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강인준 기자 | 회전무대가 만들어내는 리듬 위로, 애니메이션의 ‘컷’이 무대의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원작의 유명 장면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비현실을 아날로그 장치로 설득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제작년 이 작품이 뮤지컬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본으로 향할까 고민할 정도로 원작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필자에게 이 공연은 하나의 ‘검증대’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20번 이상 봤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장면들이 과연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아날지(그 기대와 의심이 관람의 기준)이었다. 1차 티켓팅에 실패한 뒤 실망감이 남아 있던 와중, 우연히 남은 좌석을 발견해 극장으로 향했다.
막이 오르고 무심한 얼굴의 치히로(카와에이 리나 분)가 차 뒤편에 누워 있는 첫 이미지가 등장하자, 오케스트라 선율과 함께 공연명이 떠오르는 순간까지 관객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원작으로 연결된다.
‘재현’의 정확함 때문이라기보다, 무대가 원작의 정서를 단번에 호출해내는 방식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 첫 장면에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무대 전환의 중심에는 회전무대가 있다. 화면 편집 대신 공간이 회전하며 장면을 갈아 끼우는 방식은 관객이 ‘이동’을 눈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여기에 일본식 연(凧)을 활용한 장치가 더해지며, “날아감”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효과가 아니라 실재하는 물성으로 바뀐다. 유바바의 까마귀나 욕탕을 나서는 존재의 순간처럼,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동작들조차 연 장치로 통일감 있게 처리되면서 무대의 세계는 더 단단해진다.
음향은 원작의 정서를 붙잡는 접착제다. 원작의 음악적 결을 바탕으로 한 선율들이 촘촘히 채워지며, 무대가 낯선 공간이 아니라 ‘기억 속 세계’로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만든다. 그 결과 이 공연의 아날로그적 선택은 복고가 아니라, 원작이 가진 감정의 문법을 무대 언어로 확장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가마 할아범의 손이다. 이 캐릭터 표현은 끝까지 아날로그의 방식에 기대어 구현되며, 컷 하나하나를 손으로 그려온 원작의 제작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은 애니메이션을 흉내 내기보다, 원작이 지켜온 태도(손의 노동과 디테일의 집요함)를 무대 위에서 끝까지 밀어 붙인다.
그 집요함은 디테일에서 더 빛난다.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 놓치기 쉬운 재미 포인트들, 검정이들이 일하기 싫다며 나자빠지는 순간, 보와 까마귀가 변한 뒤 제니바의 집에서 굴레를 굴리는 장면 같은 것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다.
부모가 돼지로 변한 뒤 식당 주인이 파리채로 내리치는 짧은 컷처럼, ‘알아보는 사람만 웃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무대 위에 세워두는 태도는 원작 팬에게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결국 이 작품의 힘은 “똑같이 옮겼다”는 데 있지 않다. 회전무대와 연 장치, 그리고 촘촘한 아날로그 디테일이 합쳐져 원작의 숨결을 무대 위에서 새롭게 체감하게 만든다.
원작을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살아 움직이는 장면의 즐거움을, 무대 기술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는 ‘손으로 구현한 마법’의 쾌감을 선물한다. 지브리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이 뮤지컬은 연초 꼭 챙겨 받아야 할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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