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3년을 맞은 날이었다. 이날 탄핵 당시 맹활약을 보였던 인물들의 평가가 쏟아졌다. 역시나 탄핵주역들은 ‘아직도 당당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여권에서는 ‘민주주의에 커다란 오점’이라며 변함없는 소신을 밝혔다.
지난 2004년 3월 12일,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대통령 탄핵’은 한국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신생정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152석)를 차지한 원내 제1당이 되었고, 한나라당은 역풍을 맞으며 힙겹게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정통야당 민주당은 교섭단체도 꾸리지 못할 정도로 군소정당이 됐다.
대통령 탄핵에 대해 국민여론에 반하는 ‘반(反) 민주적 행위’라는 반대론과, 국회법과 헌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법치주의’라는 찬성론이 맞서 정국의 파란을 일으켰다. 찬성론자들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판에도 “불이익을 당해도 좋다. 하지만 대통령이 헌법과 국법을 무시하는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밀어붙였다.
한편 당시 민주당 대표로 탄핵 주역으로 활약했던 조순형 의원은 12일 CBS 라디오 ‘이슈와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 탄핵 사태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탄핵이 옳았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서도 “헌재가 국민과 여론의 눈치를 봤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지난 7.26 성북을 재보선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며 출마한 조 의원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선됐다. 탄핵주역으로 꼽히는 박관용 국회의장,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 홍사덕 전 원내대표, 민주당 유용태 전 원내대표 들 중에는 유일한 국회 입성이었다.
반면 같은 날 인터뷰에서, 당시 오열로 화제가 됐던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는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라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심각하게 국익을 저해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숫자만 앞세워 끌어내리려는 것은 명백한 의회 권한의 남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정치적' 탄핵 상황이라는 해석에 대해 임 의원은 “정책의 결실을 맺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데 그 전에 신뢰를 잃은 게 문제”라면서 “낮은 자세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대통합을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당시 지지해주었던 분들의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열-민 통합의 조건으로 ‘여당의 분당 사과’와 ‘민주당의 탄핵 사과’를 들었던 바 있는 임 의원은 물론 통합론자들은, 국민들에게 통합에 대한 필요성만 거듭 제기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한 명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계개편을 앞두고 반(反)한나라당 전선을 위해 '범여권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참여정부의 실정으로부터 가장 떳떳한 민주당에게는 오히려 탄핵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은 “탄핵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한 후, 민주당 구 지도부와 지지자들로 사이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한편 범여권통합신당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일부와, 탈당파들은 '분당에 대한 잘못은 인정한다'면서도, 아직까지 탄핵사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만약 탄핵 평가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통합신당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민주당에는 앙금이 가시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만약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통합을 위해 '탄핵은 정당했다'고 인정한다면, 오히려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탄핵 역풍을 타고 금배지를 단 자신들의 정치적 발판까지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이 했던 말을 360도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도 있다.
탄핵의 정당성 논쟁은 차기 범 개혁세력이 집권했을 때, 노무현 정권을 교체한 것이냐, 승계하는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조순형 전 대표는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그건 노무현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 통합파나 탈당파 모두 노무현 정권의 교체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열린우리당의 원혜영 최고위원은 조순형 전 대표 등을 겨냥해 "탄핵주역들이 우리당 지지율 하락을 틈타 자신들의 반민주적 폭거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원 최고위원은 "당시 한나라당을 비롯한 탄핵 세력이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을 하야시키려고 했지만 국민들의 힘으로 이를 막아냈다"며, "열린우리당도 17대 총선에서 사상 초유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대통령 탄핵이 얼마나 명분이 없는 반민주적 폭거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탄핵의 부당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순형 전 대표를 반민주폭거세력으로 규정하는 이상, 조순형이 있는 민주당과는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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