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0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온종일 파상 공세를 폈다.
노 대통령의 제안에 향후 정국장악 및 정계개편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고 이를 조기 차단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 것.
한나라당은 오전 최고.중진연석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노 대통령이 민생을 도외시한 채 정권 연장을 위한 전략만을 짜고 있다며 개헌논의 중단을 강력 촉구했다. 특히 의총에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결의문도 채택했다.
▲개헌제안 비난 = 강재섭(姜在涉) 대표는 의총에서 "지금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국가 안위와 국민 경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고 가슴 속에도 고통받는 민생에 대한 고뇌가 전혀 없다. 오직 선거와 정권연장 음모만 있다"며 "지금은 결코 개헌 논의를 할 때가 아닌 만큼 일절 개헌 논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형오(金炯旿) 원내대표는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은 헌법상 권한을 악용하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면서 "특히 대선 시기에 대선과 관련한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대선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개헌 제안 철회를 촉구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안상수(安商守) 의원은 4년 연임제 불가론을 한참 역설한 뒤 "개헌의 물꼬를 터주는 순간 영토조항, 남북연합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개헌문제까지 거론되므로 쿠데타, 반민족적 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기준(兪奇濬)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개헌을) 두 번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고 한 데 대해 논평을 내고 "국민을 허수아비 정도로 여기는 오만의 극치이자 국민이 반대하든 말든 내 갈 길만 가겠다는 대국민 협박성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또한 개헌 문제에 대한 당내 의견 분열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난히 `단합'을 강조했다.
강 대표는 "자꾸 다른 말이 들어가면 듣는 사람은 한나라당에 큰 문제가 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원들이 조금 맛이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분명한 메시지를 내 주면서 127석이 똘똘 뭉쳐 노 정권의 어떤 공작과 음모에도 단호히 대처할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의 내부 단합"이라며 "개헌 카드는 한나라당을 흔들려는 논리일 수 있으므로 단합하는 것이야 말로 개헌 음모를 분쇄하는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소장파 `이견' = `새정치 수요모임'을 중심으로 한 소장.중도개혁파 의원들은 개헌논의 자체를 막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의를 제기, 향후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특히 수요모임의 권오을(權五乙)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의원은 의총에서 한나라당이 개헌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준비중인 고진화(高鎭和) 의원은 개헌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자신의 `2단계 개헌론'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남 의원과 고 의원은 또한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등 당내 대권주자들도 과거 대통령 중임제 또는 연임제로의 개헌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 의원은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도록 집권하면 이런 식으로 개헌하겠다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고, 권 의원은 "노 대통령 임기내 개헌은 안된다는 지도부 생각에 공감한다"면서도 "개헌에 대해선 당이 일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유기준 대변인이 전했다.
원 의원은 "노 대통령 제안의 의도와 시기와 방식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지만 집권을 준비하는 수권 정당으로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헌 논의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의원은 "이 문제는 논의를 원천 봉쇄하거나 마치 소수의 사람이 결정하면 따라오라는 식으로 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당의 대응이 미숙하고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충분한 상황 파악을 통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도부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파 의원들은 개헌과 관련한 이견 노출을 막기 위해 방송 인터뷰 등을 사실상 금지한 당 지도부의 방침에도 반발했다. 원 의원과 고 의원 등은 이날 지도부의 주문을 따르지 않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에 대해 심재철(沈在哲) 홍보기획본부장은 의총에서 "처음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국민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절대 (방송출연) 원천봉쇄는 아니다"라며 지도부 방침에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고 의원은 즉석에서 발언권을 얻어 "민방위 교육장도 아닌데 의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하면 된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고, 남 의원도 "방송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나가서 입장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앞서 수요모임은 오전 모임을 갖고 노 대통령의 제안이 시기상 적절치 않지만 현재 당 지도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요모임은 국회와 당 내부에 공식 개헌논의 기구를 만들어 당장 개헌논의를 시작할 것을 지도부에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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