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국정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대해 검찰이 5일 발표한 중간 수사결과가 예상치를 벗어나지 못하자 언론이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은 문건에 담긴 ‘박지만 미행설’ ‘십상시 비밀 회동’ 등이 모두 허위이며 이는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들의 출세와 입지 강화를 위한 조작극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논란의 발단이 된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 의혹은 전혀 건드리지도 못했다. 문건에 담긴 표면적 내용에 관한 사실여부만 결론 냈을 뿐, 구체적인 증언에 따른 수사는 하지 않았다.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이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문체부 차관의 민원을 이재만 비서관이 V(대통령을 지칭하는 듯)를 움직여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 비서관의 인사 개입을 폭로한 것에 대해서도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작년 12월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던 대로 박 대통령의 발언대로 결론이 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예상대로 결론나자 언론은 일제히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와대의 근본적 쇄신과 의혹해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시선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향하고 있는 데도 검찰은 손가락이 멀쩡하다는 결론만 냄으로써 불신을 더욱 키운 셈이다.
예고된 검찰 수사결과, 장문의 사설로 청와대 조준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 <檢 "정윤회 문건은 허위",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를 통해 “검찰은 ‘현재로선 정씨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 범죄 혐의를 추단(推斷)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씨에게 완벽한 면죄부(免罪符)를 주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은 문서 유출에 대해서는 '국기 문란 행위'라며 엄벌을 강조했고, 청와대는 일찍부터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을 '주범'으로 지목했다.”며 “이날 검찰 발표는 박 대통령이 그어준 선(線)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때마다 나타났던 검찰의 무기력한 모습이 이번에도 재현됐다. 국민의 60% 이상은 여론조사에서 진작에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검찰 말대로 '정윤회 문건' 내용 자체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며 “그러나 그것만으로 청와대가 사건의 본질인 정씨와 문고리 3인방,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농단 의혹이 해소됐다고 믿는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誤算)이다. 문건이 불거져 나온 뒤 야당도, 언론도 아닌 현 정부가 임명한 장관, 청와대 비서관, 기무사령관이 잇따라 제기한 비선 관련 의혹은 하나도 해소된 게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남은 길은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뿐”이라며, 이번 문건 파동을 통해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 등 이들은 “오히려 권력 암투의 당사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국민은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 간 권력 암투의 심각성이 보통 수준을 넘는다는 것을 짐작하게 됐다.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면서 책임 있는 인사들을 감싸고돈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위험 수준에 도달했고, 좀처럼 깨지지 않던 고정 지지층마저도 흔들리는 조짐이다. 박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다수 국민의 신뢰를 잃어 '소수파 정권'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있다.”며 “박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이 정권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결정적 고비임을 깨닫고 누구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 “국정 개입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중앙일보 “검찰의 졸작 수사 국민 의식해야”
동아일보는 같은 날 <‘박지만 비선’만 밝혀내고 문 닫은 청와대 문건 수사>란 제하의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대로 결론이 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수사에서 국정 개입 의혹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며 “십상시 모임이나 미행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고 해서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문고리 3인방 가운데 이 비서관만 소환 조사하고 정호성 안봉근 제1, 2부속비서관은 서면 조사로 마무리했다.”며 “경찰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있는 안 비서관에 대해 미온적인 조사에 그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부속실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힘을 실어 준 것이 ‘정윤회 문건’ 사태를 촉발한 한 요인이다. 박 대통령은 ‘잔심부름’ 정도를 시켰다고 했지만 여권 내부에서조차 파행 인사로 문제가 될 때마다 3인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면서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운영의 쇄신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의 사설도 대동소이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찌라시에 집착한 수사로 국민들 납득시킬 수 있나>란 제하의 사설을 통해 검찰의 수사가 미진했다며 “국민의 입장에선 문건 유출 등 청와대 ‘보안 사고’에 못지않게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도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검찰의 ‘반쪽’ 수사가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졸작(拙作)’으로 평가받으면서 야당에선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문건 유출에만 집착한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며 “검찰은 권력과 맞섰을 때 존재 가치가 있었으며,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용기 있고 공평한 검사’를 내세웠던 검사 선서문을 되새기며 검찰은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국민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국정농단세력 면죄부만 준 검찰, 국정조사·특검 필요”
한편 이날 좌파언론들은 검찰 수사 결과에 강하게 반발하며 특검을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박 대통령 찌라시 지침 그대로 반발짝도 안나간 검찰”이라며 “‘정윤회 보고서는 조응천, 박관천의 풍문 짜집기’ 발표로 제대로 수사도 않고 정윤회, 청와대 3인방 의혹 털어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런 상태에서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판명났으니 논란을 끝내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선과 측근으로 얽힌 청와대를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도저히 믿기 힘든 마당에 더 큰 의심과 의혹을 키우기 전에 특검과 국정조사로 제대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해 “달을 보라 하니 손가락만 본다더니, 검찰이 딱 그 모양”이라며 “국민이 궁금해하는 비선개입 의혹은 외면하고 문건 유출에만 집중했다. 그러니 국민의 64%가 검찰 수사를 불신하는(12월12~13일 한길리서치 조사)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윤회씨를 고발한 사건 등을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간 수사결과가 사실상의 최종 수사결과임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며 “이제는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통해 비선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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