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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현상의 이미지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미디어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뉴욕현상

맥도널드 압구정점이 처음 개장 한날 성수대교 사거리까지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긴 줄을 만들었던 이들은 맥도널드 햄버거가 새로운 신분적 지위를 의미한다고 여겼다. 물론 햄버거는 돈이 없는 미국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다. 요즘 브런치 문화가 유행이다. 우리말로 하면 아점쯤 된다. 본래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먹는 밥이다. 주말의 아침 겸 점심 식사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매일 브런치를 판다. 더구나 가장 대중적이라는 브런치 가격은 왜 이리 비싼가. 최근 한국에서 와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 백만 원대의 와인이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물론 와인은 서구에서 가장 대중적인 서민의 술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동경하고 흉내 내는 소비 행태가 과시적 소비 현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물론 역설적으로 이러한 과시적 소비자에 진짜 부유층은 대개 드물다.

이미 뉴요커를 동경하는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왔다. 이유는 역시 과시적 소비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된장녀 사태(?)에서 알 수 있었듯이, 그야말로 허영에 찬 소비 행태에 대한 질책쯤이다. 문제 단어는 허영과 과시일 것이다. 현실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뉴요커의 일상을 알아”라고 하는 이들은 뉴요커의 현실을 들이댄다. 예컨대 뉴요커들이 아침부터 스타벅스 커피 잔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너무 바빠서 앉아서 식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흉내만 내면 할 일도 없이 커피 잔이나 들고 배회하게 된다. 뉴요커의 현상적 이미지만 취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맥락 없이 스타벅스 커피 잔에 샌드위치 식사가 뉴요커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 될 테다. 그렇다고 허영에 찬 개인들에 대한 비판만이 적절한 것일까?

이를 보기 위해 뉴욕 공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듯 싶다. 우선 뉴욕은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고, 문화적 정체성이다. 그것도 세련되고 모던한 문화적 기호이자 정체성을 의미한다. 뉴욕 스타일에 선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진보이자, 앞선 문화적 감각성을 의미한다.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뉴욕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을 누리는 이들은 부와 지위를 갖은 존재로 비쳐지지 않나. 당연히 부와 명예만이 흘러넘치는 공간으로 보인다. 여기에 21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풍요롭고, 여유로우면서도 예술적 미학적으로도 완벽한 공간이 뉴욕이다. 이 공간에서는 배고픔, 죽음, 질병, 가난이 존재하지 않으며 촌스러움, 천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인간 세상이 가지고 있는 꼬질꼬질함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공간인지 동의하기 힘들다. 그곳에도 빈곤과 거지가 존재하고 질병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노동 착취와 소외가 만연하다. 그들이 멋지게 누리는 패션과 음식은 제3세계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결국 미국의 세계 지배의 산물일 수도 있다.

따져보면 우리의 인식에 자리 잡은 뉴욕과 뉴요커의 이미지는 직접 얻은 것이 아니다. 중간에 매개체를 통해 얻었다. 현실의 뉴욕과 우리 인식 속의 차이는 이 매개체 때문에 일어난다. 곧 우리는 뉴욕이 미디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체임을 알 수 있다.

뉴요커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섹스 앤더 시티>는 그들에 대한 선망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 드라마는 수많은 광고주의 돈으로 제작비와 수익을 챙겼다. 거꾸로 이러한 광고주가 좋아하는 성향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드라마는 더 제작될 수 없다. 물론 광고주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내용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에 관한 어두움, 부정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한 밝은 아우라를 만들어 끊임없이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겼다. 그 소비는 뉴욕 스타일, 뉴요커들의 문화적 기호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했다. 그 뉴요커 이미지는 실제가 아닌 미디어 콘텐츠에만 존재한다. 당연히 실제 뉴요커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일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영화나 드라마만이 아니라 각종 패션, 예술 관련 매체들도 뉴욕과 뉴요커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소비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시장을 넓히는데 한 몫 한다. 소비는 결코 자발적인 필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뉴욕과 뉴요커들에 대한 담론은 철저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그 종착점은 소비다.

인간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과시적 소비를 유도하는 미디어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뉴요커 현상이다. 결국 문제는 뉴요커들을 흉내 내며 기호들을 소비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것을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된장녀를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지만은 아닌 이유다. 개체나 개인의 행태보다 그것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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