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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뉴스 토론방의 금상첨화님의 글입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제17대 대통령 선거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듯하다. 이 전 총재의 인품을 믿고 그를 여전히 존경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유고(有故)에 대비한 전략적 대안 후보이길 바랄 것이다. 필자 또한 누구보다 그 분의 높은 이상을 따르고 존경하며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대다수 국민과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열 길 물 속, 한 길 사람 속’이란 옛 속담처럼 지금 이 전 총재의 본심은 본인만 알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베일 속에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본심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과는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에 사로잡혀 가고 있다. 만약 이런 불길하고도 방정맞은 예감이 사실이라면 훗날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전 총재가 ‘다른 동기’에서 출마를 결심했다면 정계 복귀를 하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MB가 중도실용 노선을 추구한다며 국가안보에 소홀했으므로 정통보수를 대변하겠다’는 명분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 세력’이라는 현실적 조건이다. 그가 출마를 강행한다면 두 번째 것을 어디서 구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타겟은 지역 기반이란 측면에서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방치되어 있는 충청권일 것이다. 수도 이전을 기대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때문에 행정수도로 축소되고, 참여정부 임기 중 비약적 발전을 기대했는데 발전은 커녕 부동산 투기 붐만 일어 땅 값, 집 값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지역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지역 민심은 정부와 여당을 떠났고 이는 백전백패의 보궐ㆍ지방선거 결과로 입증됐다.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을 좌절시킨 원흉이라 하여 ‘비호감’ 정당이 되었다. 분명히 박근혜 전 대표 시절 동의하여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주었는데도 말이다. 처음부터 결코 해선 안 되는 공약을 함부로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다시 한 번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전 총재 측이 대통령 후보를 사실상 낼 수 없는 국민중심당과 심대평 전 충남 도지사를 끌어안고 한때 ‘충청권 역할론’을 내세웠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영입한다면 모양새가 꽤 그럴 듯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TK 기반 신당을 추진 중인 이수성 전 총리와 연대 내지 그 세력을 흡수하고 일찌감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나 정권 교체에 관심을 끊은 한나라당 내 ‘반이(反李)’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마침내 그림은 완성된다. 어차피 범여권도 단일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내다 보고 대선이 4파전이나 5파전으로 치러진다면 지역 고정표가 탄탄한 자신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판단했다면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오판을 했다. 첫째, 인물 중심의 정치는 ‘三金時代’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따르는 정치 지도자를 정적들이 살해하거나 투옥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간다고 표까지 따라가는 시절은 지났다는 뜻이다. 그런 정치인이 아직 남아 있다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도가 해당될 테지만 그의 영향력도 아직까지는 매우 제한적인 파괴력에 그치고 있어 무조건 정치적 우상을 위해 표를 바치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국민의 투표 기준은 ‘나의 이익’으로 뚜렷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나 박 전 대표가 만약 대구나 대전에 방폐장을 건설한다고 공약하면 그들에게 투표할 지역 지지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50%를 꾸준히 웃도는 고공행진을 하면서 개인적 인기도 상당히 높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의 중도실용 노선과 자유주의 개혁 정책, 검증된 능력 등에 대한 중시 현상일 뿐이다. 이는 또한 그것이 결여되면 지지율이 한꺼번에 빠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시대정신’은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달라는 국민적 갈망의 다른 이름이며, 그것이 각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인물론’은 그 갈망의 구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보조적 잣대로서만 국민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전 총재의 경우에도 그의 독립적 인격만을 보고 투표할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5% 미만이다.

