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이 틀림이 없다. 누군가에겐 새 시대와 새 정치의 첫 장을 연 벅찬 해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그토록 열망했음에도 좌절과 고통, 회환의 아픔을 준 비정의 시대로 간직될 터이다. 2012년 달력의 마지막 날까지 앞만 보고 달리리라 다짐했던 들판의 민초들도 엎어지고 깨지면서 쌓아온 추억과 기억을 새기면서 또 다시 희망이란 놈을 사냥할 채비에 나설 게 틀림없다. 5년간 국가 운명의 키를 쥐게 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지나면 우리 사회도 그동안에 벌어진 분열의 상처를 꿰매는 자기치료 기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곳곳에 쌓인 적폐와 구태의 흔적들을 지우고 시대착오의 면면들과도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새 시대를 가장 앞에서 맞을 대통령은 담대한 용기로 전진해야만 한다.
폴리뷰와 필자에게도 올해는 잊기 어려운 해이다. 정파와 진영 간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는 척박한 언론환경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다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MBC노조라는 거대한 세력과 맞서 사실과 진실을 추적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실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권력 집단인 MBC 노조는 거의 성역에 가깝다. 언론권력, 노조권력으로 무장한 이들과 정면으로 맞섰다가 무슨 날벼락을 맞을지 몰라 거대 메이저 언론마저도 기피하기 일쑤다. 노조의 선동이 이들의 기관지와 다름없는 언론매체들을 통해 확산되고 MBC 사태가 그런 틀을 통해 왜곡된 현상으로 순식간에 사회에 퍼져나갈 때마다 바로잡으려고 나설 때 버거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다시 용기를 갖게 하고,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깨웠던 건 바로 진실 되고 선량한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방관자로 남아 사실상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양심 때문이었다. 바로 무용가J씨 남매로 알려진 정명자, 정성남씨 남매가 그들이다. MBC 사태를 둘러싼 수많은 방관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던 필자를 본격적으로 MBC 문제에 매달리게 한 것은 이들 남매가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 진실함 때문이다. 어느 날 날벼락처럼 노조의 융단폭격을 맞고 어느 한 곳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이들과 필자가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지만, 지나고 보니 단지 우연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 진짜 피해자, 언론권력 집단에 의해 MBC 사태에 휘말린 정명자·정성남씨
누군가가 단지 MBC 김재철 사장과 사업 파트너라는 인연을 맺었다고 해서 마치 인간쓰레기인양 매도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건, 말하면 입이 아픈 문제다. 더군다나 김재철 사장의 이미지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노조가 만든 거대한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 노조는 자신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 마치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괴물로 만들었고, 마지막 결정타를 위한 희생양으로 각본에 안성맞춤 제물인 정명자씨와 정성남씨를 선택했다. 그런 과정에서 정씨 남매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언론이 세상에서 소외받는 자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그러나 MBC 사태와 정명자·정성남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진짜 피해자가 누구이고 진짜 권력자는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필자가 정명자씨와 정성남씨 남매를 만나게 되고 MBC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점에서 행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들 남매와의 만남은 인간적인 행운이기도 하다. 정명자씨는 노조가 만들어낸 것처럼 무명의 무용수가 남자 하나 잘 물어서 MBC라는 대한민국 대표 방송국의 돈을 빨아먹은 파렴치한 양심불량의 인간이 아니다. 그는 춤꾼 외길 인생을 걸어오면서 무용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고, 평생을 춤 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려본 적이 없는 세상물정 잘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다. 사람을 믿으면 의심할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다. 무용계의 원로와 선배들을 받들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고 후배와 제자들이 자신의 열정을 이어주길 바라는 욕심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노조와 언론들이 사실을 왜곡해 범죄자로 몰았던 정성남씨도 그저 실수도 해가며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평범한 대한민국 사내에 불과하다.
진보언론, 진보세력 2012년 정치적 희생자 정명자·정성남 사례 방관 말아야
솔직히 고백하건데 만약 이 두 사람에게서 친누님, 친형님과 같은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MBC 문제에 이렇게까지 매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 내 자신 스스로도 의문이다. 모든 세상일은 인지상정이라고 했다. MBC 사태에서 노조의 먹잇감이 된 사람들이 설령 인간적으로 수준 이하라고 해도 사실과 다르게 억울한 피해자가 되도록 방관해선 안 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다. 하물며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한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정치적 사냥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필자와 폴리뷰는 더욱더 진실이 무엇인지, 사실이 무엇인지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보여준 진실성, 인간미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이제 201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있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권력지형이 또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무고한 국민이 MBC사태와 같은 또 다른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피해를 받는 일만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소위 진보진영과 진보언론도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와 민간인사찰 피해자에 보여준 관심만큼 이념을 떠나 정명자씨와 정성남씨가 이번 정권에서 MBC노조와 같은 언론권력 집단에 피해를 받은 사례를 기억하고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MBC 문제에 정치적 입장 차이만을 내세워 최소한의 양심적 보도태도도 보여주지 못한 노조의 기관지들을 질타하는 용기쯤은 보여주었으면 한다. 모두가 잊을 수 없는 2012년을 만들기 위해 총력으로 뛰고 있는 상황 한가운데에서 필자 역시 결코 잊기 어려운 2012년을 되돌아 봤다. 그러나 부디 정명자·정성남씨에게만은 악몽과 같은 모든 기억을 홀홀히 털어버리는 남은 시간이 되길 빈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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