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긴 뭐가 잘 돼”
요즘 장사 좀 되냐고 묻는 질문에 대뜸 역정부터 내는 김 씨. 그는 안산시 고잔역 앞 신축 건물에 새로 슈퍼마켓을 차렸다.
예전부터 식당, 건설업 여러 장사를 해 봤지만 요즘처럼 안 되던 때는 없었다며 “경기도 어렵지만 사람들이 큰 할인점으로만 가니 더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안 풀리니 이렇게 가다간 나라가 곧 망할지도 모르겠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대형 할인점들이 대도시와 중소 도시로 무차별적으로 진출하고, 대형 슈퍼마켓 사업까지 손을 대고 있다. ‘유통 공룡’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로 인해 중소 상인들은 고사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3년 265개 이던 할인점 숫자는 2004년 284개로 늘었고 체인화 편의점 숫자도 8,584개에서 9,802개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네 소규모 슈퍼마켓은 105,619개에서 103,298로 2천여 개 이상 문을 닫았다.
공룡이 무차별적으로 포식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 상공회의소는 지난 96년 유통시장이 개방된 이후 2004년 말까지 대형 할인점과 체인화 편의점 판매액은 각각 7.7배와 1.9배가 늘어난 반면, 슈퍼마켓이 19.4%, 구멍가게 등 기타 소매업은 12%가 줄었다고 밝혔다.
제과업계 역시 대기업들의 진출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자영제과점 수는 02년 10,537개에서 04년 8,719개로 2천여 개 가까이 줄어든 반면, 파리바케트나 뚜레쥬르등의 프랜차이점은 2,133개에서 2,490개로 늘어나 동네 제과점을 잠식하고 있다.
대한제과협회 정일석 사무총장은 “프랜차이즈점이 하나 들어서면 동네 제과점 대여섯 개는 문을 닫는다”고 실상을 전한 뒤 “프랜차이즈화 되는 건 좋으나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요즘 제과업계가 경기침체와 원재료비 상승 등으로 최근 2~3년 새 매출이 20~25%정도 줄었다”며 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해결할 대책을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밑지고 장사하는 사람 없다’그러나 이 말은 요즘 서점업계엔 전혀 안 맞는 말이다. 실제로 밑지고 장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는 온라인(인터넷 서점)이나, 대형매장이 들어서면서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정 행사기간 동안 대대적 할인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30~40%는 기본이요, 최고 80~90%까지도 싸게 판다. 이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서점에게 돌아간다.
인천에서 서점을 하는 김씨는 “20년간 서점에 종사하면서 지금처럼 후회스럽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을 지키며 정상적으로 살아온 우리가 폭리나 일삼는 ‘악덕업자’로 매도된다고 생각하니 쓴 웃음만 나온다”며 소규모 서점들은 온라인과 대형매장을 상대로 애당초 가격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과 같이 출혈경쟁을 하면 서점업계가 줄도산 하게 될 것”이라며 걱정스러워 했다.
실제로 전국의 서점수는 지난 95년 5,300여 개에 달했으나 해마다 감소해 05년 2,100여 개로 무려 3,000여 개 이상 문을 닫았다. 또한 서점역시 점점 대형화 되면서 중소서점들의 경영난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문화 관광부가 올 초 발표한 '도서정가제 평가 및 향후 방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도서구입을 하는 장소로 '시내 대형서점'이 40.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이 '인터넷 서점'(26.9%), '동네 소규모 서점'(13.7%) 순이다.
한국서점조합 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교육구조가 학생들이 책 읽을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 후 "도서대여점, 마트시장,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서점업계가 어려워 졌다"고 얘기했다. 또한 "출판사가 직접 영업을 하거나 도매, 직거래 등을 하는 유통구조상의 문제도 어려워진 이유"라며 업계의 실상을 전했다.
이 회장은 "도서정가제와 저작권법 보호가 정착되야 한다. 협회차원에서 대안으로 '서점학교 개설' '초·중고-서점연계 독서프로그램' '6개 광역시에 모델서점 개설' '서점신문발행으로 정보제공' '책 배달 서비스'등을 계획해 어려움을 뚫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