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4년 대통령 연임제로의 개헌을 제안키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12월9일 정기국회가 폐회된 이후 시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면서 준비작업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 본격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됐다는 게 이번 제안에 관여한 핵심 참모들의 전언이다.
`9일 오전 TV 생중계를 통한 대통령 특별담화'라는 시기와 형식도 사전 계획에 따라 일찌감치 지난 연말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은 이미 지난해 8월 참모들에게 개헌 문제와 관련, "그런 것도 생각해보라"고 미리 언질을 줬기 때문이라고 한 참모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이런 고민은 대선후보 때부터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으나 정치구조에 대한 구체적 고민은 연말에 시작됐다"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대통령은 당초 개헌문제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정기국회 때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했으나 여야간에 말만 있을 뿐 논의에 아무런 진전이 없자 직접 의견을 밝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완(李炳浣)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여름부터 올해로 접어들면서 나올 수 있는 그동안의 묵은 과제, 미래과제, 대통령 공약 사항들을 쭉 정리하라는 말씀이 있었다"면서 "정기국회에 많은 법안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기국회가 끝나는 무렵부터 집중적인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정기국회 종료와 동시에 개헌 제안을 준비하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청와대는 정태호(鄭泰浩) 정무팀장이 중심이 된 10여명의 참모들이 외국사례를 비롯한 관련 자료수집과 담화문 초안 작성에 들어가 지난 연말 실무 준비작업을 끝내고 '1월9일'로 D-데이를 정했다.
담화문 발표 직후 언론에 배포된 A4 용지 32쪽 분량의 '개헌 관련 대통령 담화 설명자료'도 연말께 대강의 내용이 정리됐고 그 시점에서 노 대통령은 한명숙(韓明淑) 총리와 회동하고 개헌 제안의 취지 등 결심의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완 실장도 "구체적 자료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 연말부터, 정기국회가 거의 종료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가 9일 아침 참모회의를 거쳐 노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 발표를 정무 파트를 중심으로 한 관련 참모 이외의 참모들에게 예고할 때까지 개헌 제안 계획은 청와대 비서실내에서도 철저한 보안에 부쳐졌다.
노 대통령이 이날 아침 주재한 참모회의에는 이병완 실장과 실무책임자인 정태호 팀장, 윤태영(尹太瀛) 연설기획비서관 등이 참석, 대국민담화 시점인 'H-아워'를 '오전 11시30분'으로 정하고 최종적으로 문안을 다듬었다.
노 대통령이 담화 발표에 앞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의 의견 수렴 등 내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2005년 7월 대연정 제안 당시의 실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연정에 관한 생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여당 고위 관계자들에게 연정의 필요성을 거론했다가 그 사실이 여당을 출처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제안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결국 뜻을 관철하지 못한 바 있다.
반면 이번에는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담화 계획을 각 방송사에 알리고 청와대 춘추관에서의 생중계를 요청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언론에 알려졌을 뿐 기획단계에서부터 보안이 지켜졌다.
물론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 안팎에선 지난 연말부터 "정초 노 대통령이 개헌 제의 등 모종의 결단을 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는 했으나 그동안 노 대통령이 개헌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고 보는 이가 많았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대다수 비서관들도 담화 발표 소식에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고, 여야 각 정당에서도 담화문에 담긴 내용이 뭘 지를 둘러싸고 '임기 단축' 등 추측이 난무하며 일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의제와 관련해 담화문을 발표한 적이 없다는 점도 청와대와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는 배경이 됐다.
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3월14일 대북송금 특검법안 처리결과에 대한 특별담화를 시작으로, 그해 3월 이라크전 발발, 2004년 탄핵무효 및 직무복귀, 6월 김선일씨 테러 관련, 2006년 4월 독도사태 등 한일관계와 관련해 담화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개헌 제안의 엄중함을 의식한 듯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담화 발표를 위해 청와대 춘추관을 찾을 때까지 일절 언론의 전화취재에 응하지 않으며 함구로 일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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