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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을 생각하며, 너희들 대선하지마!

박자와 음정 맞추는데 급급한 정치권


국민원로가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불후의 명곡’이다. 일요일 저녁 KBS 2TV에서 방송되는 ‘해피선데이’의 한 꼭지다. “선배 가수들을 찾아가 배우는 컨트리꼬꼬의 폭소 난장 노래교실”이란 배경설명처럼 탁재훈과 신정환으로 이루어진 남성듀오 컨트리꼬꼬가 원래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이끌었다.

‘불후의 명곡’은 정식 음악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럼에도 라이브 무대만이 줄 수 있는 현장감과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박제 속에 갇힌 듯한 ‘콘서트 7080’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끼와 발랄함이 있다. 여기서 소개되는 유명 가요들의 대부분은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된 국보급 노래들이다. 1985~1995년은 많은 가요팬들과 문화평론가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로 기억하고 평가하는 기간이다. 더는 젊음만을 믿고서 까불 수는 없지만, 늙었다고 서러워하기에는 한참 이른 시청자층을 겨냥해 제작된 콘텐츠가 바로 '불후의 명곡'인 것이다.

그런데 요 몇 회 동안 프로그램의 성격이 확 변했다. TV 프로그램의 성격이 변했다면 대개는 종전보다 재미가 떨어졌거나 기획의도를 빗나갔음을 뜻한다. 허나 ‘불후의 명곡’은 예외다. 더 흥미롭고 짜임새가 있어졌다. 국민원로는 ‘불후의 명곡’을 볼 때마다 미치도록 노래방이 가고 싶어진다. 노래방에 가서 신해철의 ‘그대에게’와 이승철의 ‘희야’와 전영록의 ‘불티’를 목이 터져라 불러봤으면 좋겠다.

프로그램의 틀을 완전히 뒤바꾼 주인공은 탤런트 김성은이다. 얼마 전 종영된 SBS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서 재단이사장인 아버지 후광으로 교사가 된 순둥이 체육선생님 역할을 맡았던 연기자다. 콜라병이라 불릴 정도로 몸매가 착한 아가씨다. 탁재훈과 신정환 콤비만으론 내용이 민숭민숭한 까닭에 시청자들, 정확히는 남성시청자들한테 볼거리를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긴급 투입된 눈치였다.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비판하는 여성의 상품화 사례다.

외모지상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섹시한 S라인의 얼짱 미녀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다. 나한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김성은이 두세 번쯤 잠깐 출연하다가 이내 조용히 사라질 줄 알았다. 공중파방송 출연을 희망하는 젊고 예쁜 여자연예인들이 여의도에 길게 줄을 선 상황이니까.

예상 못했던 이변이 발생했다. 김성은이 차츰차츰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베테랑 선수들인 신정환과 탁재훈이 김성은을 곁에서 시중드는 보조진행자들로 생각될 지경이다. 노래선생님으로 등장하는 가수들도 한결같이 김성은의 존재가 매우 반가운 표정이다. 이유가 뭘까?

어렴풋하게만 헤아려지던 김성은 무혈쿠데타의 구체적 원인이 8월 26일 방송을 계기로 완벽한 모양새를 갖췄다. 김장훈이 제16대 노래선생님으로 취임한 날이었다. 특별게스트는 가수 양희은과 영화배우 윤지민. 윤지민을 본 김성은은 상당히 불편하고 껄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본인보다도 키 크고 늘씬하고 얼굴 예쁜 라이벌이 나타났으니 긴장을 탈 수밖에.

한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윤지민의 스타일이 오히려 구겨졌다.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을 떨쳐내지 못한 결과다. 최종성적은 김성은의 압승이었다. 더구나 김장훈의 수제자로 발탁되는 영광까지 안았으니 김성은의 기쁨은 필시 두 배가 됐을 게다.

