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날이 가까워지면서 아무래도 중도우파 진영에서 거의 유일하게 청년세대와 뉴미디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선거 관계자들이나 타 언론사로부터 “특별한 변수가 있겠냐”라는 질문을 사적으로 많이 받게 되었다. 즉 주로 여당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 이외에 인터넷이나 트위터에서 청년층의 다른 움직임이 보이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20대의 투표율이 올라갈 것은 분명하지만 큰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답을 하곤 했다. 예상은 그대로 빗나갔다. 미디어워치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다음의 아고라, 트위터 등을 모니터해왔다. 또한 올해 들어 20대를 대상으로 투표 및 정치참여 운동을 하는 청년단체들의 활동도 사안마다 확인해왔다. 큰 변화의 흐름이 없다고 판단했던 이유는 이미 다음의 아고라 같은 경우는 정치세력화되어 정당 홈페이지 정도의 기능 이상을 할 수는 없고, 트위터는 매체의 특성 상 치밀한 논리를 전파할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표심들은 다 결정이 되었고, 기존의 여론조사에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반영이 되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20대 조직들의 경우도 청년세대의 특성 상 일반 대중에 영향력을 발
여론조사와 전혀 판이한 결과가 나온 이번 지방자치선거의 주요 원인은 투표 통계상 30대의 반란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 30대는, 여당에 29%의 표를 준 반면에 야당에는 무려 35%포인트나 더 많은 64%의 몰표를 줬다. 현재 친노좌파 언론에서 투표 혁명의 주역으로 띄우고 있는 20대의 경우는 여당에 37%. 야당에 57%를 주어 여야 차는 20%, 386세대인 40대의 경우는 여당에 40%의 표를, 야당에 이보다 14%포인트 많은 54%의 표를 주어, 여야차는 14%에 불과했다. 즉 30대는 20대와 40대에 비해서도 동급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권 심판론을 주도했던 것이다. 30대의 반란은 이미 2007년 대선 때부터 예견되고 있었다. 2007년 대선은 전반적으로 친노세력 심판론이 우세한 가운데 30대는 전 세대 중에서 당시 여당의 정동영 후보에 가장 많은 28.3%의 표를 몰아준 세대였다. 반대로 이명박 후보에는 가장 적은 40%의 표를 주었을 뿐이다. 20대는 그 다음으로 이명박 후보에 42.5%의 표를 주었다. 특이한 점은 20대의 경우 정동영 후보에 대해서는 20%밖에 표를 안 준 반면, 문국현 후보에게 무려 16.5%의
어제 심상정의 유시민 지지 선언을 보고 “이미 일찌감치 민주당을 포기한 입장에서 심상정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왕 좌파를 할 바에야, 심상정과 같이 좌파 노릇을 제대로 하는 세력이 민주당을 통째로 접수하는 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훨씬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을 넣었다. 이미 자체 동력을 상실한 민주당이 끊임없이 좌클릭 하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의 노선 차이가 없어져버린 흐름 상, 당연히 올 것이 왔다고 보았고, 심상정이 이에 라이터를 갖다 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민주당의 무대책 좌클릭이 좌파정당의 앞길 막아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 시기에 이루어낸 한미FTA도 포기했고, 무상급식 등 좌파정당의 공약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북한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만 비판하는 등 민주노동당의 종북파와의 노선 차이를 없애버렸다. 이는 종북파를 비판하며 창당한 진보신당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노선을 택하고 있는 정당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합치는 게 정치안정을 위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절차적 정당성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 그간 정당을 이끌어온 당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오늘의 심상정의 행보는 노무현과 유시민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전격적으로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진보신당 당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으나, 이것은 심후보가 밝혔듯이 단지 지지율이 낮거나 유시민의 사퇴 압력에 굴한 사건은 아니다. 그간 좌파진영 내에서 마이너에 머물러있던 정통좌파세력들이 김대중과 노무현 등 구 집권세력과 완전히 통합되는 역사적 흐름에서 나온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4년 총선 당시부터 마이너 좌파 세력은 구 집권세력과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왔다. 사실 상 마지막으로 좌파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으며 원내정당으로 밟돋움했다. 그 이후 노무현 세력은 온갖 재보선에서 44:0으로 대패했고, 마이너 좌파세력들 역시 동반 참패했다. 즉 노무현 진영이 늘 주장한 대로, 친노세력이 승리해야 마이너 좌파세력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간다는 것이 선거로 입증되어온 것이다.MB정권 이후의 민주당, 마이너 좌파 세력과 노선차이 없어 진보신당 당원들은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추진, 한나라당과의 연정 추진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왔기에 노선이 다르다 주장했다. 그 어떤 경제사회적 기준을 적용시켜도 노무현 정권이 좌파 노선을 채택했다 보기는 어
