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 나타났던 이른바 논객들의 99.9프로는 쫄딱 망했다. 그들은 이명박의 약진에 관한 아무런 전망도, 이명박의 집권을 저지할 어떠한 형태의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노무현에 비판적 입장이었더라도 몰락의 쓰나미를 피해가기 어렵다. 이를테면 김어준과 진중권이 노무현이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무슨 재주로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어 짭짤한 출연료를 챙기겠는가?
지금 이 순간 시사평론가랍시고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비친 대학교수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진중권ㆍ김어준과 피장파장 신세다. 정권이 바뀌면 가장 일선에서 칼바람을 맞는 게 방송이다. 특히, 비정규직이라 할 패널진의 면면과 객원진행자들 진용부터 싹 갈린다. 허우대와 말주변만 번드르르할 뿐, 통찰력이나 전략적 안목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온 진보개혁진영의 얼굴마담들은 이참에 확 도태돼야 마땅하다.
다른 사람이 이명박 정권이 망한다고 이야기하면 순전히 심술 가득한 저주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원로가 이명박 정권의 붕괴를 예측한다면 전적으로 신뢰해도 괜찮다. 이명박에 대해서라면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분석력과 전문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명박 정권은 왜 망하는가? 청계 이명박 선생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본인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요는 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청계 선생 스스로가 문제의 존재와 원인을 설령 인지하고 있더라도 도저히 손을 쓸 방법이 구조적으로 없다는 점이다.
정권을 잡는다는 건, 대통령이 된다는 의미는 마친 스캔을 한 것처럼 통치권자와 똑같이 생겨먹은 인간들 1만 명이 권력의 주체로서 국토의 방방곡곡을 누비게 됨을 뜻한다. 1만의 복제 대통령 숫자는 대통령이 실제적으로 직접 임명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과, 공기업 및 공공기관 간부들 머릿수와 대략 일치한다. 1만 명의 소통령들이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실무 수준에서 대행 내지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1만 명의 복제 김대중들이 나라의 실권을 쥐었다. 원본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주로 모방하는 게 클론(Clone)의 특징이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할 적마다 백성들이 ‘클론의 습격’에 몸서리치는 사태는 이와 같은 까닭에서다. 1만 명의 복제 김대중의 발호로 말미암아 동교동은 국민들의 지탄과 원망을 사고 말았다. 1만의 복제 김대중이 낳은 현상이 이회창 대세론이다.
그러나 이회창만이 복제 김대중 제거를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역시 복제 김대중들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은 복제 김대중의 극복을 노무현에게 맡겼다. 1만 명의 복제 김대중들이 항상 민폐만 끼친 건 아니어서였다. 유권자들은 노무현이 복제 김대중들의 부채는 청산하되 자산은 계승하는 연속성의 방향을 선택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과 동시에 1만 명의 복제 노무현이 탄생했다. 복제 노무현들은 오리지널 노무현의 원형질을 민생경제 현장과 민심의 바다에서 완벽히 재생했다. 노무현 혼자 저 높은 곳에서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설쳐댄 탓에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1만의 복제 노무현들이 국민들의 삶의 공간에서 오리지널 노무현의 부정적 단면들을 그대로 따라한 결과로 범여권이 쪽박을 찬 것이다. 복제해찬, 복제시민, 복제희정, 복제광재, 복제기숙, 복제혜경, 복제계남, 복제기명, 복제양균, 복제정아, 복제윤재, 복제군표. 1만 명의 복제 노무현들에게 붙여진 시리얼 넘버들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국민이 범여권 대권주자들에게 노무현과의 단절과 차별화를 요구한 배경을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정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국민들은 정동영에게, 김근태에게, 천정배에게, 추미애에게, 심지어 손학규한테마저 1만 명의 복제 노무현들을 일망타진하라고 촉구했다. 복제 김대중들이 자산과 부채를 균형 있게 골고루 남겼다면, 복제 노무현들은 온통 빚투성이었다.
복제 노무현들을 단속하고 다스리는 데 실패함으로써 범여권은 사상 최악의 선거패배를 기록했다. 이러한 표차는 대통령 직선제가 유지되는 이상 가까운 미래에는 재현되기 힘들다.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정확히는 차기 대선에서 되풀이될 확률이 크다. 청계 이명박 선생의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선보여질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 덕분이다. 모든 축제의 뒤끝은 무질서한 난장판이듯이, 대통령 선거의 압승으로 잔치 분위기에 휩싸인 한나라당의 등 뒤에는 1만의 복제 이명박들이 자신들이 무대에 올라갈 차례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평범한 서민대중은 이명박이 한국호의 선장으로 어째서 부적합한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깜박 속아 넘어갔던 이유와 동일하다. 몸소 경험해봐야만 눈뜰 수 있는 진실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직 대통령의 인격과 개성이다. 1만 명의 복제 노무현들이 한반도 남쪽 전체를 죄다 헤집어놓은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노무현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마찬가지다. 만 명의 복제 이명박이 우리나라 전역을 들쑤시고 다닌 이후에만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청계 이명박 선생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조만간 대거 배출될 1만 명의 복사판 이명박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어두운 측면과 나쁜 요소들만을 빼닮게 마련이다. 이명박이 한나라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 운동 과정서 솔직하게 자인한 인간 이명박의 한계와 악습, 약점과 모순을 일반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짝퉁 이명박은 판박이로 되풀이하게 된다. 이걸 피하자고 복제 이명박들을 생산하지 않을 수도 없다.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이 ‘필드’에서 적극 활동해야만 정권의 입김과 영향력이 전국 각지의 아파트 단지와 통반 차원까지 구석구석 빈틈없이 미칠 수 있다.
현재는 사람들이 그저 TV에 등장하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추상적 이명박을 목격할 따름이다. 허나 이명박 정권이 닻을 올리면 동네 골목입구에서, 아파트 부녀회서, 예비군 훈련장과 민방위 교육장에서 구체적 이명박들과 싫든 좋든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조갑제는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을 감찰하는 제어장치가 이회창까지 망라하는 범보수세력 내부에 국한돼 작동하길 꿈꾼다. 이를 통해 우파의 영구집권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자정기능이 살아있으면 개인이건 집단이건 쉽게 멸망하지 아니한다. 생각해보라. 복제 노무현들을 소탕하는 과제가 진보개혁진영 자체적으로 수행됐다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했다. 고도(Godot)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은 앞으로 두 달만 지나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진영은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을 양산하는 작업을 열심히 수행하는 죽이다. 국가를 지배할 신경세포와 국정을 운영할 손발이 필요하니까.
그렇다. 2012년 대선의 승패는 어느 쪽에서 먼저 1만 명의 복제 이명박들과의 투쟁을 시작하느냐에 달렸다. 그전에 우리가 선결해야 할 해묵은 숙제가 남아있다. 죽어야 함에도 죽지 않고 돌아다니는 좀비가 돼버린 복제 노무현들을 어서 퇴치하는 일이다. 다행히 한나라당과 보수우파는 당분간은 복제 이명박들과 대결하지 못한다. 복제 이명박과 싸운다는 건 그들 스스로의 수족을 잘라내는 꼴이기 때문이다. 복제 이명박들이 떼거리로 출몰할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복제 이명박이 실컷 준동한 5년 후, 이명박 정권의 비극적 최후에 견주면 노무현 정권의 참담한 종말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해피엔딩으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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