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쥐죽은 듯 엎드려있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정국의 핵심 이슈로 태블릿이 거론되자 24일 중앙일보를 통해 실명으로 튀어나왔다. 김 전 검찰총장이 퇴임 이후 정국 현안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탄핵 당시 검찰을 이끌었던 그는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배제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조치에 대해 “유신 때 야당 총재에 대해 직무를 정지한 것을 연상케한다”고 평했다.
또 “징계 청구 사유로 제시된 것이 합리적이고 상당한지 의문이 든다”며 “형사 범죄로 기소된 정진웅 차장검사에 대해서도 직무배제를 하지 않았는데 총장에 대해 직무집행을 정지한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밝혔다.
태블릿PC가 거론되자 전직 총장을 비롯 일단의 검사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서는 현상은, 검찰 조직에게 있어 태블릿PC 조작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태블릿PC 조작은 김수남의 명령으로 구성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휘하 특별수사본부 검사들로부터 시작됐다.
2016년 10월 29일 특수본의 김용제 검사는 태블릿PC의 개통자이자 요금납부자이며 실사용자인 김한수를 불러 최서원의 태블릿으로 만들기 위한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에 본지는 JTBC 첫보도 이후 현재 재판 상황까지 검찰의 태블릿 조작 사건과 직간접 연루된 김수남 이하 검사와 기타 법조인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시간 순이다.
2016년
10월 24일, JTBC는 태블릿PC 특집방송을 내보낸다. 비선실세 최서원(최순실)이 사용한 태블릿PC를 입수했으며 여기에는 수백건의 국정기밀 자료가 들어있다는 초대형 특종이었다.
이때부터 홍석현의 JTBC와 중앙일보는 탄핵 정국을 주도하며 검찰‧특검의 수사 상황을 가장 앞서 단독 보도했다. 당시엔 검찰도 언론도 정당도 아무도 ‘피의자공표죄’를 신경 쓰지 않았다.
10월 27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최순실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 구성했다. 특수본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특수1부를 추가, 12명 가량으로 꾸렸다.
검찰은 24일부터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을 잇따라 소환해 조사했다. 두 사람은 탄핵 정국 내내 최서원에게 불리한 진술‧증언을 했다.
10월 27일, 특수본 최재순 검사는 노승일에게 해외에 있는 최서원에 전화를 걸도록 했다. 노승일은 통화를 녹취했다. JTBC는 이 통화녹취록을 날조, 여론선동에 활용했다. JTBC는 “태블릿은 말이 안 된다”며 결백을 주장한 최서원의 발언을 왜곡‧날조, “최순실이 태블릿을 조작품으로 몰라고 지시했다”며 여론을 선동했다.
10월 29일, 특수본 김용제 검사는 김한수 전 청와대행정관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이날 김용제 검사는 검찰에서 확인해보니 “태블릿 요금은 ㈜마레이컴퍼니에서 계속 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질문했고, 김한수는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최서원 태블릿으로 바꿔치기 위한 밑그림, ‘태블릿 요금 법인카드 자동이체 알리바이’의 등장이다. 이 알리바이는 거짓이다. SKT와 하나카드의 사실조회 결과, 김한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신용카드로 모든 태블릿 요금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31, 최서원이 자진 귀국해 검찰에 출석했다. 이날부터 11월 18일까지 고형곤, 한웅재, 신자용, 김민형, 최영아 검사가 번갈아 가며 12회 최서원을 조사한다. 이들은 거의 매일 최 씨를 소환해, 오전부터 심야까지 조사하였으며, 변호인을 따돌리기 위해 면담 형식으로 위장조사를 하거나, 현장에서 변호사의 조언을 가로막는 등 초법적인 행태를 보였다.
고형곤 검사는 태블릿PC 실물을 보여달라는 최서원과 이경재 변호사에게 “태블릿은 포렌식 중이어서 보여주기 어렵다”는 거짓말을 했다. 태블릿은 이미 10월 25일 포렌식을 마친 뒤였다. 고형곤 검사는 이후 법정에서도 실물을 보여달라는 변호인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신자용 검사는 최서원에게 “다 불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고, 당신은 물론 딸 정유라와 당신 손자도 영원히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이다”고 협박했다.
한웅재, 최영아 검사는 “조사할 필요도 없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라. 증거가 충분하다”며 강압적 언사로 최 씨를 신문했다.
11월 30일, 박영수 특검이 임명됐다.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됐다. 김수남의 검찰 특수본에서 공을 세운 한동훈, 신자용, 고형곤, 문지석, 최재순 등이 수사팀에 승선했다. 모두 122명 매머드급 규모로 구성됐다.
12월 7일, 고영태 전 K스포츠재단 이사가 국회청문회에 출석했다. 고영태는 “JTBC 태블릿은 내 것이 아니다”, “최서원은 태블릿을 쓸 줄 모른다”고 증언했다. 함께 출석한 최서원의 외조카 장시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도 “최서원이 태블릿을 쓰는 걸 본 적 없다”고 증언했다. 여론이 술렁였다.