인터넷신문만 1300여개에 달하는 다 매체 시대의 기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보도자료 이외의 원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수의 인력이 다수의 기사를 써야하는 열악한 언론환경에서 이를 모두 전적으로 기자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기자 본인이 조금만 노력을 하면 오히려 원문 검토 하나로 1299개의 매체가 놓치는 특종을 올릴 수도 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수도이전 문제를 정면에서 다룰 수 있는, 또한 누구나 검색 한번으로 찾아볼 있는 2004년 10월 21일에 발표된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관련 판결문이 그것이다.헌법재판소, 수도는 국가의 안위, 통일, 국방의 사안이라 판결 기자들조차도 2004년의 헌법재판소에서 수도이전 자체가 위헌이라 판결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수도이전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적 동의를 구한 뒤, 국회의 3분의 2의 의결을 거쳐 하라는 절차를 지적해준 것이다. 물론 이 부분 정도는 알고 있는 기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 중 더 중요한 것은 수도이전은 안위와 통일과 국방의 사안이라고 못 박은 점이다. “어떠한 경우이든 수도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는 헌법 제 92조에 근거하여 평화통일자문회의법에 의해 규정된 헌법 기관으로서 국민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으로 인해 1980년대 초에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설립되었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게 되고 수석부의장과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50인의 운영위원회, 500인의 상임위원회, 232개의 국내 지역협의회와 35개의 해외 지역협의회 등으로 운영되는 국제적 조직이다. 이러한 평통에서 천안함 사태 이후 대국민 단합을 위하여 ‘국민 한마음 반지’를 대대적으로 보급할 계획을 밝혔다. 본지는 파이낸셜센터의 한 커피샵에서 김병일 평통 사무처장과 만나 상세 방안을 들어보았다.문) 평통은 평화통일을 실천하기 위한 조직인데 ‘한 마음 반지’사업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천안함 사태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 그 자체도 비극이지만 사태를 보는 우리 시각이 여야, 진보좌파 또는 보수우파 등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을 보고 참으로 놀랐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의 적이 공격을 해서 군함이 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1주년이 되자, 지자체 선거에서 부활을 노리는 친노세력들이 속속 봉하마을로 몰려들었다. 한명숙 등 지자체 후보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해당 지역의 유권자를 만나야할 시간도 포기한 채 봉하마을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기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바에 대해서는 한겨레신문 사설 ‘노전대통령의 못다한 꿈을 그냥 접을 것인가’에 잘 드러나있다. “아무리 현실의 벽이 높아도 고인이 매달았던 깃발을 그냥 내릴 수는 없다. 그의 못다 이룬 꿈을 그냥 접을 수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1년 전의 분노, 아픔, 다짐을 다시 뒤돌아본다. 그리고 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노무현의 못 이룬 꿈을 감추고 선동에 나선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은 노무현의 꿈을 다시 이루자며 선동에 나섰지만 노무현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감춘다. 왜 그럴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좌파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던 한미FTA이다. 둘째, 필생의 꿈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던졌던 비장승의 승부수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다. 셋째, 퇴임 직전까지도 강조했던 충청권으로의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단일후보로 선정된 이후 친노좌파 매체를 중심으로 지원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현재 지자체 판세는 전체적으로 민주당 등 야권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야권은 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수도권과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에, 충청에서는 자유선진당에 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지자체 선거를 통해 정권 재창출에 나서고자 하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친노좌파 매체들에게 유시민의 등장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매체의 생존을 위한 편집방향과 달리 젊은 기자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호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유시민이 젊은 기자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막강하다. 이는 좌우매체를 망라하여 대다수의 젊은 기자들은 유시민을 선호한다. 같은 친노세력 중에서도 유시민의 독주는 바로 언론, 특히 젊은 기자들의 힘이다. 