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민영방송에까지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하자 언론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월 국회처리가 무산된 가운데 이 개정안이 방송장악을 위한 좌파와 야당의 꼼수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KBS 이사를 지낸 선문대 황근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8일 인터넷 매체 ‘미디어펜’에 기고한 글을 통해 “신문사의 편집권과 마찬가지로 방송사의 편성권은 방송사의 고유한 권한이고, 모든 방송사들은 편성책임자를 선정해 어떤 내·외부의 간섭으로부터도 편성권을 수호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황 교수는 <방송사 노사편성위 구성, 야당 좌파의 방송장악 꼼수>란 제목의 글에서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두도록 한 방송법이 왜 개악법인지 개정안에 담긴 심각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황 교수는 “법적으로 볼 때, 편성위원회는 언론의 자유 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자유민주주의의 골간을 흔드는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위헌여부를 떠나 더 큰 문제는 편성위원회가 방송사의 경영권을 침해하고 지금 KBS, MBC 같은 ‘주인 없는 방송사(?)’를 만드는 악의적 독소규정이라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KBS MBC 같은 공영방송사들은 노무현정부 시절 방송법 개정을 통해 편성규약과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도 이 규정이 방송사의 경영권과 편성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공영방송이라는 이유로 밀어부친 결과”라며 “물론 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유진영의 저항이 미약했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야당과 진보세력이 민간방송에까지 방송편성위원회 확대한 이유는 KBS·MBC 장악 성공 사례 때문
계속해서 황 교수는 야당과 이른바 진보세력이 방송편성위원회에 집착하는 이유를 “노조를 통해 KBS와 MBC 등 주요 지상파방송사들의 경영권을 장악했던 달콤한 기억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방송은 보수진영이 사실상 안정적으로 지배해왔다”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언론민주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여러 제도개선을 통해 방송영역을 장악하고자 시도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를 시작으로 방송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른바 방송민주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노사가 합의해서 운영하는 방송편성위원회와 편성규약”이라며 “그런데 외형적으로는 편성이라는 단순한 내용인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방송에서 편성 영역이 가진 중요한 의미를 설명한 뒤 “편성은 방송사가 제작한 생산물(product)인 프로그램들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편성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의 모든 제작과정이나 요소들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편성위원회는 방송사의 조직, 인력, 재원, 기술 등 모든 영역에 대해 포괄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실상 경영위원회처럼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편성위원회는 종사자를 대표하는 노조가 실질적으로 방송의 모든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라 할 수 있다”며 “실제 이미 편성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KBS만 보더라도, 편성위원회에서 제기하는 안건들은 – 여기서 제기되는 안건들은 대부분 사측이 아니라 노조측이다 –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의 문제를 넘어 이를 빌미삼아 사장 및 임원 퇴출과 같은 정치적 쟁점화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편성에 노조를 참여시키는 편성위원회가 결국 인사권 등 경영에 개입할 빌미를 주고 결국 정치쟁점화까지 나아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진보좌파가 방송장악 가능한 건 편성위원회 혹은 공정방송위원회 때문
황 교수는 이어 “더구나 두 개의 노조를 가지고 있는 KBS의 경우에는 심하게 표현하면 편성위원회 또 비슷한 성격의 ‘공정방송위원회’ 같은 곳에서 노사간에 소모전을 치르다 지치기 마련”이라며 “물론 이같이 지루한 협상에서 실질적 권한이나 책임성이 약한 사측 대표들이 고도의 협상전술을 구사하는 노조대표를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0년 만에 되찾았다는 우파 이명박 정부나 현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주요 지상파방송사는 여전히 진보및 좌파진영이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그 예로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그는 “실제로 이승만, 박정희 같은 전직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는 노조 측이 문제 제기해 방송에 큰 어려움을 겪거나 결국 좌절됐지만, 인민해방군가 작곡가인 정율성이 국민적 영웅으로 묘사된 말도 안 되는 특집 다큐멘터리가 버젓이 방송되고 있다”며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일부 시사교양프로그램들은 사측에서 아무런 관여조차 하지 못하거나 결국 노조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이런 이유 등으로 “결과적으로 편성위원회 설치의무화를 모든 민간방송사에도 확대하는 개정안은 방송사의 경영권 침해 문제를 넘어 노조를 통한 야당과 진보진영의 언론장악 의도와 절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고 강력 질타했다.
불순한 의도의 방송법 개정안 덜렁 받아준 현정부의 미숙함과 비전문성 반성해야
황 교수는 그러한 편성위원회에 담긴 방송장악 의도를 간과하고 야당에 끌려간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KBS이사회 야당 지분 확대, 사장선출 특별다수제 도입과 같은 외형적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야당의 요구를 막기 위해, 겉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편성위원회 확대요구를 수용한 것은 현재 정부·여당의 전문성과 정치력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황 교수는 “재차 강조하지만 편성위원회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집요하게 추진해 온 – 특히 우파정부 집권이후 더 강렬해진 - 진보세력의 방송장악 의지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라며 “그동안 언론노조를 통한 방송의 정치 지형화, 방송사 상·하 위계질서를 붕괴시킨 팀제 도입, 정연주 사장시절 이루어진 진보 좌파 언론사출신 특채와 함께 편성위원회는 핵심 전략 중에 하나인 것”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개정을 통해 편성위원회를 구성을 의무화 한 후에 보수적 성향의 종합편성채널 등에 진보 좌파 성향의 노조를 구축해 경영권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불순한 의도의 편성위원회 관련 방송법 개정안을 모든 방송사에 확대하는 야당의 시도를 선뜻 받아들인 현 정부 역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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