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식 다육갤러리 대표는 지난 1985년 선린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장대높이뛰기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그는 지도자 시절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그 제자들이 한국 육상을 이끌고 있다. 현직 교사 시절 동계훈련 비닐하우스 훈련장을 직접 설계 제작할 만큼 열정적이었다.박 대표는 지난 2월 서울영원중학교에서 33년의 교직을 부인 소민숙(성산중교사)씨와 함께 명예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 인근에서 본격적으로 다육물 재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육식물은 사막이나 높은 산 등 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이다. 선인장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새 일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했다. 농원을 갤러리아 형태로 꾸몄고, 지도자 시절 직접 촬영한 ‘육상의 전설’ 칼 루이스 등 체육과 환경에 관련된 사진들을 전시했다. 주변 동료 및 학생들의 자주 찾는 ‘미니 도서관’ 겸 소통의 장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는 함께 교직을 떠난 부인인 체조 국가대표 출신인 소민숙 전 교사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또한 ‘다육이 전도사’로서 서울지역 초 중고등학교
명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구역 중의 하나인 명례방(明禮坊)의 명(明)자를 따서 지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1946년에 밝은 마을, 밝은 고을이란 뜻에서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밝을 ‘명(明)’자 이름대로 명동은 1882년 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한 이후 중국 상인이 처음 자리 잡았고,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상인의 본거지가 되어 일제 강점기 때 전성기가 시작된다. 또한 별다른 공간이 없던 예술인들에게 작업과 사교의 장소로 70년대 명동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그 후 2000년대까지 신촌 또는 강남에 밀려 침체기를 경험한 명동은 10여년 부터 일어난 ‘한류열풍’으로 인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신호탄으로 계속된 일본인 관광객의 급증과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중국내 뜨거운 한류열풍으로 중국인들이 즐겨 찾고 있다.이에 따라 명동은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는 관광지다. 편리한 면세점 쇼핑과 친절한 안내 등은 한국인지 외국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명동의 길거리 음식은 매우 유명하다. CNN이 선정한 서울의 대표 길거리 음식 TOP 10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