왜 젊은 기자들은 유시민을 선호할까? 90년대의 안티조선 흐름과 유시민의 감성적 능력이 원인 첫째, 현재 국회를 출입하는 대다수의 기자들은 30대와 20대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시절 교양서적으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학습서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유시민 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와의 단일화 대결에서 승리한 이후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안동섭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성공했다. 김진표 후보와는 여론조사와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서, 안동섭 후보와는 별다른 단일화 절차 없이 그대로 합의했다. 민주당은 유시민에게 패한 셈이며, 민주노동당은 유시민에게 단일후보 권리를 갖다 바친 셈이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유시민 후보로 단일화가 결정된 이후 “유후보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노동당도 지도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 결과가 발표된 직후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천안함이 어뢰에 맞은게 아니라 민주당이 어뢰에 맞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정세균 대표와 김진표 후보는 단일화의 약속 때문에 유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할 수밖에 없지만, 민주당의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2007년 대선 직후 “진보적 가치가 숨쉴 수 없다”며 탈당 감행한 유시민 유시민은 2007년 대선 직후 구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을 전격적으로 탈당했다. 탈당의 명분은 없었다. 단지 총선을 앞두고 친노세력과 불편한 관계인 손학규가 당 대표가 되자 이를 문제삼았다. 표면적으
* 2009년 11월 10일, 유시민이 친노신당인 참여당에 입당선언했을 때, 필자가 작성한 칼럼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이른바 정치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조차, 유시민의 참여당이 동력이 없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시민은 물론 민주당 내의 친노세력은 깔끔하게 민주당을 접수하여 열린우리당으로 부활시켰다. 민주당 내의 정통 민주화세력인 한화갑, 김경재 등은 노아의 방주식으로 평민당을 창당해 다시 당을 나갔다. 즉 2003년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이 주도한 민주당 분당 사태가 2010년도에 다시 한번 반복되면서, 빽빠지 VS 난닝구로 세력이 재편된 것이다. 6개월 전의 칼럼을 다시 소개한다.유시민의 민주당 죽이기, 현재 막을 길 없어 2003년도 이어, 민주당 또 다시 분열 사태 오며 무너질 듯 유시민이 결국 친노신당에 입당하여 정치재개를 선언했다. 이는 손학규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 탈당한 유시민의 행보로 볼 때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미 민주당의 간판으로 집권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야, 굳이 사후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신당창당에 소극적일 수 있으나,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세력으로서는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
친노세력의 상징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오는 6·2 지방선거에 출마할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의 원혜영 선거관리위원장은 6일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 후보자 추천을 위한 경선대회에서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 전 총리의 지지율이 상대후보인 이계안 전 의원보다 높게 나타나 후보로 선출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밖에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친노세력의 적통 승계자인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다. 50%의 비중이 있는 여론조사에서는 유시민 후보가 김진표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이 일찌감치 후보로 나서 한나라당의 안상수 현 시장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미 후보로 확정된 서울시장의 한명숙, 인천시장의 송영길, 또한 유시민 후보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정해진다면, 야권의 수도권 후보 3인방은 모두 친노세력, 즉 구 열린우리당 출신들로 구성되는 셈이다. 특히 이 중 한명숙 후보와 유시민 후보는 열린우리당과 친노세력 내에서도 성골에 속하는 직계들이다. 한명숙 후보는 서울시장 출마 직전 자신이 맡고 있던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사퇴하면서 “서울시장
MBC의 파업이 벌써 한달을 넘겼다. 1992년 52일 간 이어진 파업에 이어 최장기이다. MBC노조 측에서는 김재철 사장이 6월 2일 지자체 선거 때문에 지연 작전을 펴고 있다 주장하고 있다. 즉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강경 진압을 할 수 없으니, 6월까지 시간을 끌다, 지자체 이후에 결단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최장 60일로서 MBC의 파업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다. 그러나 설사 6월 이후에도 파업이 제대로 정리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김재철 사장은 파업 진압에 의지가 없고, MBC노조 역시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으로 버틸 여력이 되며, 결정적으로 MBC 파업사태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물론, 뉴데일리, 프리존뉴스, 독립신문, 프런티어타임즈 등 중도우파매체는 MBC 파업에 대해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강력한 우파논객들의 결집소인 조갑제닷컴과 올인코리아에서도 MBC 파업은 찬밥신세이다. 파업을 하든 말든 관심이 떨어졌다는 단적인 증거이다.시민들의 파업에 대한 관심 떨어지자 정치 앵커 신경민까지 등장 반면 미디어오늘,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뷰스앤뉴스 등 친노좌파
