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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에 앞서 '마지노선'을 정하고, 협상에서는 시한에 구애받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배짱'. 협상장 밖에서는 식사와 술을 나누며 적장들과 쌓는 인간적 '신뢰'.

이 두 가지 요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주역인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 신제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 남영숙 외교통상부 FTA 제2교섭관 등이 공통적으로 꼽은 최고의 협상 기술이다.

이들은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상에서 고비마다 때론 '벼랑 끝' 전술로, 때론 인간적 호소로 양보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배 국장은 첫 번째 협상 시한을 넘긴 지난달 31일 아침의 긴박했던 농업 분과 협상장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토요일(31일) 새벽 5시 반까지 협상하고 난 뒤 아침에 다시 만났다. 그 때 내가 몇 개 품목(양허안)을 내놓고 '받아라. 이것 받지 않으면 협상 못한다'고 그랬더니 미국 쪽에서 '못 받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만 두자. 가서 잠이나 자자'며 일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도박이었는데, '미국이 (협상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갈수록 자기들이 답답할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 밀어붙였다"

결국 배 국장의 예상대로 그날 저녁 리처드 크라우더 미국 측 대표는 배 국장에게 "우리 분위기도 풀 겸 맥주나 한잔 하자"며 협상 재개 의사를 밝혔고, 이후 협상에서 우리는 대두(콩).낙농품 등의 현행 관세 유지를 관철하는 등 생각보다 많은 성과를 얻었다.

통신 분과 협상을 이끈 남 교섭관 역시 '죽어도 이것만은 안된다'는 식으로 버텨 통신분야 기술 표준정책에 관한 우리 정부의 권한을 지켜냈다.

남 교섭관은 "통신분과 협상에서 통신사업자의 기술표준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미국 측의 요구에 맞설 때 표정과 억양까지 바꿔 'Over my dead body(차라리 내 시체 위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6차 협상 때는 국경 간 정보 이동과 관련, 강력한 내국민 대우를 요구하는 문구를 미국이 들고 왔는데, 받기 힘든 것이라 본 척도 않고 무시해버렸다. 협상 후 통합 협정문에 이를 미국 측 문안으로 넣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버텼더니 결국 미국도 포기했다"며 상당 수준의 '내공'을 과시했다.

금융 분과 협상에서 우리가 '일시 세이프가드'를 결국 관철시키고, 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을 협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피 말리는 버티기 끝에 힘겹게 얻은 성과였다.

신 심의관은 협상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전에 물러서서는 안 되는 원칙을 정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처럼 벼랑 끝 전술이나 버티기가 통한 것도, 결국 상대와 협상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교류하며 서로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간적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 분석이다.

배 국장은 크라우더 대표와 미네소타에 얽힌 인연을 고리로 친해졌고, 타결을 이틀 앞두고는 크라우더 대표의 방에서 와인과 맥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 자국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크라우더 대표는 "(타결이든 아니든) 협상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대로는 (얻은 것이 없어서) 미국에 도저히 못 돌아간다"고 말했고, 배 국장은 "무슨 소리냐. 오히려 내가 한국에서 살 수가 없다. 내가 미국으로 가마. 당신이 여기 한국에서 살아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으로 맞받았다.

더구나 배 국장은 앤드루 스테판 미국 측 농업분과장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신 심의관도 "6차 서울 협상 때 일이 하도 풀리지 않아 저녁에 킴벌리 클레만 분과장을 비롯한 미국 쪽 협상단과 우리 쪽 협상단 전원을 데리고 술집에 가서 한국식 폭탄주를 돌렸다"며 "인간적으로 친해지니 서로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파악이 되더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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