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부족한 사람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포기하지만 너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공자가 제자인 염구의 소극적 품성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했던 이야기다. 공자는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자였다.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을 과거의 주나라에서 구했다. 그는 보수성을 진취적 기상으로 보완했다. 방구석에 앉아 입만 놀렸다는 후세의 통념과는 달리 크고 작은 제후국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영업을 뛰었다. 이른바 보따리장수였던 셈이다.
유교와 도교의 갈등은 실패한 세일즈맨 무리와 성공한 이론가 집단 사이의 싸움으로 비유될 수 있다. 기라성 같은 제자백가들의 사상과 학설 가운데 유독 유학만이 동양 여러 나라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수백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배경이 짐작이 되리라. 현재의 유교는 과거의 위세와 영광을 잃은 지 오래다. 유교의 쇠퇴는 후세의 유학자들이 공자시대의 진취적 기상을 상실함에서 비롯되었다.
노무현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보따리장수라고 일컬으며 빈정댔다. 노무현의 꽁무니를 쫓아 영남친노들은 물론이고 이해찬마저 그를 기회주의자라 성토한다. 맞다. 손학규는 기회주의에 찌든 보따리장사치다. 그럼에도 노무현보단 천 배 백 배 훌륭한 정치인이다. 노무현처럼 매일 회의실에 부하와 지지자들만 집합시켜놓고 속된 말로 이빨만 까지는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심지어 토론회 참석자조차 자기한테 비굴하게 굽실거릴 인물들만 골라서 섭외한다. 진취적 기상이 증발된 부류일수록 안방대장 노릇에 탐닉하는 법이다.
안방대장 노무현에게까지 설설 기고 벌벌 떠는 소심하고 나약한 겁쟁이들이 소위 범여권 대권주자들이다. 청와대가 원격조종하는 친노후보들은 일단 예외로 치부하자. 나머지 대선주자들은 도대체 정체가 뭔가? 이건 로봇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여! 사람이면 사람답게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여봐라. 도교가 유교에 의해 산중으로 밀려난 이유는 명백하다. 노자와 장자,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은 적극적으로 나아가 일을 이룩하려는 자세가 결여됐다. 그냥 몇 마디 냉소적으로 툭 뇌까리고 혼자 구름 위를 거니는 걸로 제 할 일 다했다는 투였다.
이에 반해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수많은 나라들을 유세하면서 쉬지 않고 기회를 모색했다. 기회주의자였으되 진취적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진취적이지 못한 소신파 원칙주의자가 진취적 기회주의자를 만나면 여지없이 100전 100패다. 예컨대 추미애와 손학규의 처지를 대조해보시라. 기회주의적 보따리장수 손학규가 반한나라당의 대표선수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동일한 기회주의자일지언정 스스로 기회를 만들려 노력하는 기획주의자와 나무에서 기회의 열매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무기력한 기회주의자의 운명은 천양지차다. 어차피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 마당이라면 진취적 기회주의자로 변신하는 창의력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옳다.
근자에 인구에 회자되는 얘기가 “해봤어?”다. 생전의 정주영이 사업의 타당성에 회의를 품은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던졌다는 질문이다. 해보기 전에는 성패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자, 해보기도 않고 미리 겁먹고 기죽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 부끄럽다. 한국역사를 빛낸 무수한 위인들 중에서 악덕기업주로 규탄받는 재벌총수가 하필이면 영웅시되는 오늘의 천박한 물신주의 세태만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해봤어?”는 응당 진보개혁진영이 수구보수무리를 겨냥해 날려야 마땅할 물음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진취적 기상을 기득권집단에 헌납한 진보개혁세력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과연 될까?”만을 되풀이한다.
손학규는 본인이 범여권에 합류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그에 앞서서는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한나라당 탈당과 뒤이은 범여권 진입이 정권창출을 담보할 기막힌 묘수일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치적 자살행위인지는 미지수다. 객관적으로는 후자일 개연성이 짙다. 그러나 섣부른 속단은 금물이다. 요점은 해보기 전에는 정확한 결과를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더더욱 중요한 건 아무것도 시도 안 하면 100프로 망한다는 거고.
어느 대선캠프의 실무브레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싸잡아 공격하는 노명박 때리기를 권유하며 그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했다. 내 주장의 논리와 근거가 꽤나 그럴 싸했던 모양이다. 이제부턴 나중에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사연이다. 실무자들은 후보자에게 ‘노명박 프레임’을 채택할 걸 건의했단다. 약간의 고심을 거친 후보는 이명박과 대립각을 세우는 수준에서 공세를 멈추고 말았다. 이명박과 노무현을 동시에 타격하는 전략이 감당해야 할 위험성에 견줘 기대효과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눈치다. 문제의 후보자가 국민원로의 면전에 있다면 이런 면박을 주고 싶다. “해봤어?” 나는 여기에서 거론된 대통령후보경선 출마예정자에게 절반의 가위표를 부여한 상태다. 그가 기존의 기조와 동선을 유지한다면 남은 대각선 하나마저 조만간 그어야 할 듯싶다.
손학규는 범여권 예비주자들 틈에서 유일하게 해본 다음 판단하는 인물이다. 그 밖의 주자들은 실천해보지 않고 가부를 결정한다. 몸으로 부딪쳐본 연후에야 정답의 진위가 검증되기 마련이다. 해보지도 않고서 판단하고 결정하기 일쑤인 족속들이 요즘은 미아리 부채도사들의 주특기를 인터넷에서 베끼느라 분주하다. 각자의 홈페이지를 통해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게 대유행이다. 다양한 정파의 정치웹진 사이트들 게시판마다 자타칭 대권주자들의 홈페이지에서 복사해온 기고문과 논평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니들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거야. 모조리 칼럼니스트라니까. 귀찮게 정치는 왜하냐? 차라리 언론인으로 전업하지.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호텔식당에서 회의하고 홈페이지 대문에 칼럼 올리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 아니다. 감동의 동영상 한 편 공유해보련다. 여성댄스그룹 S.E.S.의 멤버였던 바다가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다. 가수가 노래하는 게 하등 신기할 건 없다. 한데 이번 것은 대단히 특별하다. 정전된, 따라서 조명장치와 음향시설이 남김없이 꺼져버린 공연장에서 육성으로 열창한다.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장내 분위기는 몹시 어수선하다.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왁자지껄하게 메아리친다.
놀라운 반전이 준비돼있다. 관객이 하나둘씩 노래에 귀를 기울이더니 마지막엔 그녀의 노랫소리만이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환호성과 뜨거운 박수갈채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국민원로는 바다의 가창력이 아니라 오기와 근성에 감명을 받았다. 언젠가는 관객들이 노래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히 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두고 ‘천재지변’을 극복한 경우라고 표현했다.
범여권에 진짜로 모자란 건 높은 여론조사 지지도가 아니다. 진취적 기상이 낳는 정신력과 자신감이다. 지금의 범여권을 전력공급 차단된 콘서트 현장에 대입해보자.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만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형국이다. 초조하고 짜증나는 구경꾼들은 무대를 향해 야유를 퍼붓고. 순간 손학규가 두 눈 질끈 감고 가장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그에게 이목이 쏠리는 사태는 당연한 귀결이다. 다른 캠프들에도 촉구하는 바이다. 고성능 마이크와 화려한 조명에 의존하지 말라. 심술꾸러기 노무현이 또 두꺼비집 내릴까봐 노심초사하지도 마라. 오직 노래실력만으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승부해라. 당신의 열정과 재능이 객석의 인정과 신뢰를 얻으면 전기 따위는 알아서 저절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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