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 분과회의에서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광우병 위험 통제국' 등급이 확정됨에 따라 이들 나라의 "뼈를 포함한 쇠고기 전면 개방"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당장 수 주안에 이 등급을 앞세워 우리나라에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을 공식 요청하고, 검역 당국은 이에 대한 8단계의 타당성 검토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르면 9월 전에 2003년 12월 이후 중단된 미국산 갈비 수입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5월말~6월초 美 수입조건 개정 공식 요청할 듯
현행 OIE 규정에 따르면 이번에 미국과 캐나다가 OIE로부터 받은 'Controlled risk(통제된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일정 조건에 따라 광우병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원칙적으로 교역 과정에서 연령이나 부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SRM 가운데서도 편도와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는 소의 나이(월령)에 관계없이 반드시 빼야하지만, 월령이 30개월 미만이면 두개골이나 척추 등은 제거할 의무조차 없다.
따라서 미국은 당장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께 OIE 판정을 근거로, 우리나라와 작년 1월 맺은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고치자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행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만'이라는 제한을 없애고 OIE 등급에 걸맞은 수입 조건을 새로 적용, 갈비 등 뼈까지 모두 수입하도록 위생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측은 지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 내내 OIE 총회 결과조차 기다릴 필요없이 곧바로 개정 작업을 시작하자며 우리 측을 압박한 바 있다.
농림부 관계자도 "OIE 총회에서 등급이 확정되면 미국은 지체없이 수입 위생 조건 개정을 요청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함께 광우병으로 2003년 6월 이후 대(對) 한국 쇠고기 수출길이 막힌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비록 한국과 캐나다 양국이 FTA 협상과 광우병 등 검역 현안을 분리해 논의한다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앞으로 캐나다 역시 OIE 등급을 내세워 계속 쇠고기 개방 압력의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이미 지난 1월 우리 제네바 대사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한국의 캐나다산 쇠고기 전면 금수 조치가 WTO 위생검역(SPS)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해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 이르면 9월 전 LA갈비 수입 가능성
이들 나라로부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개정하거나 새로 맺자는 요구를 받게 되면, 우리나라는 수입국의 권리로 보장된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import risk analysis)' 절차를 밟아 수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수입허용 가능성 검토-수출국에 가축위생 설문서 송부-답변서 검토-가축위생실태 현지조사-수입허용여부 결정-수출국과 동물 또는 축산물 수입위생조건안 협의-수입위생조건 제정.고시-수출작업장 승인 및 검역증명서 서식 협의 등 8단계에 걸리는 시간은 수입국의 의지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절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FTA 타결 직전 이 위생조건 개정 문제와 관련해 '합리적 절차와 기간'을 거쳐 처리할 것을 약속한데다, 작년 1월 현행 위생조건 체결에 앞서 이미 미국내 검역 상황에 대해 상당한 자료를 축적해 서두른다면 2~3개월 안에 새 위생조건이 체결될 수도 있다.
6월 초 미국 측이 개정을 정식 요청하면 8월이나 9월께는 미국산 갈비가 수입될 수 있다는 얘기다.
농림부 관계자는 "여러 변수가 있는 만큼 분석이 끝나는 시점을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국내 입안예고 기간만 최소 20일이므로 모든 절차를 1~2개월 안에 끝내기는 힘들지만, 미국 관련 기존 데이터가 적지 않은 만큼 속도를 내면 기술적으로 3~4개월 내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 美 쇠고기 본격 수입 앞두고 한우시장 불안 커질 듯
광우병으로 수입 길이 막히기 전,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의 4~5분의 1에 불과한 생산비를 앞세워 우리나라 수입 쇠고기 시장을 지배한 바 있다.
국립수의검역과학원과 미국육류수출협회 등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쇠고기 가운데 75%(금액 기준)는 LA갈비를 비롯한 미국산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2000년대 들어 2003년까지 줄곧 일본, 멕시코에 이어 부동의 3대 쇠고기 수출 시장으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2003년의 경우 미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127만t의 쇠고기 가운데 약 20%를 우리나라가 수입했다.
그러나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이후 우리나라 수입 시장에서 미국의 빈 자리는 고스란히 호주의 차지가 됐다. 작년 한해 수입한 쇠고기 가운데 호주산의 비중은 79%(금액 기준)로 2003년 당시 미국의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미국 쇠고기가 수입조건 개정과 함께 본격 수입돼 과거 점유율을 회복한다고 가정하면, 설육(부스러기 고기) 및 가공육을 제외하고 22만4천t(8억1천324만달러) 수준이던 2003년 수입 규모와 현재 원.달러 환율 930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한해 7천600억원어치의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게 된다. 특히 2003년 당시 전체 미국산 쇠고기에서 LA갈비 등 뼈째 절단한 부위의 비중은 물량 기준으로 60%에 달했다.
이 같은 가능성을 고려할 때, 갈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재개의 신호탄 격인 OIE 등급 확정 소식만으로 국내 소 값 추이가 다시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말 270만~280만원 수준이던 암송아지 가격은 지난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과 '뼈 없는' 미국산 쇠고기 통관 등의 영향으로 200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졌으나, 최근 정부의 송아지생산 안정제 가격 기준 인상 등에 힘입어 210만~220만원 수준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또 앞으로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검토 과정에서 한미 양국 간, 또는 국내에서 절차와 내용에 관한 논란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보다 짧은 시간 안에 보다 완화된 검역 조건을 끌어내려고 끊임없이 우리 측을 압박하겠지만, 우리 검역 당국 입장에서는 일부러 지체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 평가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일각에서는 OIE 지침에 구속력이 없는 만큼, 미국의 등급이 확정되더라도 통상법상 우리가 뼈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위생조건을 바꿔줄 이유가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어 미국산 갈비가 다시 한국땅을 밟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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