12월 8일, JTBC는 긴급 해명방송을 했다. 주로 고영태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내용이었다. “고영태가 JTBC 기자를 만난 적도 없다고 한다”며 고영태가 하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지어낸 뒤,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청문회에서 고영태에게 태블릿에 관해 꼬치꼬치 캐물었던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누명을 쓰고 국조특위에서 퇴출당했다.
12월 11일, 특수본의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등장, 기자회견을 열고 “태블릿은 최서원의 것이 맞다”, “태블릿에서는 정호성이 보낸 문자 메시지도 나왔다”, “독일에서 최씨가 자기 회사 직원에게 태블릿pc로 ‘잘 도착했어’ 문자를 보냈다”고 브리핑했다. 모두 거짓. 태블릿에는 정호성의 문자가 없다. 독일에서 보냈다는 문자(카톡)의 수신자는 최서원의 직원이 아니라 당시까지 최서원과 일면식도 없는 김한수였다. 그러나 브리핑의 주인공이 무려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였다. 이 브리핑으로 태블릿 의혹을 제기하던 언론은 자취를 감췄다. 이후 태블릿 조작설은 가짜뉴스로 취급당했다.
12월 21일, 이창재 법무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하태경 의원으로부터 태블릿PC에 관한 질문을 받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본이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팀은 최순실이 머무른 장소에서 태블릿PC가 사용되었던 흔적이 일치하고, 최순실의 사적인 가족사진이 태블릿PC에 있는 점을 봐서 본인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나 현재는 최서원 독일 동선과 가족사진은 모두 최서원이 아닌 김한수의 사용 증거로 밝혀졌다. 법무부 차관이 당시에도 여러 의혹이 있었음에도 국회에서 매우 단정적으로 ‘태블릿은 최서원 것’으로 확정해버린 장면이었다. 이 차관은 서울북부지검 검사장 출신이다.
12월 23일, 이창재 차관은 법무장관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탄핵심판청구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당시 언론들은 혹여 법무부가 탄핵 반대 입장을 표명할까 잔뜩 긴장했다. 기우였다. 법무부는 “(정치적으로) 중립적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다”고 전제한 뒤, 결론적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는 국회의 발의 및 의결요건을 충족하고, 헌법재판소에 적법한 소추의결서 정본이 제출됨으로써 탄핵 심판의 형식적 적법요건은 일응 갖추었다고 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가 탄핵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2017년
1월 4일, 특검 김종우 검사가 김한수를 다시 불러 ‘태블릿요금 법인 자동이체 알리바이’를 보완했다. 김종우 검사는 “검찰에서 확인했다”면서, 태블릿 요금은 2012년 개통 후 2013년 1월까지는 마레이컴퍼니에서 내고, 2월부터 현재까지는 김한수가 낸 것으로 조서를 정리했다. 김종우 검사는 증거를 첨부하면서 김한수의 2012년 요금납부내역을 제출하지 않고 은폐했다.
1월 11일, 이규철 특검 대변인이 최순실이 사용한 또다른 태블릿이라며 ‘장시호 제출 태블릿PC’를 들고 나왔다. 이규철은 “최 씨가 사용한 이 태블릿PC의 잠금패턴은 L자이며, 최 씨의 휴대전화, JTBC 보도 태블릿도 전부 L자 패턴이므로 JTBC가 보도한 태블릿은 최서원 것이 맞다”고 발표했다. 역시 거짓말. JTBC 태블릿의 잠금패턴 설정 시점은 JTBC가 입수한 이후다. 특히, 장시호 태블릿의 출시 일자는 최서원이 사용했다는 날짜보다 한 달이나 늦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무려 ‘특검’의 공식발표이기에,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다.
7월 6일, 민영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더블루K 사무실에서 건물 경비원의 허락을 받고 태블릿PC를 들고 나왔다”는 JTBC 보도를 근거로, JTBC 심수미 또는 성명불상 기자를 특수절도죄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도태우 변호사는 즉각 항고했다. 경비원은 태블릿PC의 주인도, ‘처분권자(소유자 또는 점유자)’도 아니다. 서울고검은 2018년 3월 19일 재기수사명령을 내렸으나, 이후 현재까지 아무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9월 29일, 최서원 재판에서 김한수를 불러 증인신문을 했다. 이날 강상묵, 김종우 검사는 ‘2012년 태블릿요금은 마레이컴퍼니 법인에서 냈다’, ‘이춘상 보좌관에서 준 이후 태블릿에 관심 두지 않았다’, ‘최서원이 가방에 흰색 태블릿을 넣는 것 봤다’, ‘최서원이 전화해 태블릿은 네가 만들어 주었다면서라고 말했다’ 등 김한수의 위증을 교사했다.
