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참 편하게 한다. 남들은 선거유세 지원하다가 목덜미에 칼침 맞고, 100일 동안 면도도 못한 채 막노동하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절에 가 스님들 앞에서 아양떠는데. 말꼬리에 찰싹 달라붙어 어영부영 천 리를 주파하는 똥파리도 이보다는 훨씬 팔자가 박복하겠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을 일컬음이다.
한나라당이 원희룡 띄워주기 작업에 거당적으로 착수했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가 주인 노릇을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혹시 원의원은 밤마다 장독대 대신 김치냉장고 위에 정화수 올려놓고 치성으로 기도한 건 아닌지? 부디 손학규 전경기도지사 빨리 탈당해달라고. 신났다 원희룡! 좋겠다 원희룡! 군정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 잔재들 사이의 고래싸움에서 알차게 실속 챙기며 차차기 대권까지 도모하게 되었으니.
원희룡이 제2의 정동영을 자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선지킴이의 임무를 착실히 이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합리적 중도보수를 표방한 손학규가 대오를 이탈함으로써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구도는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과 정신적 아들이 격돌하는 유신패밀리의 집안잔치로 낙착될 전망이다. 사실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메인 디시는 아니었다. 일종의 조미료 구실을 맡았다. 허나 조미료라고 무시하지 말라. 소금 넣지 않는 설렁탕과, 고추장 빠진 비빔밥을 상상해보시라. 맹탕 중의 맹탕이다.
숟가락 한 개 달랑 들고 나타나 적당히 병풍 역할 하면서 본전과 판돈에 더해 개평마저 뜯어가는 숟가락정치, 병풍정치야말로 한국정치의 건강상태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악성질환이다. 손학규가 시베리아로 떠난 현재, 원희룡은 예정대로 밥숟가락 흔들며 한나라당 경선을 완주하겠단다. 아마 그는 대한민국 정치권에 새로운 직종을 창출할 듯하다. 수행비서가 아닌 수행후보. 다른 후보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면서 떡고물과 빵부스러기를 확보하는. 한국축구의 비극이다. 원희룡 같은 주워먹기의 달인이 국가대표팀에 없는 게.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하겠다는 원희룡 의원에게 묻는 바이다. 원의원이 진실로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원한다면 거기가 사하라사막이건 남극설원이건 시베리아보다 더욱 혹독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내몰아야 옳다. 따뜻한 아랫목에 편안하게 드러누워 누릴 것 다 누리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오로지 입으로만 실천하는 노무현스러운 자기희생은 국민을 기만하고 소속정당을 우롱하는 짓이다.
유권자들 면전에서 양말 벗고 발가락의 무좀 보여준 해프닝 제외하면 지금껏 원희룡이 리스크 있는 행동을 감행한 적이 있었던가? 안전제일의 보신주의와,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된다는 극도의 몸사리기로 일관했을 따름이지. 올림픽에 몸아끼기 종목이 있다면 남자부 우승자는 틀림없이 원희룡일 터. 여성챔피언은 ‘열아홉 순정’의 엄지 여사고. 탈당을 결행한 손학규에게 원희룡이 속으로 해주고픈 말, “선배가 아냐. 한 마리 시베리아 불곰이지!”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는 한나라당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진영과 이명박 캠프에 앞다퉈 줄을 서는 참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원희룡은 어떠한 가시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명박이 손학규한테 시베리아행 열차티켓을 끊어줬다면, 원희룡은 기차역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손학규의 등뒤에다 대고 이렇게 약올리는 격이다. “형이 관리하던 나와바리는 내가 접수할게!”
원희룡은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실현하고자 온몸을 내던져 헌신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는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위하여 단지 보채고, 보채고, 또 보챘을 뿐이다. 원희룡이 보챌 때마다 한나라당의 개발독재집단과 냉전수구세력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온갖 군것질감을 선물했다. 원희룡은 한나라당에도 아동인권이 존재함을 내외에 과시하는 철부지 귀염둥이였다.
원희룡이 범접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큰소리로 보채던 손학규가 이제 한나라당 둥지를 박차고 날아가 버렸다. 의리 없는 뻐꾸기라고 욕하기 이전에 요것만큼은 확실히 해두자. 어쨌든 손학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번지점프를 불사하는 도전의지와 개척정신을 갖췄다는 점이다. 흥하든 망하든 자신 있게 질러보는 배짱과 모험심 말이다.
원희룡은 이른바 애늙은이일 게다. 진짜 노인은 원숙한 지혜가 있는 반면 겉모습만 탱탱한 애늙은이는 잔머리의 회전속도가 남다르게 빼어나기 마련이다. 원희룡은 대학입학시험에서 전국수석을 차지했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용기와 소신이 강한 놈들은 탈락시키고, 기회주의적이고 약아빠진 녀석들을 환영하기로 유명하다. 시험성적을 자산으로 출세한 원희룡의 잔머리지수(잔Q) 또한 측정불능일 지경으로 높을 성싶다.
탁월한 잔Q의 소유자가 참가만 해도 3위 입상이 자동보장되는 손쉬운 게임에 출전하기를 마다하겠는가. 원조 경선지킴이 정동영은 탈꼴찌조차 아슬아슬한 초기의 불리한 판세를 무릅쓰고 출사표를 던졌다는 명분과 자랑거리라도 있지. 출발선에 서면 무조건 순위권인 시합이라니. 이참에 원희룡 의원은 여자연예인들만 참여가 허락된 씨름대회에 출전해보기 바란다. 닥치고 순위권이잖아. 무임승차도 가지가지다. 참다운 청년정신이 실종된 부박한 세태에 힘입어, 잔머리만 유달리 발달한 애늙은이들이 득세하는 조국의 현실이 정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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