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유용욱 주필 | ‘검색의 종말’이 예고된 자리에 ‘답변의 독점’이 들어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생태계의 대동맥은 검색 엔진이었다. 사용자가 궁금한 키워드를 입력하면 검색 엔진은 수십 개의 문을 열어주었고, 독자는 그 문을 통과해 언론사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가 알던 ‘링크의 문법’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 지 오래다.
구글과 네이버가 전면 도입한 AI 기반 답변 엔진은 이제 사용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대신, 스스로 목적지가 되기를 자처한다. AI는 수천 개의 기사를 제멋대로 학습하고 요약하여 단 몇 줄의 결론을 내놓는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뉴스 생태계의 근간을 지탱하던 ‘트래픽’이라는 혈액이 증발하는 미디어적 재앙에 가깝다.
이러한 ‘제로 클릭(Zero-Click)’ 현상의 확산은 언론사에게 단순한 방문자 감소 이상의 공포를 던지고 있다. 미디어의 비즈니스 기본 모델은 독자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에 비례하는 광고 수익에 기대어 왔다. 그러나 AI가 뉴스를 재가공해 직접 답변을 제공하면서, 독자가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공들여 지은 농작물을 플랫폼이라는 거대 유통업자가 통째로 가져가 ‘즙’으로 만들어 팔면서, 정작 뙤약볕 아래서 팩트를 취재한 농부에게는 최소한의 정당한 대가조차 지불하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데이터 약탈’이며, 언론의 재정적 자립을 위협해 결국 저널리즘의 질적 하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더 심각한 징후는 정보의 ‘파편화’와 ‘맥락의 거세’에서 더욱 적나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뉴스는 결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 뒤에는 입체적인 갈등 구조, 취재원이 내뱉은 한숨의 의미, 그리고 기자가 행간에 심어놓은 시대적 고찰이 입체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AI 답변 엔진은 이러한 맥락을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거추장스러운 부산물로 취급하며 과감히 쳐내버리고 오직 효율적인 ‘정보 값’만을 추출한다. 독자는 사건의 결론을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하게는 되었지만,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반추(反芻)할 기회는 잃어버렸다.
언론사마다 제각각이었던 고유의 시각은 AI의 중립적인 척하는 무미건조한 톤으로 획일화되고, 여론의 다양성은 개별 AI 플랫폼이 설정한 알고리즘의 요약 방식 속에 갇혀버린다. 이제 각각의 플랫폼은 갈수록 사용자를 자기 서비스 안에 묶어두는 ‘가두리 양식장’ 전략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는 개별 언론사의 브랜드는 점차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정보를 얻으면서도 그 정보를 생산한 주체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 기사를 썼는지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언론이 AI의 답변을 뒷받침하는 ‘참고 문헌 1’로 전락하는 순간, 저널리즘은 자신의 존재 이유나 필요에 대한 근거를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작금의 이런 현실을 플랫폼에 종속된 뉴스 유통 구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플랫폼의 배려나 선의에 기대어 오로지 클릭 숫자에 매달리던 천수답(天水畓) 경영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인터넷 신문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플랫폼이 ‘가두리 양식장’을 강화한다면, 언론은 스스로 ‘독립된 섬’이 되어 독자가 직접 배를 타고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데이터 주권’에 대한 강력하고도 일관된 집단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되는 뉴스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사용료를 산정하고, 무분별한 크롤링에 대한 기술적 방어막을 구축하는 법적·제도적 대응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열쇠는 결국은 독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복원하는 데 있다. 검색 결과 상단에 걸리기 위해 자극적인 키워드를 끼워 넣던 ‘검색 최적화(SEO)’의 유혹을 버리고, 뉴스레터나 자체 유료 멤버십처럼 플랫폼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직거래 채널을 단단히 다져나가야 한다.
결국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저널리즘의 고유성, 즉 ‘인간적 손길(Human Touch)’이 해답이다. 방대한 데이터의 요약은 AI의 영역일지 모르나,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뜨거운 심장은 여전히 우리들 기자의 영역이다. 요약된 몇 줄의 텍스트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현장의 냄새와 집요한 추적형 콘텐츠만이 독자를 다시 언론의 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읽는 행위 자체가 지적 즐거움이 되는 고품질 콘텐츠, AI 요약본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기는 글만이 이 가혹한 기술 경쟁 시대에서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위기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잃어버린 언론 내부의 위기이기도 하다.
클릭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자리에 독자의 신뢰라는 이름의 ‘진짜 관계’를 채워 넣지 못한다면, 언론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도서관 한구석에서 먼지 쌓인 주석(註釋)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저널리즘의 본질, 즉 “누가, 왜,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가?”에 다시 모든 화력을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은 이미 줄어들고 있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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