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의 투신 퍼포먼스를 찍던 KBS가 취재 윤리에 관해 여론의 호된 비판을 들어야 했다. 사망할 위험이 높았음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투신을 막기보다 취재를 앞세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투신 전후 두 차례 신고를 했다는 해명은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언론의 취재 준칙과 윤리의 문제에 부딪혀 궁색한 변명이 돼 버렸다. 이 세상에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우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취재 윤리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성 대표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언론과 기자의 취재 윤리가 새삼 거론됐지만, 사실 우리 언론이 취재 윤리를 잊고 산지는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취재원을 속여 의도에 짜 맞춘 답변을 유도한다든가, 본래의 뜻과 다르게 자신들이 이미 내린 결론을 위해 영상 짜깁기 신공을 발휘해왔다. 취재윤리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특종만 하면 만사 오케이 아니냐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논문을 취재했던 PD수첩팀이 연구원들을 취재하면서 회유, 협박한 일이 드러나 논란이 됐던 일이나, 인간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하기 위해 왜곡과 조작 기술이 동원됐던 것도 모두 취재 윤리보다는 결과와 목적을 우선했기에 발생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나 방송에 언론이 상을 주며 스스로 부추기는 분위기도 취재 과정의 정당성 문제를 별것 아닌 문제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촛불 보도를 이유로 MBC 보도국장실 난입한 사건이 말해주는 대한민국 언론 현실
미디어오늘의 모 기자가 MBC 보도국장실에 쳐들어가 고소를 당한 모양이다. 취재 허가도 받지 않고 어찌어찌하여 노조 사무실 뒷구멍(뒷문)을 통해 들어가선 김장겸 보도국장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은 김재철 전 사장 시절 허위보도를 일삼다가 MBC로부터 출입 금지조치를 받은 상태라고 한다. 기자들이 보도국을 취재할 방법이 딱히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런 한심한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다. 그렇다면 명분이라도 그럴듯한가. 허가도 없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사 보도국장실에 난입했다면 그 동기와 이유라도 뭔가 그럴듯해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노조 민실위가 MBC 뉴스가 안 좋다고 보고서를 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고 한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을 남의 회사에 몰래 들어가 한다는 질문이 그따위였던 것이다. 언제 노조가 MBC 뉴스가 훌륭하다고 한 적이 있던가. 노조 민실위가 동료 기자들이 땀 흘려 취재한 결과물을 칭찬하고 격려한 적이 있던가. 자기네 회사가, 한솥밥 먹는 선배, 동료, 후배가 만든 뉴스를 보지 말라고 방방곡곡에 떠들고 다닌다는 인간들이 아니던가. 솔직히 말해 MBC가 미디어오늘에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이런 한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지 기가 찰 뿐이다. 취재 허가는 아랑곳 않고 남의 회사에 불법적으로 쳐들어가서 그따위 한심한 질문을 하고, 나가달라는 요구에도 버티는 똥배짱을 부릴 만큼 MBC는 미디어오늘에 손쉬운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촛불집회를 중요하게 보도하지 않는다고 언론이 공영방송사 보도국장실에 함부로 들어가 행패를 부리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대한민국 언론의 또 다른 현실이다. 도대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대한민국 공영방송사 보도국장실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방비 상태로 뚫릴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노조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지만, 상식적으로 미디어오늘 기자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일을 벌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동안 MBC 보도국장실을 포함해 회사의 중요한 정보와 기밀들이 MBC 몰래 ‘뒷구멍’을 통해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MBC 노조와 그들의 기관지 미디어오늘에서 보이는 건 인권 유린과 실종된 취재 윤리
모든 취재 행위는 정당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기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이다. 미디어오늘 기자는 남의 회사에 무단으로 침입해 보도국장실을 사실상 점거하면서 취재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강요하며 업무를 방해했다. 당연히 불법이다. 취재의 기본도 잊은 개념 없는 짓이다. 게다가 ‘촛불을 왜 보도하지 않느냐’는 항의성 질문이나 퍼부으려고 그런 짓을 불사했다는 점에서 용감한 언론인의 빛나는 기자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젊은 기자가 언론의 기본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 편을 위해선 양아치 짓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의식에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취재 윤리를 생각하기보다 내 편의 촛불을 먼저 생각하는 건 이미 언론인의 태도가 아니다. 그저 수많은 촛불 시민의 깽판 짓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전에도 취재 윤리를 잊은 언론의 막장 행태를 익히 경험했다. MBC 노조가 이전 정명자 무용가와 그의 가족들을 취재를 핑계로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던 사실을 안다. 기자와 PD라는 사람들이 동네를 찾아가 들쑤시고 다니면서 이웃 사람들에게 얼토당토않은 허위사실을 전하며 음해를 하질 않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유도성 질문을 던지면서 정씨를 나쁜 인간으로 몰았다. 정씨의 무용 세계를 취재한다며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해서는 늑대 같은 본심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정씨는 쓰러졌었고, 고령의 그의 어머니도 자리에 누워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거의 반신불수가 되다시피 하는 피해를 당했다. 노조가 정씨를 취재하는 데 있어서 취재의 원칙과 윤리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언론인이라는 노조가 정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행한 일은 취재 아닌 인권 유린 뿐이었다.
이런 노조의 기관지 노릇을 하는 미디어오늘 기자가 취재 허가쯤은 간단히 무시하고 보도국장실로 쳐들어간 일은 어쩌면 큰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쯤이야 윤리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그들로선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과정의 불의와 비윤리성이 그들이 절대선으로 여기는 촛불의 정당성을 더욱 흐리는 것이다. 그래놓고 언론탓, 조중동 탓, KBS, MBC 탓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미디어오늘은 성재기 대표 투신을 취재하던 KBS의 취재 윤리를 탓하기 전에 우선 자신들의 취재 윤리부터 챙겨야 한다. 자사 소속 기자의 막가파 행위는 정의로운 행위고, KBS의 행위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코미디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 눈의 티끌만 손가락질 하는 뻔뻔함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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