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전부터 논란을 일으킨 KBS 추적60분의 ‘서울시 공무원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이 지난 토요일 밤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날 방송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국정원은 믿을 수 없다’였다. 제작진은 국정원이 제시한 증거들을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반박했고, 더 나아가 시청자로 하여금 국정원이 이 사건을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갖게끔 유도한 흔적도 묻어나왔다. 방송 초반 시작부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보수일간지와 종편방송들의 모습을 캡처한 사진을 깔면서 ‘보수언론과 국정원의 대대적인 간첩몰이’란 이미지를 주려고 애쓴 정성(?)도 느껴졌다. 이러한 시각과 의도는 사건을 냉철히 추적하는 공영방송의 태도가 아니라 국정원에 용공조작 이미지를 덧씌워야만 하는 세력들의 요구를 철저히 반영한 듯한 것이었다. 방송 전체가 국정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만 골몰할 뿐, 애초 국정원이 왜 북한 화교 유우성을 간첩으로 지목했는지에 대해선 단 1초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유우성의 이모와 이모부, 친부와 친구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우성의 ‘간첩혐의’에 대한 국정원의 증거들을 반박했다. 국정원의 추가 증거인 북한 회령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진도 유우성의 노트북에서 동일한 작업으로 복구해 이미지 파일의 디지털 내역을 토대로 반박했으며, 추가로 세 장의 이미지 파일도 함께 공개했다. 이런 증거들을 근거로 국정원의 증거와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 후에도 여전히 유우성의 실체에 대한 의혹은 남는다. 일반 국민이 유우성 남매에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의문점을 제작진이 전혀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유우성과 그 동생이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 신분임을 감추고 왜 ‘탈북자’로 위장했는지에 대한 기본적 의문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수입이나 탈북자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외에 이들이 탈북자로 위장한 이유를 추적하지 않았다.
추적60분의 ‘감성팔이’ 보도와 유우성 남매 및 아버지 친척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
또 다른 의문도 있다. 유우성이 자신과 통화 중 들이닥친 북한 보위부로 인해 어머니가 숨졌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방송을 보면 유우성이 “저희 어머니가 저하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북한 보위부 탐지에 걸려서 놀라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유우성은 마치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자세한 사망경위를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그가 이 내용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를 포섭한 북측이 얘기해 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중국 친척이 전해준 것인가? 그렇다면 친척들은 이 내용을 누구에게 들은 것인가? 어쨌거나 북한 보위부가 통화 현장을 급습했다는 건 이들이 오래전부터 감시 대상이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화교신분에서 ‘탈북자’로 위장에 성공한 유우성이 대한민국 심장부인 서울시의 공무원으로까지 신분 상승이 됐다면 유우성은 북한이 볼 때 공작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 북한에 살고 있는 유우성의 가족을 ‘인질’로 활용해 얼마든지 유우성을 회유·포섭·협박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추적60분 제작진은 유우성 모자 통화 중 북한 보위부의 급습 사실과 이를 고백하는 유우성의 눈물을 시청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감성팔이에 이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의혹과 심증을 더욱 굳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방송에 따르면 유씨 가족은 2011년 7월 북한에 살던 집을 팔고 중국으로 완전히 다 이주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2006년 5월 남한으로 탈북한 유우성과의 통화 현장을 급습했던 북한 보위부가 유우성의 가족에 대한 수사나 방해, 감시 없이 순순히 중국으로의 이주를 허락했겠냐는 것이다. 북한 보위부의 묵인이나 허락 없이 이루어졌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 창춘에 40평 남짓 크기로 보이는 아파트를 장만한 유우성 친부의 재산형성 과정도 의혹 대상이다. 단지 남한에 있는 아들 유우성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우성 가족은 북한에서 먹고 살기 빠듯한 가난한 살림살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을 팔고 중국에 아파트를 장만하는데 금전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 과정에서 북측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는지 이 점도 밝혀내야 한다. 유우성 친부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 특정 시기 이후 갑자기 윤택해진 것은 아닌지 정밀한 조사·취재가 필요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여러 언론이 취재 보도했듯 유우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탈북한 사람이다. 유우성의 친부가 중국에 아파트를 장만할 만큼 본래부터 여유로웠다면 그런 아버지를 두고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북한산 도자기, 도라지 등을 내다팔 정도로 생계곤란을 겪었던 유우성의 처지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유우성 가족의 미심쩍은 중국 이주, 그리고 재산형성, 그리고 5년전 유우성의 탈북과 남한행을 탐지해 수사하고도 아무런 제지없이 유우성의 가족이 중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한 북한 당국의 처리 등 여러 정황들을 보면 수상쩍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유우성과 여동생의 위장 탈북과 어머니 죽음 뒤에 그 무엇이, 그 누가 존재한다는 의구심을 지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북한 보위부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유우성이 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생각에 북측 회유와 협박에 순순히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추적60분은 이런 점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유우성이 간첩혐의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일은 탈북자 명단을 여동생을 통해 북에 넘겼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추적60분은 ‘강요와 회유에 의한 여동생의 허위자백’에 초점을 맞춰 여동생이 자료를 담은 USB(메모리스틱)를 구입했다는 판매점을 찾아 판매 내역도 없고 판매 행위 자체도 없었다는 보도를 함으로써 국정원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물론 방송만을 놓고 보면 제작진은 국정원 주장의 논리적 빈틈을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월간조선 등 기존 언론이 취재한 내용을 보면 유우성에게 신변 내용을 알려준 후 가족과 연락이 끊기거나 북한 당국에 가족들이 적발돼 처벌받았다는 다수의 탈북자들 증언이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의 증언이 증거가 될 순 없지만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는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방송은 여동생이 국정원 강요 때문에 증언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허위자백’을 한 것이었는지는 증명하지 못했다. 여동생이 꾸며낸 얘기였다면 판매처와 판매행위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여동생 자백을 근거로 한 국정원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국정원이 차후 추가로 증명해야 할 부분이지만, 추적60분 제작진 역시 여동생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신분을 위장하고 탈·불법 행위를 일삼던 자들의 증언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고 오히려 이들을 수사하는 기관이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의심하고 보도하는 것은 언론방송으로서 기본을 잊은 것이고, 제작의도만 의심하게 할 뿐이다.
