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은 지난 달 31일 제주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담 만찬장에서 와인잔에 담은 `복분자주'로 건배를 하며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송 장관도 막바지에 이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북핵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가 적지않았을 것임에도 만찬장에서 만큼은 한.일간 협력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 만족감을 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아태국장급 협의체인 한.일 안보대화를 5월 중 재개하기로 하는 한편 외교부 북미국장간 회의와 아중동 국장간 회의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협력채널 구축에 합의했다.
이는 결국 양국이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와 국제 이슈에 대해 필요시 공동 보조를 취하는 한편 상호 의견을 조율하고 상대의 외교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채널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함께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간 협의를 4월 중 갖기로 합의함으로써 제2기 위원회의 조기 출범을 도모한 것이나 일측이 향후 5년간 매년 한국의 청소년 1천명을 초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환영할 일임에 틀림없었다.
또 북핵문제와 관련,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 납치문제 해결 전에는 대북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일본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지만 차이는 차이대로 남겨둔 채 비핵화진전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식 해법에 공감한 것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이견은 이 같은 협력의 틀을 언제고 흔들 수 있는 `지뢰'임을 두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여실히 확인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 아소 외상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자국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아소 외상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한 송 장관의 문제제기에 "대국적 견지에서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라서 정부는 검열할 수 없다"고 맞섰다.
아울러 아소 외상은 최근 일본 정부가 전범 합사 논의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야스쿠니(靖國) 문제와 관련, "신사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사안으로, 정부가 A급 전범의 합사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일본 답방을 통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처럼 과거사 문제가 불거지고 그에 대한 인식차가 선명한 상태에서는 정상회담을 갖기 어렵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두 장관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합의한 협력의 틀이 `과거사'의 지뢰밭을 피해가며 양국 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제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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