둘째,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강행하면 정통보수 대변자라는 명분은 얻겠지만 동시에 또 다른 명분을 상실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성이란 점이다. 그의 지지자나 이 후보를 패배시키려는 관변언론과 인터넷 어용매체들은 그가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외에 다른 흠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이 후보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선전하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 전 총재는 정계 복귀를 하는 과정부터 이미 정도에서 벗어났고 그것은 명백한 반칙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가 정치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대권을 노렸다면 지지자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떳떳이 정계 복귀의 변을 밝히고 한나라당의 대권 경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하여 후보가 되었더라면 보수우익 진영은 한몸이 되어 다시 그를 밀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권 삼수’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잠재울 명분이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그의 정계 복귀를 바라는 제도권 정치 세력을 얻을 수 없었다. 또 TK, 영남권 등 지역적으로 보나 보수우익 등 지지자 성향으로 보나 지지층 면에서 박 전 대표와 상당 부분 겹치는 탓에 당원, 대의원의 표가 양분되는 것을 꺼렸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검증의 칼춤이 난무한 끔찍한 경선의 과정도 우회한 채 이제서야 나선다는 건 어느 국민의 눈에도 의혹스런 행동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를 대권욕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피하고 정계 복귀의 명분을 쌓기 위해 이 후보의 고난과 역경이 드러나길 기다린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볼 것이며, 혹자는 한국 정치를 영원히 TK 지역당 중심으로 끌고가려는 세력과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절대로 바라지 않는 당내 세력이 보수 진영에서 파열음을 낼 때까지 시기를 저울질한 비열함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것은 대쪽 판사의 길도, 학처럼 고고한 선비의 행동도 아니다. 만약 이 전 총재가 ‘다른 동기’에서 출마하는 것이라면 네 가지 이유에서 반드시 낙선의 고배를 마실 것이며, 그의 대권 삼수에 동조하거나 그를 부추겼던 정치 세력은 한국의 정치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지역 기반의 표심은 ‘정통성(正統性)’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1997년 이인제 현 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선 불복 사건, 2002년 박 전 대표의 미래연합 창당 실험 등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건 정통성 부재 때문이었다. 또 보궐ㆍ지방선거 때마다 여당이 번번이 호남에서 민주당에 패한 것도 민주당을 정통 호남당이라고 여기는 지역 정서 때문이었다. 아울러 현재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가 호남 출신임에도 호남에서 전폭적 지지를 못 받고 이 후보에게 상당한 정도의 호남표를 나눠 주고 있는 것도 정통성 때문이다. 만약 정 후보가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한 후보였다면 이번 대선 전망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아무리 보수우익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TK 지역 정서에 호소해도 이 후보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야인(野人)으로 전락한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제1 야당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 받은 이 후보의 그것을 끝까지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세론’이 허구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투표는 적극성을 띠게 될 것이며, 여권과의 경쟁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게 될 경우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강력히 작동돼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우세 후보에게 쏠림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세째, 대통령 선거는 전국 단위의 선거이며, 득표 대상이 일반 국민이라는 점이다. 즉 대선은 국회의원 총선거나 지방선거처럼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각개전투식 선거운동이 먹혀들 여지가 없으며, 2000년 이후 인터넷 통신의 발달로 국민 정서도 지역차 없이 거의 통합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은 선거전략적 기밀사항이지만 공개할 수밖에 없다). 또 대선은 자기 당 후보를 뽑는 경선처럼 당원이나 대의원을 상대로 득표 활동을 하는 선거가 아니므로 매표를 하거나 줄세우기를 할 수가 없다. 與든 野든 조직력이 탄탄할수록 득표에 도움은 되겠지만 당내 경선처럼 그것이 결정적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 전 총재가 특정 지역의 유력 인사와 연대하고 지역의 정치 세력과 손을 잡으며 지역 조직을 장악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대선 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다.

네째, 대선에서는 백 명의 명망가를 영입하고 언론을 통해 세(勢)를 과시하는 것보다 큰 것 ‘한 방’에 해당하는 효과적인 공약이 득표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다음 편 준비하는 칼럼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이 후보의 이념 좌표 설정 실패와 더불어 남은 하나의 이유인 ‘한 방’의 공약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 대선전 최대 쟁점이었던 ‘수도 이전’이다. 대선 후보의 외부 인사 영입은 명성(名聲)을 팔아 ‘한 자리’를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선거 전에는 공약을 만들고 당선 후에도 실제로 같이 일할 자를 모으는 데 그쳐야 한다. 그래야 승리를 해도 선거잡음이 없는 것이다.

수도 이전과 같은 매머드(mammoth)급(성격으로 볼 때는 핵폭탄급이란 표현이 어울리겠다) 공약은 적게는 수십만표에서 많게는 수백만표를 흡수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이회창 후보에게도 수 많은 공약이 있었지만 공통분모를 최대화할 수 있는 ‘한 방’은 없었다.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한 방의 공약은 미래의 청사진과 결합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한반도 대운하’라는 공약이 ‘동북아 물류ㆍ관광 허브 국가’라는 청사진과 결합할 때 제 가치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구체성과 환영(幻影)의 조화, 그것이 한 방의 핵심이다. 대선은 한물간 인사들을 끌어 모아 미래의 청사진을 구겨 놓을 때 패한다. 경륜은 조각(組閣) 때 고려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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