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과 심형래 감독은 모두 할리우드의 문을 부지런히 두드리는 이들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말 중에 공통점은 자본의 규모이다. 때때로 그들의 발언에서는 한국영화계도 많은 제작비를 들이면 할리우드 영화보다 훌륭한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피력된다. 이는 비단 영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류가 불면서 한국의 드라마 제작자들은 제작비만 많이 지원된다면 일본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자신감은 미국 드라마가 국내 젊은층을 휘어잡을 때도 터져 나왔다.
미국 드라마가 회당 30억원인데 비해 국내 드라마는 7-8,000만원에 불과하니 말이다. 더구나 이 대부분은 출연료로 지급된다. 여기에 스타작가를 기용하면 더욱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스타작가와 스타 배우를 쓰면 인지도는 높아지지만, 작품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없다. 작가와 배우에게만 의존하는 드라마는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결국 드라마도 고도의 시스템 속에서 산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타 피디는 허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효리 단막극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뜻하지 않게 남긴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세계를 아우를 만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37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막대한 돈을 쓴 이효리 드라마를 어디에 내 놓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또 하나의 교훈은 한국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으로는 이효리 드라마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작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공중파의 드라마는 적당히 시청률이나 올려 광고비로 한탕 하는 상품 아닌 상품이다. 질로 승부 거는 작품이 아니라 한낱 눈요깃거리인 것이다. 이렇게 될수록 미드족과 일드족은 더욱 창궐할 수밖에 없고, 젊은 층은 공중파 드라마에서 이탈할 것이다. 기성의 편견이나 강조하는 드라마가 번창하고 새로운 시도의 드라마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 이는 문화부족의 위기를 말해준다. 그러니 <부활>의 복제품이라는 <마왕>과 같은 작품에 그나마 기대어 마니아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효리 드라마가 준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투기 금융 시장 에서나 가능한 먹튀의 실행이다. 이제 먹튀의 모델을 공중파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먹튀(먹고튀기)’를 공중파 방송에서 공공연히 했는데, 방송 감독 기구는 무력했다. SBS는 제작비를 하나도 대지 않고, 광고수익을 챙겼고, 이효리 소속사는 광고 협찬비로 제작비를 충당했다. 협찬 기업들은 간접 광고를 통해 홍보효과를 보았다. 물론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모두가 승리한 ‘먹튀’였다. 이렇게 한다면야 새로운 수익 창출모델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나.
이러한 세 가지 교훈을 얻었음에도 이효리 드라마에 고마워하지 않고 욕만 하는 것은 혼자만이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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