국정원의 이석기 수사 ‘물타기’ 하려는 의혹 지울 수 없는 추적60분
제작진은 탈북자 명단과 관련해 만명의 탈북자가 아니라 겨우 170여명의 명단이었고, 그것도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교육생의 장학금 지급을 위한 자료였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만명이든 170명이든 단 1명이든 탈북자 명단이 북한에 넘어간다면 그들의 생사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 제작진은 모 관련 단체의 인사가 주민번호를 공개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아는 주소와 전화번호만 오픈한 게 뭐가 위험하냐고 말한 것으로 명단 유출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생사 갈림길에서 북한을 탈출해 어렵사리 남한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현재도 북한은 그들을 변절자, 민족의 배신자로 규정해 그들의 가족을 강제노역을 시키며 본보기식 처형을 일삼고 있다. 그런 170여명의 명단을 국정원 주장대로 북에 넘겼다면 유우성은 그들의 안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유우성과 그 가족에 관한 풀리지 않는 여러 의혹, 유우성 주변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보면 국정원은 유우성을 합리적 의심에 따라 충분히 수사할만한 하다. 오히려 이런 의문점이 있는데도 수사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직무유기다.
정전6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는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폭침사건, 서해교전 등에서 보듯 여전히 북한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내란음모를 획책했다는 혐의를 받고, 국가를 전복하겠다는 혁명조직이 만들어지고 있으며(그것이 프로페셔널하든 아마추어적이든) 반국가단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안보와 국가정체성을 말하면 유행에 뒤떨어진 시대착오자나 된 듯 선동하는 겉 멋든 가짜 허위 지식인들이 판을 치고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을 일부 잘못을 빌미로 쓸어버리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우성 남매 사건을 일방적 입장에서 들추어 사실상 100만 촛불집회를 선동한 KBS 추적60분 제작진의 의도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석기 사태 역시 국정원이 ‘무리한 수사’ ‘용공조작’을 감행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시점에서 이런 편파방송을 만들어 내보낼 수 있느냐는 얘기다.
언론노조 세력 선동에 떠밀려 부실·편파방송 내보낸 KBS 길환영 사장이 책임져야
얼마 전 KBS TV비평의 현상윤 PD가 시위현장에 나와 대중 앞에서 “정권을 쓸어버리자”며 입에 담기조차 힘들 욕설을 뱉은 일이 큰 논란이 됐다. 그 연장선상에서 KBS 추적60분도 국정원 타도 선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공영방송이라면 냉철한 태도로 올바른 취재를 통해 팩트에 접근해 시청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방송에서 추적60분 제작진은 전혀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국정원을 용공조작이나 하려는 한심한 집단으로 낙인찍을 수 있는 의혹만 제기했을 뿐이다. 제작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을 냉철히 추적한 게 아니라 국정원 흔들기 의도만 열심히 드러냈을 뿐이다.
무엇보다 추적60분 유우성 남매 간첩 의혹 사건 방송편은 언론노조 KBS본부의 입맛대로 제작돼 방송됐다는 점에서 현재 KBS가 제대로 돌아가는 지 국민적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 일부를 수정해 방송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제작진의 편파적 의도까지는 감추진 못했다. 길환영 사장이 정상적으로 KBS를 경영하고 있다면, 단지 일부 내용을 수정할 게 아니라 언급한 유우성 남매에 대한 반대측 의혹에 대해서도 추가로 취재해 방송됐어야 했다. 그래야 공영방송다운 태도이고 공정성을 획득한 시사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길환영 사장은 언론노조의 선동과 목소리 큰 일부 좌파세력 주장에 떠밀려 유우성 에 관한 상식적 의혹조차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는 허술한 방송을 허겁지겁 내보내고야 말았다. 길환영 사장의 철학과 경영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유우성 간첩 혐의 사건을 다룬 추적60분 방송은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 2탄이 나와야 한다. 그 내용은 당연히 유우성 남매에 대한 국민적 의혹과 특히 왕재산 사건 등 간첩사건 마다 끼어드는 민변과 접촉한 후 유우성의 여동생이 왜 돌변하게 됐는지 등에 대한 내용을 철저히 추적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게 시청료를 납부하는 국민에 대한 KBS의 최소한의 예의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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