이로써, “김한수는 태블릿을 개통한 이후 죽은 이춘상 보좌관에게 전달했고, 이후 어디 있는지 요금을 누가 내는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서원이 쓰고 있었다”는 강력한 알리바이가 완성됐다. 이 알리바이는 3년만에 거짓으로 밝혀졌다. 김한수 조사에 연루된 강상묵, 김종우, 김용제 검사는 모해위증교사, 증거인멸,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죄 등으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9월경, 검찰의 2016년 10월 25일자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가 공개됐다. 최서원 재판을 통해 유출된 것이다. 미디어워치와 월간조선이 심층 분석기사를 썼다. 30~40대 남성 가장, 대선캠프 직원, 청와대 행정관의 사용 흔적이 역력했다.
10월 8일,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SNS본부에서 간사로 일한 신혜원 씨가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는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최서원 재판부에서 국과수에 태블릿PC 재감정을 맡겼다.
10월 23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감사에 출석, 태블릿PC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정호성 씨 재판에서는 본인이 증거 동의를 했고요. 그리고 그 태블릿이 최순실 씨가 쓰던 태블릿이 맞다, 본인이 인정하면서 증거 동의를 그분이 하셨고, 적법하게 증거가 채택됐다”고 위증을 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최서원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일부 보낸 적이 있다고 인정했을 뿐. 정호성은 검찰 조사나 증인신문에서 자신은 태블릿을 본 적도 없고, 최서원이 태블릿을 쓰는 걸 본 적도 없다고 일관되게 밝혀왔다.
12월 30일, 윤석열 사단의 홍성준 서울중앙지검 검사 드디어 태블릿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JTBC와 변희재 쌍방이 고소장을 제출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홍 검사는 태블릿과 관련 입수경위와 실사용자를 수사해달라는 요구를 묵살했다. 변 고문과 미디어워치는 ‘손석희의 저주’ 출간과 JTBC 집회 등으로 태블릿PC 진실 투쟁을 계속했다.
2018년
5월 23일, 태블릿PC 포렌식을 진행한 나기현 국과수 연구관이 최서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나기현 연구관은 “국과수는 태블릿이 최서원 것이라 확정한 적 없다” 증언했다. 이 증언을 모든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했다.
5월 24일, 나기현 증언 다음날, 홍성준 검사가 변희재 본지 고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5월 30일, 우리법연구회 출신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가 변희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6월 18일, 홍성준 검사가 변희재 고문과 미디어워치 편집국 기자들을 전원 기소했다.
12월 5일, 홍성준 검사는 변희재 5년을 포함해 피고인 4명에게 도합 11년을 구형했다.
12월 10일, 우리법연구회 출신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13부 박주영 부장판사가 변희재 고문 2년, 황의원 대표 1년, 이우희 기자 6개월(집유) 징역형을 선고했다. 막내기자 벌금형까지 전원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무죄 취지로 즉각 항소했다.
2019년
2월, 우리법연구회 출신 정재헌 부장판사가 포함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에 태블릿 재판 항소심이 배정됐다. 영장실질심사부터 3회 연속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에게 태블릿 사건이 배당된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변희재 측이 태블릿PC 계약서 위조 정황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한 여러 건의 사실조회를 SKT에 신청한 시점에, 돌연 법복을 벗고 SKT 법무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6월 4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 중앙일보와 단독인터뷰를 갖고 “저는 당연히 태블릿PC 1심 판결을 존중합니다. 국민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야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던 데 대한 JTBC·중앙일보의 집요한 공격에 굴복, 사주 홍석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도게자(土下座、どげざ)’를 한 격이었다. 황 전 국무총리는 부산고검 검사장 출신이다.
2020년
3월, SKT와 하나카드 사실조회 회신을 통해 김한수가 직접 태블릿PC 요금을 납부한 내역이 나왔다. 김한수는 밀린요금을 개인 신용카드로 납부한 뒤, 이용정지가 해제되자마자 직접 태블릿을 사용했다. 검찰의 손에서 태블릿PC 속 카카오톡 채팅방 415개가 삭제된 기록도 발견됐다.
6월 18일, 검찰 포렌식을 담당했던 송지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제2부 디지털포렌식센터(DFC) 수사관이 증인으로 출석,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 예규를 모조리 위반했다고 자백했다. 송지안은 “이름도 얼굴도 성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검사님이 보안상 필요하다고 하여 대검예규를 모두 지키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포렌식을 하고 근거도 ‘디지털수사통합업무관리시스템’에 남기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8월 14일, 나하나 서울중앙지검 검사, 태블릿 관련 김한수 위증 교사·증거 인멸·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죄등 혐의로 고발당한 검사3인(강상묵, 김종우, 김용제)을 피고발인 소환 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분.
8월 26일, 항소심 재판부는 “신청인에게 태블릿 이미징파일 열람·복사를 허가하라”고 검찰에 명령했다. 그러자 홍성준 직관검사와 장욱환 공판검사는 이미징파일 5개 중 4개를 분실했다고 의견서를 제출한 뒤, 법원 명령에 응하지 않고 있다.
11월 5일,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법원에 서울중앙지검 포렌식팀에 대한 직권 압수수색 요청했고, 법원은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