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국(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임금의 악명을 드높인 양대 폭언이 있다. “똥물만도 못한 진중권”이 첫째고, “발가락의 무좀만도 못한 민노찌질이”가 둘째다. 첫째는 그와 진중권의 개인적 증오와 악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둘째다. 이 망언이야말로 영남친노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이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진보진영 전체에 대해 품고 있는 인식과 감정을 에누리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역임금이 지칭한 발가락의 무좀만도 못한 민노찌질이의 대열에는 한겨레신문 역시 당연히 포함된다. 한겨레가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집요하게 비판한 탓이다. 부안 핵폐기장 설치, 새만금 간척공사, 이라크 파병, 아파트 분양원가 비공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 황우석 올인, 한미자유무역협정 강행,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 발의, 사립학교법 개악. 굵직굵직한 사안들만 간추려 정리해봤다. 기타 자잘한 쟁점들마저 더하면 노정권과 한겨레신문은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 사이라 하여도 전혀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그럼에도 한겨레신문은 여전히 노빠신문으로 불린다. 중대한 가치와 노선에서 노무현 정권과 철저한 찰떡궁합을 이룬 수구신문사들이 도리어 반노의 선봉을 자처한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한겨레와 노무현은 대관절 어떤 말못할 사연이 숨어있기에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닌 어정쩡한 같기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의 해답을 김종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자진납세했다. ‘배제는 비겁하다’는 제목의 기명칼럼을 통해서다. 영남친노세력을 떨궈낸 채 17대 대선을 치르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김위원은 여러 이유를 제시한다. 개중에는 수긍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은 것도 있다. 김위원이 제기하는 논리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친노파를 내치면 유권자의 10% 안팎에 이르는 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을 아우를 수 없다. (2) 영남에 기반을 둔 친노세력과의 결별은 김대중 정부부터 추진돼온 동진정책을 파탄시킬 가능성이 크다.
언뜻 그럴싸한 소리다. 특히 여의도 기준으론.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여론조사 지지율의 70퍼센트를 점유한 구도에서 10프로 영남친노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악마의 유혹이다. 더욱이 벌써 10년째 경상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범여권 입장에서 본전생각이 나지 않으면 되레 이상한 노릇이다.
국민원로는 요 대목에서 서역국 임금님의 혜안과 통찰력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서역국 떠난 것이 심지어 후회되더라. 서역국왕이 진보진영을 발가락의 무좀균만도 못한 종자들로 멸시한 게 괜한 허세는 아니었다. 보시라. 한겨레를 위시한 진보진영이 결사반대하는 정책들을 아무리 많이 밀어붙여도 중요한 고비마다 결국은 진보 쪽에서 먼저 고개 팍 숙이고 들어오잖아.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김종철 위원은 엄청난 착각에 빠져있다.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을 하거나. 재래시장 순대장수 아줌마들한테조차 선명하게 간파된 영남친노의 실체와 본질이 김종철 위원에게는 아직도 오리무중인 모양이다. 김위원이 애지중지하는 10프로 영남친노의 대부분은 현재 이명박 지지자로 편입된 상태다. 김종철 위원께서 오매불망 소망하는 대통합은 민주당 및 호남민심과의 전면적 재결합을 전제한다. 김종철 논설위원은 영남친노들의 독특하고 비뚤어진 멘털리티를 제발 깨닫기 바란다. 이들은 과거 민주당에서의 비주류 생활을 경상도 출신의 군사독재자들 치하의 삶보다 더 서럽고 고달팠던 경험으로 기억한다.
김종철 논설위원이 존속을 희망하는 동진정책의 결정판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이다. 한미FTA를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지역이 경상도다. 제일 극렬하게 옹호하는 부류는 조선일보도 아니고 삼성재벌도 아닌 영남친노고. 김종철 논설위원이 개탄하는 반서민적·반민중적 정부시책을 기획하고 주도한 무리가 바로 영남친노란 말씀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맹활약하는 영남친노그룹을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신문의 간판 칼럼니스트가 애타게 짝사랑하는 형국이다. 구성원들의 잠재심리에 도사린 뿌리깊은 영남공포증으로 말미암아 한겨레신문은 노정권의 호구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영남공포증은 한겨레의 정세분석능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치공학 또는 선거전략의 측면에서 김위원은 명백히 틀렸다. 한나라당 지지도 70프로 현상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3분의 2가 노무현 정권, 즉 영남친노세력이 싫어서 한나라당을 민다는 반응을 표출한다. 영남친노가 사라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튼 뭔가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허나 영남친노와 연합하면 게도 구럭도 모조리 놓치기 마련이다. 믿을 수 없는 동맹군은 적군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해로운 존재라는 교훈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다.
개혁성향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영남친노 배제가 아니다. 무릇 인류사회에서 벌어지는 배제행위란 정당한 자격과 권능을 갖춘 인간이나 집단을 부당하게 따돌림을 일컫는다. 마땅히 털어버려야만 할 이물질을 제거하는 행동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배제 대신 배설 내지 절제란 단어를 택해야 옳다. 우리는 단 한 차례도 영남친노를 배제하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절제와 배설을 촉구했을 따름이다.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은 정확하고 모범적인 언어사용법을 일반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자리다. 김종철 위원께서는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 대장에 쌓인 노폐물을 몸 바깥으로 배출할 때 이를 배제라고 쓰시는가? 병원 의사들이 환자의 신체에서 발견된 악성 종양을 수술로 잘라낸 걸 암세포를 배제했다고 보도하시는가?
김위원은 혹여 GT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지 꼭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라. GT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밖에서는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마구 핏대를 올리다가도, 막상 안에서 얼굴을 맞댄 다음에는 푸들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충성을 맹세하는 새가슴 증상을 보이기 일쑤다. 김근태를 필두로 정세균, 문희상 등이 대표적 보균자다. GT 바이러스는 청와대와 영남친노들이 진보진영을 발가락의 무좀만도 못하게 여기게끔 이끈 주범이다. 김종철 위원이 걱정하실 사태는 노무현이 배제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노빠언론으로 찍혀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 한데 노빠언론도 모자라 이제는 영남 B급 매체로 타락하려는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죗값은 죄인이 치른다. 똑같은 이치다. 정책에 반대하면 문제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사람을 향해서도 비토를 놓아야 정상이다. 노무현 정권의 그릇된 정책은 저 혼자 힘으로 세상에 태어난 손오공이 아니다. 노무현과 추종자들이 낳고 길렀다. 생명 없는 이념과 정책들에도 호부호형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의 고차원적 농담, 매우 깜찍하고 앙증맞은 익살이었다. 김위원은 이참에 아예 코미디언으로 전업하면 어떨까? 고소소동 빚은 이명박과 콤비 결성해 허무개그 펼쳐보시라. 평범한 언론인에서 스타연예인으로의 인생역전을 국민원로가 보장하겠다.
좋다. 김위원한테 전부 다 양보하겠다. 영남친노를 쫓아내는 것이 인도주의적으로 판단해서 너무 몰인정한 처사라고 치자. 그렇다면 한나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왜 배척하는가? 그들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인데. 김종철 논설위원에게 권하겠다. 연말까지 현실정치와 관련된 논설은 발표하지 마시라. 그냥 기존에 해오던 대로 환경보전하고, 인권신장하며, 평화 지키자는 메시지나 꾸준히 전해주시라. 그게 진보진영과 개혁세력 두루 도와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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