자가 “스물 아홉입니다”라고 답한 게 전부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문국현에 기대를 걸 수 있나

대통합신당이 창당되었을 때, 신당의 기존의 386과는 다른 전문가 386 그룹에서는 손학규와 더불어 문국현에 대한 기대를 가장 크게 걸고 있었다. 이들은 이계안 의원과 모임을 갖고 정국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필자는 몇 차례 업저버로 참여했다. 그 당시 “문국현의 출마 결단이 대선의 판도를 결정한다”라는 말이 오가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한 지인에게, “대체 문국현 개인에 민주진영 전체의 운명을 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 문국현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냐,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얼마나 되느냐. 누군지도 모르는데 갑작스럽게 대선에 출마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표를 주느냐.

둘째, 기업인 출신이, 왜 그렇게 개혁 운동가 행세를 하느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무를 베는 기업인 킴벌리클라크와, 유한킴벌리의 기업 이미지 정책으로 환경운동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어떻게 개혁운동이냐.

셋째, 어차피 그 어떤 방법을 쓰든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단절하지 않으면 대선에 패배할 텐데, 그뒤 문국현이 장사꾼의 행태를 보이며, 유유히 사라지면 어떡할 거냐.

문국현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대선이 끝난 지금도 세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문국현에 대해 아직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문국현 후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정치적 행보로 답을 하였다.

그는 여권의 분열을 틈타, 한번 기회를 잡겠다며, 급조 출마를 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이번 대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시청자위원 회의 당시 그냥 조용한 선비 스타일의 그가 아니었다. 의외로 근성도 있었고, 의지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후보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대선 패배 이후에도, 총선을 위해 끝까지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국현은 87년 증후군을 심판했다

문국현 캠프 측은 15%의 득표율을 얻지 못해 선거운동 비용을 전혀 돌려받을 수 없다. 당장 재정이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문국현 자체가 정치적 인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 단일화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문국현의 가치를 보고 참여한 게 아니라 그의 상품성을 한번 이용해보겠다고 덤벼든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곁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그가 대선이 아닌 총선까지 염두에 두고 출마를 선언했을 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득표율에도, 어쨌든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문국현은 외유내강형이다.

문국현 스스로는 이번 대선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100만명의 국민이 구태여 투표장까지 걸어와 그에게 표를 준 것을 높이 사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식 경제성장론과는 다른, 문국현만의 또 다른 경제성장 패러다임에 동의해준 100만명의 국민의 뜻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이 100만명은 그가 후보사퇴 압력을 버텨냈기 때문에 표를 줄 수 있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정치적 감각을 익히지 못했을 그는 자신이 대선에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국현의 대선 완주는 김대중과 재야원로로 상징되는 87년 증후군의 종지부를 찍어버렸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87년 증후군이란 “무조건 우리편끼리 뭉쳐 적들을 막아내자”는 화염병 신드롬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문국현 후보는 민주화 운동세력에 빚을 지지 않았다. 그는 87년도에도 기업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재야원로들은 자기자들 마음대로 문국현을 민주화세력에 포함시켰다, 말을 안 들으니 거짓 민주화 세력이라 내쳤다. 그들 입장에서는 문국현을 버린 셈이지만, 문국현 입장에서는 낡은 87년 증후군을 떨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개표 결과, 합치나 안 합치나 거기서 거기였다. 처음부터, 정동영은 여당의 주자로서 노대통령의 실정을 책임지고, 문국현은 새로운 세력의 가치를 주장하며, 각자의 길을 갔다면, 이들의 득표율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괜히 합치니 마니 티격태격하면서, 국민들의 정치혐오감만 크게 했다. 그리고 이런 반민주적 정치 공학 작태를 보여준 김대중씨와 재야원로들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대선 패배에 대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총선때는 반드시 다 합쳐버리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문국현은 어쩌면 총선에서도 마지막 남은 87년 증후군과의 싸움을 벌여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싸움은 대선보다는 훨씬 더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문국현의 살아있는 100만표, 정동영의 죽은 600만표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승부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따질 겨를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7년 4월 민주당 경선에서의 박상천의 당선이다. 박상천은 그냥 열심히 조직관리해서 상대 측인 장상을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선거는 민주당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김대중 세력을 비주류가 이겨낸 신화이다. 그리고 박상천이 그렇게 김대중 세력을 이겼기 때문에, 민주당도 문국현도 대선 완주의 길이 열렸던 것이다.

문국현의 100만표는 지금은 작아보이지만, 앞으로 이 표가 어떻게 확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동영의 600만표는 “이명박 정권 되면 호남 다 죽는다”는 호남협박으로 얻어낸 죽은 표에 불과하다. 정동영이 아니라 누구라도 호남협박을 하면 그 정도는 다 얻는 표이다. 그러나 문국현의 100만표는 기존의 득표구도가 아닌 그만의 가치로 얻어낸 살아있는 표이다. 죽은 정동영보다 산 문국현에 훨씬 더 큰 비전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자주 부르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민주화 운동세력의 전유물이었지만, 개그맨 컬투가 리메이크하면서, 대중, 특히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학예회의 단골 노래이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만든 어느 운동권 음악가가 과연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이 학부모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를 날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은 이 노래가 운동의 시절 때 단지 선동의 의미 이외에, 노래의 미적 가치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미래에 중요한 것은 세가 아니라 가치다. 문국현은 그 점에서 세는 실패했지만 가치는 살렸다. 이 가치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처럼 언젠가 널리 널리 퍼져나갈 날도 올 것이다.

문국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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