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이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동결자금 해제 문제에 걸려 파행으로 끝나자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상습적인 협상 전술이라며, 이번 사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6자회담의 전도가 험난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6자회담 참가국 대표들을 며칠간 기다리게 하고 회담장을 나간 오만한 행동은 특유의 협상기법"이라며 북한이 미국에 BDA자금 해제 뿐 아니라 다른 장애물도 제거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또 미국의 BDA 북한 자금 전액 반환 결정은 "돈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 법과 조약을 지키려는 미국의 의지가 약화됐다는 점을 나타내는 위험한 신호"라며 이번 사태로 "북한이 과연 핵무기 포기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앞으로 미국에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는 한편 유엔 제재 해제와 테러지원국 해제,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경수로 논의 조기 개시 등을 주장할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가 오랜 시일이 지나야 가능할 수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 결렬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북한은 60일간의 이행과정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을 최대한 완화하려 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린 전 보좌관은 2.13합의는 옳은 것이지만 미국이 합의에 급급한 나머지 기선을 빼앗긴 감이 있다며 북한이 이를 이용해 미국의 모든 '지렛대'를 없애려는 전형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린 전 보좌관은 북한이 중유와 국제적 제재완화를 얻기 위해 효용가치가 떨어진 영변 원자로를 폐쇄할 가능성이 높지만 60일 사이에 미국이 대부분의 압박수단을 잃을 위험이 있다며, "우리는 충분한 대북 압박과 '지렛대'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 파운데이션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측이 현대측의 송금 문제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북이 지연됐던 일을 상기시킨다며 미국이 이미 BDA자금 전면 해제를 약속한 만큼 "이번 휴회는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이번 일로 6자회담이 결정적 차질을 빚지는 않겠지만 이는 "모든 당사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맨스필드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미국이 그동안 법집행 사안이라고 주장해온 BDA문제에서 양보함으로써 이를 정치화하고, 대북 금융압박 능력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미국의 향후 조치는 법집행이 아니라 정치적 조치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에 취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플레이크 소장은 이번 사태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의 미국 내 신뢰도가 손상되고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진지성에 대한 의문이 짙어질 것이라며 "6자회담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건 분명히 좋지못한 신호이며, 6자회담에 심각한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BDA문제 해결은 6자회담 진전을 위해 아주 중요하며, 미국측에 더 이상 `지렛대'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헨리 스팀슨센터의 앤런 롬버그 수석연구원은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이 근본적인 후퇴를 했다고 볼 아무런 이유도 없다"며 6자회담의 진척을 위해서는 BDA 북한자금의 전면 반환이 절대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롬버그 연구원은 만일 미국이 BDA문제를 풀지 않았다면 북한은 협상에 복귀하지 않았고, 6자회담은 교착상태를 지속했을 것이라며 이 문제가 대북 압박수단으로서의 실효성이 있는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워싱턴=연합뉴스) lk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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