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접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개헌 방향 자체에는 긍정적이었으나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헌법소송 전문가인 이석연 변호사는 "4년 연임제 개헌이라는 방향 자체는 학계, 전문가, 여론, 정치권 등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개헌을 추진하려 했다면 정상적 정치일정상 작년 가을 정도가 적기였으며 이번 제안은 개헌으로 대선 판을 흔들려는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점에서 시기상 적절치 않다"며 "개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헌정사의 불행한 전철을 밟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포함한 헌법 개정에 대해 헌법학자와 국민 다수가 찬성할 것으로 본다. 정권의 `중간평가'의 성격이 있으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난번 개헌 후 20년이 흘렀고 현 정권의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정략적 의도가 숨겨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지금까지 5년 단임제를 해 온 것은 박정희 정권 이후 독재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이 컸기 때문"이라며 "절차적 민주화가 많이 진전돼 있다면 연임제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단임이면서도 임기가 너무 짧은 것은 문제이며 미국의 경우처럼 잘하는 대통령은 다시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금이 과연 개헌 논의를 꺼낼 때인가 하는 점은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지난 3차례의 5년제 대통령들은 모두 정권 말기로 갈수록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정 효율성이 떨어졌다"며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줄이고 동시에 국회의원 선거와 주기를 일치시켜 우리 사회의 정치 과잉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임기 말에 개헌론을 꺼낸 것은 임기 내에 한국 사회의 큰 틀을 바꾸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정치적으로 범여권의 단결을 노리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라며 "현 대통령 임기중 개헌이 야당의 반발로 힘들다면 다음 정권에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인적 의견을 밝힌 시민단체 관계자들 역시 개헌 방향에는 대체로 동의했으나 시기와 제안 의도에는 의구심을 표시했다.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책팀장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사회 및 경제 구조에 관한 개혁을 담은 근본적인 개헌안은 분명히 필요하므로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하지만 정략적 고려에 따른 개헌 제안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근본 개혁 방안 없이 권력구조 변경만을 담는 개헌 논의는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고 제대로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인해 추진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개헌 논의를 차기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선진화 국민회의 권태근 사무부총장은 "노 대통령 임기 만료를 1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의 합의는 물론 국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헌이 갖는 의미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이런식으로 급하게 추진이 되어서는 안 되며 차기 대선에서 후보들간의 공약으로 충분히 논의가 진행된 뒤 차기 정권에서나 추진되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김구부 자유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이번 제안은 정치판을 흔들려고 내놓은 술수이며 국민에게 불안감을 준다"며 "지금은 개헌 논의를 할 때가 아니며 다음 정권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대형 시민단체 상당수는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소식이 알려지자 공식 반응을 유보한 채 긴급 논의에 들어갔다.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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