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90년대 한국영화계는 외화직배시스템 도입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뤘었다. 당시 직배영화 상영관에 뱀을 풀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고 영화인들은 삭발과 집회등을 통해 '한국영화살리기'를 주장하며 외화직배를 미뤄달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던 한국영화계는 장군의 아들을 필두로 '약속', '쉬리', '미술관옆동물원', '북경반점', '인정사정볼것없다', '주유소습격사건', '텔미썸딩'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중흥을 이뤄냈다.
이후 2000년대를 접어들면서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고 2004년 '실미도'와 '태극기휘날리며'가 초유의 성공을 거둔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심리가 투자와 기획으로 이어졌고 거대자본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영화계에도 소위 '규모의 경제'논리가 적용됐다. 그러면서 영화계는 과당경쟁, 스크린 독과점, 홍보비 상승, 마케팅남용, 아류작 생산, 질적 완성도의 하락, 대형스타의 편중, 관련업 수직통합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만들어냈다.
지금 영화계는 한미FTA가 또다시 한국영화를 죽일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다미로 말하자면 우리영화계는 너무나 허약하다. 외화직배시스템 도입때도 한국영화는 죽을 것이라고 했고 일본문화개방을 할때도 한국영화는 죽을 것이라고 했다. 또 스크린쿼터제 축소로 이제 또다시 한국영화는 죽을것이라고 한다.(정작 죽은건 국내 출판과 에니메이션이다)
오히려 지난 몇년간은 미국을 제외한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등의 타국영화들이 한국에서 간판이라도 걸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화다양성을 주장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기였다. 일장춘몽을 깨고 나니 현실이 눈앞에 보이는 것인지 외화 '300'과 '향수'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통상 비수기에 속하는 3월이 무색하리만큼 흥행하고 있다. 영화계는 '300'과 '향수'의 흥행을 보고 또다시 한국영화는 위기라고 외친다.
3월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쏜다', '수', '뷰티풀선데이', '이장과군수', '빼꼼의머그잔'뿐인데 그나마도 신통치 않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부진한 것을 외화탓만으로 돌릴수 있을까?
정말 한국영화의 위기는 스크린쿼터도, 문화개방도, 직배시스템도 아니다. 한국영화계 자체가 문제다. 매년 등장하는 조폭코미디물, 우는거 말고 보여줄것이 없는 멜로물, 배우만 다른 비슷한 아류작들, 대형스타들에 집중한 엉성한 스토리, 높아만 가는 출연료와 홍보비등이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영화계가 만든 결과물이라면 한국영화는 더이상 보호할 가치가 없어진다. 영화같은 문화상품을 상업적인 잣대로만 보지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제까지 영화를 상업성으로만 접근해온 영화계가 할말은 아닌듯 싶다.
한국영화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하니 저예산영화 육성과 보호에 힘을 싣고 협회들이 둘러앉아 산업인력의 처우개선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 너무 높아진 홍보비와 마케팅비용을 절감하려 고민하고 일부 스타들이 앞장서 출연료를 분할하고 재투자까지 하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보고 진즉부터 했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늦게 되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직배시스템이, 일본문화개방이 한국영화를 위축시킬것이라며 삭발에 화형식까지 감행했던 영화계가 영화 '쉬리'를 기점으로 꾸준히 성장했지만 결국 이 성장의 숨은 요인은 한국영화계 스스로의 능력과 경쟁력이 아니라 스크린쿼터로 보호받고 국민들의 의리(?)와 동정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자식은 강하게 키우라는 말도 있듯이 잘해도 칭찬, 못해도 칭찬해주던 영화계는 이제 어른이 되어 자립해야 할 시기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