김성은의 가창력이 갑자기 일취월장한 덕분은 아니다. 평균적 노래실력은 여전히 고음불가 수준이다. 전영록이 만들어준 ‘노래하지 마’란 김성은 테마송은 아직은 유효하다. 하지만 검성은은 볼품없는 노래솜씨에도 불구하고 초대가수들을 최고로 만족시키는 보물덩어리다. 왜일까? 그건 김성은이 그들의 히트곡을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부르기 때문이다. 가수 입장에서 제일 소중한 팬은 내 노래를 훌륭하고 매끄럽게 부르는 팬이 아니다. 자신들의 곡을 행복하고 신명나게 불러주는 팬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예전에는 신정환이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몰랐다. 그가 주로 랩을 담당한 탓이다. 노래솜씨로는 일반인이라 할 김성은 옆에 붙여놓으니까 진짜 가수는 가수더라. 탁재훈의 가창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상태다. 그러나 ‘불후의 명곡’에 섭외된 가수들과,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탁재훈과 신정환의 능숙하고 농익은 노래솜씨보다는 김성은의 서툰 박자와 불안한 음정이 더더욱 흥겹고 유쾌하다.

불안한 음정과 서툰 박자일망정 김성은은 진실로 노래를 열심히, 행복하게 부른다. 신해철이 록밴드 넥스트와 더불어 출연한 때였다. 김성은이 빨리 노래 부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게 훤히 보이더라. 오죽했으면 동료출연자 이정이 김성은이 먼저 노래하게끔 차례를 양보했겠는가. 물론 그날도 폭탄은 김성은이었지만.

‘불후의 명곡’을 보고 있으면 현재의 한국 정치판이, 우리나라의 2007년 대선정국이 떠오른다. 국민과 유권자를 초대가수나 고정시청자 자리에 대입시켜보시라. 가수와 시청자 모두가 김성은 빠진 ‘불후의 명곡’을 대하는 느낌일 터. 싱겁고 밋밋하기 짝이 없으리라. 엇박자 투성이의 엉망진창 음정일지언정 신나고 씩씩하게 노래하는 명랑하고 활달한 출연자가 그리워질 것이 분명하다. 컨트리꼬꼬만의 ‘불후의 명곡’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경쟁했던 맥없는 한나라당 경선이나, 한나라당 대 범여권으로 펼쳐지는 심심한 대통령 선거구도와 똑같다.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불후의 명곡’ 다음에 방송되는 주말드라마가 차라리 기다려진다.

의무감에서 하는 일과 본인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건 질감이 확연히 다르다. 질감이 다르면 생산되는 감동 역시 달라진다. 김장훈과 함께 ‘나와 같다면’을 부르던 순간의 김성은은 양희은 부럽지 않은 감동을 자아냈다. 김장훈과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몹시 행복해했고, 자기노래를 부르며 황홀해하는 김성은의 모습에 김장훈 또한 정말로 가수 노릇할 맛이 났을 게다.

회가 거듭될수록 김성은의 자신감이 더해지는 양상이다. 그의 지나친 자신감은 웃음의 소재로 희화화되기 일쑤다. 그럴수록 김성은의 입지는 한층 탄탄해진다. 자신감이 생기면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한다. 김성은의 경우에는 사실이었다. 최강 김태희와 막강 이나영이 설령 무료출연을 자청한다 할지라도 김성은의 위치를 절대 위협하지 못한다. 불후의 명곡들을 지금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노래할 출연자는 오직 김성은뿐이므로. 개혁의 초심을 잃고, 승리의 확신마저 상실한 범여권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다보면 실력은 저절로 향상되게 마련이다. 박자와 음정 맞추려 전전긍긍하는 인물은 많되 노래 자체를 열심히 행복하게 부르는 사람은 드문 현실이다. 박자 맞추기 급급한 한나라당도, 음정에 목숨 건 범여권도 서민대중의 여망이야말로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불후의 명곡임을 모른 채 노래방점수 관리하듯이 민심을 가지고 놀려 든다. 국민을 염두에 두고 진정 즐겁고 행복하게 노래하지는 않는다. 국민들 지루하고 따분하게 하기에 제격이다. 김성은의 테마송 ‘노래하지 마’는 한나라당과 범여권을 위해 탄생한 노래가 아닐까? 이명박과 범여권 주자들에게 부탁하는 바이다. 대선하지 마, 체육관에서 경선만 해!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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