정계, 특히 정권 탈환을 노리는 친노좌파 진영에서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가 40% 이상 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화두가 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에서도 44.9%의 지지대가 나왔다. 이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2년 차 집권 시기의 지지율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른 결과이다. 포털과 방송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친노좌파 진영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광우병 등등 모든 사안에 대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의 반 이명박 정서를 보면 민란 수준의 저주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40%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친노좌파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조중동 등의 여론 조작이라 애써 변명한다. 그러나 조중동의 사설을 보면,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비판하지 않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는 노무현 정권 당시,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친노어용매체들이 노무현 정권의 실정마저도 조중동과 우파세력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편집이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국정운영을 정략으로 끌고가지 않고 있기 때문 그럼 대체 이명박 정권의 고공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명박 정권은 다양한 사례
박경신 교수가 군대 기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국적을 취득한 것과는 정 반대의 맥락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박노자라는 인물이 있다. 박노자는 1973년생 러사아 태생의 유태인으로서 블라디미르 찌호노프라는 이름을 박노자라는 한국식으로 바꾸면서 2001년 귀화하였다. 그는 귀화 직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로 오르며 그는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신좌파 지식인의 위치에 올라선다. 박노자는 귀화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적으로 한국을 보다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 ‘혈통적인 한국인이야말로 한국인이다’라는 통념에 저항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문화적인 정체성을, 생득적인 사항이라기보다는 자유 선택의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인이기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 몇 천 명의 한국인들이 매년 해외 거주자가 되기를 선택하여 이민가는 마당에,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이 되기를 선택하면 좋지 않습니까?”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귀화시험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역사와 국어 지식은 물론 섬세한
TK 관련 발언 해프닝에 경북일보 측의 공개 사과로 마무리 된 이후,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또 다시 오보 해프닝에 휘말리고 있다. 명진 스님은 지난 11일 일요법회에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인 김영국씨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입막음을 시도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당사자인 김영국씨는 불교포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의 증언대로라면 명진 스님은 이 수석이 김씨와 직접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요법회 법상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김영국씨가 이번에는 불교포커스와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고 나서, 이 수석으로서는 두 번째 오보의 진실게임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명진 스님은 당시 법회에서 "이동관 수석은 김 거사에게 '선거법 위반으로 사면 복권이 아직 안 됐을 텐데, 모두 풀어줄 테니 기자회견 하지 말라, 네가 원하는 것 다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김 거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이동관 수석이 전화기에 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수석은 명진 스님의 주장을 반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