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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프로, 스타의 수다잡담이 장악

방송의 스타 종속성 키우는 주범


어느 고3 학생이 방송 프로그램 출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자신에게 떨어진 최종 수입은 6천원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 MC의 경우 1회 출연료가 600만원이었다. 당일 2회를 촬영했으므로, 12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물론 이 정도는 낮은 출연료다. 보통 700만 원 이상의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대개 ‘잡담 떨기’ 프로다. 잡담 혹은 수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과연, 이렇게 비싼 출연료을 지불하고, 제작비를 들이면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는 것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한국의 토크쇼는 연예인들의 사담, 신변잡기의 경연장이다. 아니 토크쇼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에는 토크(talk) 쇼는 없고, chat 쇼만 있다. 즉 ‘수다 떨기’ 프로그램만 있다. 이제 공중파에는 찾아볼 수 없고 케이블에서나 토크쇼 <리빙 Talk> 같은 프로그램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토크쇼에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는지 모른다.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인터뷰를 하거나 대담할 수도 있다. 편하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한 분야에서 오랜 동안 활동을 해온 인물을 초대해서 그의 삶과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 나름의 철학을 듣는 형태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분야도 다양하고 초대되는 인물도 각인각색일수밖에 없다. 또한 시사성이 강한 인물이나 사안의 당사자를 초대해서 사안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연예인도 수다를 떨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을 한국 방송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 토크쇼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획일성’과 ‘제한성’이다. 출연자의 제한성과 소재의 한계에 따른다. 우선 형식의 획일성을 들 수 있다. 일단, 토크쇼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연예인 일색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에서 나누게 될 이야기 자체가 제한 된다. 예컨대, 연예인이 사회문화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 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 출연한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같은 연예인들만이 나오기 때문에 토크쇼라는 프로그램에 차별성이 없다. 이른바 ‘돌려 먹기’ 식이다. MC도 연예인이거니와 여러 프로에 겹치기 출연한다.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김용만, 박수홍, 정형돈, 김원희, 박명수 등을 볼 때 여기에 출연하는 연예인 입담꾼들도 매우 한정되어 소수가 장각하고 있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놀러와>나 <야심만만>,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은 말할 것도 없이, 중년 아빠들의 속내를 들어본다는 <불량아빠클럽>도 마찬가지 연예인 일색이다. 이는 이른바 공인이 아니라 토커들이 방송프로그램을 장악한 단적이 증거다.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을 섭외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른바 공인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 공인이 연예인들 만일까? 아니 다른 공인들은 출연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당연하지 않겠나 싶다. 농담 따먹기나 하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웃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지배하는 토크쇼 지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토크쇼에 오락 쇼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서 오락에 토크가 종속되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처음에는 오락적 요소는 토크를 재밌게 하는 양념의 요소였는데 이제는 오락적 요소가 토크를 집어 삼켰다. <쟈니 윤 쇼>나 <주병진 쇼>가 <서세원 쇼>, <이홍렬쇼>로 넘어가면서 오락 토크 로 변질되었다. 96년 <이홍렬쇼> 이후 <김혜수 플러스 유>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는 모두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 뒤 <야심만만>이나 <상상플러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해피투게더>는 집단적 오락 수다 쇼를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이들 쇼가 윈프리 쇼같이 파격적인 내용으로 재밌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진실한 고백은 없고, 시청률을 위한 사랑이야기와 연애이야기만이 난무하곤 한다. 진실과 사실을 표방하며 폭로형, 자백형, 고백형 연예인 잡담이 범람한다. 아니 이제 얼마나 인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도 얼마나 재밌게 포장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집단적으로 나와 집단 수다를 떨 뿐 데이비드 레터맨쇼, 제이 르노의 투나잇쇼, 오프라윈프리쇼와 같이 집단 토크쇼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데스크 토그쇼는 없어지고 집단 패널 토크쇼만 있다. 여기에 아침 시간대에는 주부들만을 위한 소파 토크쇼만 있다. MC는 비상식적이어도 무난한 우스개만 던지면서 진행을 이끌어 가면 된다.

토크쇼의 가장 강점은 ‘진실성’과 ‘현실성’이다. 출연자의 일상과 경험 삶을 진실 되게 들어보고자 하는 대중들의 마음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토크쇼 지향의 프로그램들은 연예인들의 진실을 강조하면서, 위장 연출이 난무 한다. 무엇보다 모든 이야기가 개그와 우스개에 종속되어 있다. 또한 인위적으로 감동적인 이야기 소재만 추출해낸다. 즉 대본은 과잉감정을 불러내는 이야기만 나누도록 구성한다. 이런 때 에피소드 자체가 아니라 구도 설정 자체에 따른 마음의 울림은 바랄 수 없다.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 소재가 없는 이들에게 토크쇼 지향 프로그램은 거북스러울 뿐이다. 어디 현실이 그렇게 웃기고 감동적인 일만 있을까? 아무리 천하의 재담꾼이라도 곧 한계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장기간 같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다보니 갈수록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폭로 전으로 치닫게 된다. 사담 수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웃음의 희생양으로 삼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상대방의 신체적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는 사생활 침해나 인권침해의 소지가 강하다. 또한 전파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담 토크쇼는 방송을 몇몇 출연자게 사유화 시킨다. 이러한 점을 방기하는 방송사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다. 여기에 협찬이나 간접 광고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대형기획사 소속의 연예인들이 방송 출연을 독점하는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방송의 연예인 스타 의존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잡담 수다 프로그램의 범람은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적은 비용에 비해 쉽게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트콤 같은 경우에는 한번 포맷을 설정하면 죽이 되는 밥이 되든지 끝까지 제작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다. 그러나 수다 프로그램은 진행자를 바꿀 수도 있고 포맷을 다시 바꾸거나 출연자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수다 프로그램에는 아이디어가 필요 없고 탄탄한 대본 구성이 필요 없다. 말장난 잘 하고 수다를 잘 떠는 출연자가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런 수다 프로그램이 휩쓸면 신선한 아이디어는 모두 사장되고 만다.

물론 미국 NBC의 , 바바라 윌터스가 진행하는 ABC TV 생방송 토크쇼 (더 뷰)같은 정통 토크쇼가 없다는 지적은 그렇게 타당하지 만은 않다. 정통 보다는 한국적 정서에 맞는 토크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일대일 나누는 토크가 문화적으로 맞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는 담소 형태가 맞다. 예를 들면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와 <불량아빠클럽>에서 온돌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신 사적인 수다가 아니라 공적인 토크가 많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락적인 요소와 진지한 토크가 결합된 토크쇼가 필요하다. 방송의 공적 역할이나 시청자의 매체 접근성을 위해서다.

대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정말 사람이 중요하다. 래리킹, 오프라윈프리, 바바라 윌터스같은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진행자의 자질이 토크쇼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중 하나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토크쇼가 없는 것은 토크쇼 MC 스타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현재 내공 있는 진행자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삶의 경험은 물론 카리스마와 분위기 장악력이 있는 MC도 드물다. 현재의 토크 쇼 MC들은 너무 젊거나 가볍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너무 진지하지 않은 멀티플 토크쇼 진행자는 없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MC의 철학이 보여줄 때도 되었다. 그것은 개인들의 문제이기 이전에 방송이 시청률에 좌지우지 되어 그러한 MC를 키우지 않은 탓도 크다.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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