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수급과 '쌀 수입국' 지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민간업체의 쌀 수출 길을 터주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도하개발어젠다(DDA) 및 자유무역협정(FTA) 등 여러 무역개방 협상에서 '쌀 개방 예외' 주장의 명분 때문에 수출 승인을 꺼려왔으나 한미 FTA 타결, 쌀 공급 과잉, 국산 쌀 품질 고급화 등의 상황 변화를 고려해 정책 기조를 바꿨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주께 첫 사례로 쌀 200t의 스위스 수출 추천(승인)이 이뤄질 전망이다. 일제 시대 강제 반출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쌀이 수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의무수입량 범위내 수출 추천
정부는 11일 과천청사에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쌀 수출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쌀 공급과잉, 고품질 쌀 생산 증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종료 등의 여건 변화를 감안할 때 쌀 수출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실제로 농림부를 통해 총 1만2천t~2만2천t 규모의 쌀 수출 구두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전체 양곡 수급 상황을 고려, 우리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시판용 쌀 최소시장접근(MMA) 물량보다 적은 양의 쌀 수출을 추천해주되, 업체별 수출량은 선착순 방식으로 배정할 방침이다.
올해의 경우 전체 쌀 수입 규모가 24만6천t이고, 시판용 수입쌀 MMA 물량이 3만4천t이므로 최대 3만4천t의 쌀을 수출해도 여전히 쌀 수입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쌀 수출이 처음에는 주로 해외 교포들을 겨냥해 이뤄지겠지만, 향후 국산 쌀의 품질이 계속 좋아지면 수요층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향후 DDA.FTA 협상에 미칠 영향 크지 않다"
이미 쌀 수출을 위한 법적 근거는 마련돼있다. 지난 94년 개정된 양곡관리법 제12조 제2항에 따라 농림부장관의 추천을 받으면 쌀을 수출할 수 있지만, 여러 배경이 겹쳐 지금까지 실제로 수출은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우선 일제시대 공출제도에 대한 반감, 60~70년대 쌀 부족에 따른 굶주림 등의 기억 때문에 쌀 수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정부 역시 80년대까지 주곡인 쌀의 자급 달성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웠던만큼 쌀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최근에는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의와 여러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의 과정에서 '쌀 수입국' 지위를 강조하며 쌀 개방 예외를 인정받아야했던만큼, 정부로서는 쌀 수출 검토를 되도록 자제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다소 바뀐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지난 85년 이후 쌀 자급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아세안.싱가포르.미국 등과의 FTA에서 쌀을 개방(양허) 대상 예외품목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또 정부는 DDA의 경우 지난 2004년 WTO 협상을 통해 일단 2014년까지 쌀 관세화 유예 조치가 결정된만큼 쌀 수출 승인이 이뤄져도 앞으로 DDA 협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가격 측면에서 우리 쌀은 미국이나 태국산에 비해 3~5배 비싸 경쟁력이 거의 없는 상태다. 다만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아닌 우리 쌀을 친환경 재배와 기능성물질 첨가 등을 통해 품질을 높이면 시장 개척이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 다음주 중 200t 쌀 수출 첫 추천 예상
농림부에 따르면 현재 4~5개 업체가 꾸준히 식량정책국에 구두 문의 형식으로 쌀 수출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 고양시 덕양농산영농조합은 쌀 200t을 스위스로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문서로 제출한 상태다.
지난 8일 국무회의, 이날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새로운 쌀 수출 추진 방향을 보고한 농림부는 오는 14일 쌀 수출 자격이나 절차 등을 고시하고 본격적 수출 추천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여러 업체들 가운데 200t 스위스 수출 건은 고시가 이뤄지면 곧바로 검토 작업에 들어가 다음주 중 첫번째 추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나머지 수출 상담 건은 구두로 의사 표시만 한 수준으로, 아직 규모 등 구체적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 언제 두 번째 수출 추천이 이뤄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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