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홍기삼기자][유통산업 투자심리 위축우려..."실효 없을 것" 의견도]
13일 오전 서울프라자호텔 22층 덕수홀에 신세계 이마트 이경상대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이승한사장, 홈에버 오상흔대표 등 유통업계 주요 CEO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유통제조 상생협력 결의대회 및 간담회’에 참석한 업계 CEO들은 8대 결의문을 통해 납품업체와 중소유통업체와의 상생을 약속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단연 출점 문제였다. 이들은 “적정한 출점을 통해 중소유통업자가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신규점포 출점자제’를 뜻하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1개 점포라도 더 출점하기 위해 할인점 업계가 평소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을 감안하면, 180도 다른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결의문 내용이 아주 훌륭하다’며 업계의 결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장관은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사회적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며 “대기업 유통회사와 중소유통업체가 갈등이 많아 윈윈하는 게 쉽지 않지만, 관심을 많이 가져주길 바란다”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산업자원부는 또 이날 ‘대형마트가 스스로 변하고 있다’라는 8페이지짜리 보도자료를 통해 할인점업계의 결의사항을 이례적으로 자세히 알리기도 했다.
산자부가 업계의 결정을 환영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유통업계CEO들의 마음은 편치 않아 보였다. 간담회 내내 CEO들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김장관이 일일이 지명하고나서야 CEO들이 입을 뗄 정도였다.
결국 유통 대기업CEO들은 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A기업의 CEO는 “말없이 문 닫는 점포들이 얼마나 많은데 중소단체가 목소리를 높인다고 이런 결의안까지 내놔야 하는 지 의문”이라며 “인터넷쇼핑몰 등 보이지 않는 유통업체가 얼마나 많은데 눈에 보이는 대형마트만 규제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생은 수직간 업종에서 하는 거지, 수평적인 관계에서 상생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산자부를 꼬집었다.
B기업의 CEO는 “할인점 마이너업체로써 출점을 자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오늘 결의사항이 법으로 규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올해 예정된 출점 일정을 그대로 수행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출점 자제’로 유통산업 투자심리 위축 우려=할인점 업계가 이날 결의한 ‘출점 자제’는 향후 유통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공정위에 이어 산자부까지 나서서 특정산업의 발목을 붙잡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대형 유통업체의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이번 결의안 채택을 통해 올해 총 52개의 점포를 신규 출점하려던 할인점들이 계획을 바꿔 33개로 출점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당초 올해 9개의 신규 점포를 출점하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해 7개로 줄일 방침이다. 홈플러스도 올 초 15개라고 밝혔던 신규점포 출점규모를 10개로 수정했다. 올해 총 10개의 점포를 새로 출점하기로 했던 롯데마트도 규모를 줄일 방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할인점 규제 입법안에 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안인데다 법적인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별 실효는 없겠지만, 장기적인 심리에는 영향을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홍기삼기자 ar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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