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이 해임된 후 언론이 주목했던 부분은 김 전 사장이 1988년 방문진 설립 이래 자진사퇴가 아닌 첫 해고사장이 됐다는 점이었다. MBC 노조 파업사태의 본질을 모르는 일부는 오죽했으면 해임시켰겠느냐고 말하지만 방문진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장 해임 사태는 오히려 방문진이 얼마만큼 초법적 발상에 젖어 있고 월권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법의 허술함을 틈타 방문진이 어느 정도로 방송의 독립을 침해하고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방문진의 김재철 해임 사태는 간단하게 말해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도 MBC 사장이 방문진의 비위를 거스르면 얼마든지 목이 달아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방문진이야말로 방송 독립을 막는 심각한 장애물로 확인된 것이다.
방문진의 김재철 해임이 부당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이 해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 사장 해임 가결 후 방문진 사무처장이 밝힌 해임 사유는 이렇다.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의 문화방송 임원 선임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문화방송 이사회의 구성 및 운영제도 위반과 공적 책임 방기, 관리감독 기관인 방문진에 대한 성실의무 위반, 대표이사 직위를 이용한 문화방송 공적 지배제도를 훼손했다" "MBC 관리지침 제4조 2호 (상법상 주주총회 결의사항) 및 상법 제 85조(해임)에 따라 해임결의안을 가결했다" 여러 군더더기가 붙었지만 본질은 지역사·계열사 임원인사를 사전에 방문진에 보고하지 않고 먼저 공지했다는 것이 해임의 결정적 이유였다.
지역사·계열사 임원인사는 MBC 대표이사 고유권한에 해당, 방문진이 MBC 독립경영 침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다. MBC 자회사·지역사의 임원과 사장을 대주주인 MBC 대표이사가 선임할 수 없고, 일일이 방문진의 재가를 얻어야만 가능하다는 건 MBC 대표 이사가 방문진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식이라면 MBC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은 없다. MBC 사장이 여야정치권력 영향력 아래 있는 방문진의 꼭두각시 노릇 외에 독립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 구조에서 MBC의 정치독립의 길은 처음부터 원천 봉쇄돼 있는 셈이다. 지역사·계열사 임원인사를 MBC 대표 이사가 홀로 진행했다고 해임시킨다는 것 자체가 방문진이 스스로 MBC의 정치독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방문진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민주통합당이 MBC 정치독립, 정치중립을 외치는 것은 허무개그라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민주당 최문순 의원 등이 방문진법 개정안을 내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방문진이 권력으로부터 MBC의 정치 중립과 독립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고 방문진 또한 MBC의 경영과 방송내용 편성 등에 직접 개입하고 통제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문화방송의 책임경영을 강화토록 하며, 방문진의 이사 추천에 있어 방송에 대한 전문성과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함”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해임시킨 것은 MBC의 정치중립과 독립성을 파괴한 것이고, MBC의 책임경영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통당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방문진의 무소불위 행태에 대해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있다. 정리하자면 방문진의 김재철 해임은 법 문제를 떠나 MBC 대표이사의 책임경영을 좌절시킨 것이고, 이는 야당이 그간 주장하던 MBC 독립을 정면으로 침해한 중대한 사태임에도 야당은 평소 주장에 이율배반적인 침묵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재철 해임은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부당해임
'문화방송 임원 선임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법적으로 따져도 분명하다. 방송문화진흥회법과 이사회 정관에는 사장 해임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즉 김 전 사장이 지역사·계열사 임원인사를 방문진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했다고 해서 그 이유로 해임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방문진 사무처는 MBC 관리지침 제4조 2호 및 상법 385조를 근거로 해임결의안을 가결시켰다고 했지만, 그 조항도 마찬가지다. 상법 제385조 1항을 보면 “이사는 언제든지 제434조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임기만료 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한 2004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란 꽤나 엄격하다.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였거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에 해당된다. 또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서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법에 근거해 따져보면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과 인사를 상의하지 않고 단행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것은 부당해임에 해당된다. 김 사장이 법령이나 정관에 나와 있는 위배된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경영자로서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도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추진에 실패해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관계가 깨진 것도 아니다. 다만 김 사장이 방문진의 지시사항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비위를 거슬렀다는 것 하나만이 해임의 이유가 됐던 것이다. 이와 같이 법원은 주주와 이사 사이의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관계가 깨진 것만을 가지고는 해임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판시하고 있다.
초법적 발상으로 저질러진 만행, 해임 무효화로 방문진 스스로 책임져야
MBC가 공영방송이라면서 사장은 방문진이 임명하고 해임은 상법에 따라 멋대로 하는 것도 대단히 비정상적이다. 그 상법에 따른다는 것도 방문진이 만든 관리지침에 의한 것이지 분명한 법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상법에 명시된 ‘정당한 해임 사유’를 봐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김 사장이 해임될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공영방송 사장 해임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엄정하게 따져 이루어져야 함에도 김재철 사장 해임은 법적 근거도 없이 이토록 엉성하게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방문진의 쿠데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긴말이 필요 없다. 김재철 사장의 해임은 방문진의 초법적 발상에 따라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천무효다. 방문진은 김 사장 해임을 무효화해야 한다. 만일 방문진이 스스로 저지른 위법행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김재철 사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여 부당한 해임을 자행한 방문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방문진 이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김재철 해임 사태는 MBC가 방문진에 종속된 기관으로서 정치독립과는 거리가 먼 꼭두각시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MBC의 정치독립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단 하나뿐이다. MBC를 장악하고 있는 방문진을 해체하는 길뿐이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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