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지도부가 결국 당 내외 강경파 세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민주당은 31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해 1일 이곳에서 의원총회를 열겠다”며 “새누리당이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를 파행시키고, (주요) 증인 채택을 거부해 더 이상 국정조사의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장외투쟁을 선언한 민주당은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 천막을 사실상 임시 당사로 삼아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열면서 장외 선전전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모든 책임을 당 대표인 제가 안고 가겠다(25일)”는 발언과 NLL 정쟁을 끝내자는 여야 원내대표 동시 제안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협상을 우선하는 분위기로 보였다. 그러나 국정원 국정조사가 증인 채택 문제로 표류하고 강경파들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지지층 비난이 쏟아지자 장외투쟁이라는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30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사설과 기사를 통해 동시에 민주당을 맹공하자 민주당 지도부의 분위기는 급반전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30일 기사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무기력하게 끌려간다며 “‘민주당은 싸움만 일삼는다’거나 ‘이념 때문에 민생을 내팽개친다’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악의적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민주당의 콤플렉스 탓”으로 몰고, 또 “민주당이 지금 제정신인가”라고 한껏 자극했다. 경향신문 역시 “‘NLL 정쟁’에서 민주당이 새누리에 사실상 완패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들 신문은 좌파시민사회단체들이 이어가고 있는 국정원 촛불 집회에 민주당의 동참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촛불 장외투쟁의 길로 들어선 민주당의 ‘여론전’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본적으로 국정원 국조가 표류하고 있는 데에는 새누리당의 지연전술 외에 민주당의 전략 부재와 무능 요인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또 장외투쟁의 성격상 좌파단체들과 민주당 내 강경파가 합세한 소위 ‘촛불세력’의 대여투쟁 논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당의 진위가 의심받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그간 국정원 댓글 정국에서 “대선불복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판을 뒤집자” “박근혜 아웃(out)” “대선 무효” 구호를 앞세운 좌파단체에 투쟁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선 불복 투쟁의 국면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역풍의 위험도 커진다. 비슷하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과거 한나라당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는 당시 여당(열린우리당) 논리에 공감한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사례가 있다.
1일 자 조간 보수신문들은 민주당의 장외투쟁 방침을 일제히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의회정치 포기'나 '대선 불복'으로 비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1일 자 사설로 “민주당 강경파들의 속내는 광우병 촛불 시위 같은 것을 다시 한판 벌여보고 싶은 생각인 모양”이라며 “민주당은 지금 대선에 불복해 한풀이하려는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김 대표가 ‘인내할 만큼 인내했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말, 일견 이해는 간다. 그러나 야당으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애쓸 만큼 애썼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원 개혁이란 본질에 집중했는가. 본질을 가리는 막말을 내뱉은 게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고, 새누리당에 망신을 주는 걸로 족하다고 여긴 게 아닌가. 특정 계파와 맞서는 소재로만 간주한 게 아닌가. 장외투쟁을 선택한 건 너무 게으른 결정 아닌가. 요즘엔 여당이 거의 긴장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강경파에 밀린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김 대표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해 ‘우리는 어두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장외투쟁을 천명했다”면서 “민생국회를 외면하는 장외투쟁이야말로 어두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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